[찐따 박성빈] 어디까지를 물으면

글 입력 2021.06.2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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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제이제이는 2년 내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와 이미 부모님 인사까지 치렀다고 했다. 직장을 옮기고 정착이 완료됐다고 느낄 시점에 혼인 신고를 마칠 거라는 말을 이었다. 제이제이는 결혼뿐만 아니라 앞으로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갈지에 대한 윤곽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나는 제이제이의 장기적 계획을 어안이 벙벙한 채로 들었다. 제이제이는 나보다 두 살 어렸다. 이런 삶을 대면하고 싶다고 말하는 제이제이는 스물다섯이었다. 빨리 졸업이나 해야겠다며 엉덩이를 긁는 개백수 박성빈은 스물일곱이었다. 직장이 있는 제이제이는 스물다섯. ‘고질라VS콩’의 전투장면을 위이이이이잉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하고 소리내며 따라하는 박성빈은 스물일곱. 정착이 완료될 시점을 헤아리는 제이제이는 스물다섯. 정착은커녕 여전히 오줌발 조준도 못해서 바지에 다 묻히는 박성빈은 스물일곱. 그게 뭐라고 또 웃어대는 박성빈은 스물일곱.

 

박성빈은 스물일곱. 스물일곱. 스물일곱. 넌 진짜 스물일곱이 맞냐? 자리가 끝나고도 그 문장을 재생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헤이세이는 넋 나간 나를 보더니 각자 템포가 다른 것뿐이라고 말했다. 빠른 사람도 있고 느린 사람도 있고. 제이제이가 유난히 빠른 거예요. 좀 느리면 어때요. 당장 계획 좀 안하고 살면 어때요.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조바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잖아요. 헤이세이는 제이제이를 오롯이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줄 수 있어요? 관계나 대화를 꼬아 해석하지 않는 헤이세이를 보며 괜히 나는 심기가 뒤틀려 꼬라지를 부리려다가 말았다. 헤이세이가 나를 나무랄 의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친구들을 만나면 하는 이야기의 태반은 ‘앞으로 뭘 할지’다. 사전에 대화주제를 정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흘러간다. 제이제이처럼 이미 자기 기반을 다져나가 정착의 시점을 가늠하는 이가 있다. 이런 저런 계획을 즐비하게 늘어놓는 이가 있다. 낙천적인 이도 있다. 불안을 호소하는 이도 있다. 그 네 개에 다 해당되는 사람도 있다.

 

에스민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며 보내는데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수행하며 살기는 싫다고 말했다. 대학생이 될 때부터 그런 고민을 했고 졸업하면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집에서는 이제 슬슬 눈치를 주고 에스민은 간혹 새벽에 깬다. 그렇게 깬 어느 날은 공연히 이불을 쓸어내리는데 울고 싶어졌다고 했다. 내가 본 에스민은 성취를 위해 애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높은’ 곳이 있음을 상정하고 자기 자리를 확인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그러나 필요할 때 성실한 사람이었다. 재미있는 수업을 경청하고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악기 배우는 걸 좋아해 동아리 활동도 열심이었다. 에스민은 그러니까,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주어진 과업을 해치우고 일상의 작은 성취에 행복해했다. 놀고 싶을 때 놀았다. 에스민은 나쁘거나 불성실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에스민을 만난 이후 ‘높은’ 곳에 닿은 누군가를 인터뷰한 일 있었다. 그는 자신이 성공했다고 자각하는 사람 특유의 여유를 풍겼다. 실패해야 성공할 수 있다며 무엇이든 도전하기를 권장했다. 실패해야, 고통이 있어야 진짜 ‘삶’인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면서 실패하고 깨지고 성공을 지향하는 삶만 가치가 있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나도, 에스민도 그저 흘러가는대로 필요한 때 성실히 살았는데 당신 눈에는 도전하지 않는 내가 실패한 것처럼 보이냐고 어깨를 붙잡고 흔들고 싶었다. 뭘 어떻게 도전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은? 그럼 대체 우린 왜 태어난 거냐고도 묻고 싶었다. 결국 묻지 못했다.

 

케이케이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했다. 학보사 문학상에 입선한 뒤부터였다. 휴학하고 단편소설을 쓰며 문예지 공모전과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케이케이가 휴학을 신청하기 전 나는 걱정을 빙자한 무례함으로 ‘생계 걱정이 없는 소설가는 많지 않다’고 말한 적 있었다. 그 때 케이케이는 별로 그런 걸 걱정하지 않았다. 우선 등단이 목표야.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돼. 나는 그게 멋져 보였다. 자기가 어떤 궤도로 회전할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렇게 빛나는 구나 생각했다. 소식이 끊겼다가 케이케이를 다시 본건 올해다. 케이케이는 내가 묻지 않았는데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소설은 계속 쓰고 싶어. 근데 소설을 쓰려면 공무원이 돼야겠더라고. 소설이 밥을 먹여줄지 확신이 안 들어. 케이케이는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응원은 공허했다. 걱정은 예의 없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케이케이는 자기 궤도를 수정했고 나는 더 이상 케이케이가 빛난다고 느끼지 않았다. 케이케이는 지쳤고 나는 속물이 돼 있었다.

 

에스에스는 대학 대신 취업을 택해 은행에서 2년 넘게 일했다. 에스에스를 만난 건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다. 좀 친해져서 왜 그곳을 그만뒀냐고 물은 적 있었다. 부조리가 심했어요. 손님에게 시달린 적이 많은데 은행은 직원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만들기보다 어떻게 손님의 안위를 안 거스를 수 있는지 몰두하더라고요. 에스에스는 침 뱉으며 그곳을 나왔다. 내가 여자고 어려서 이런 처우에 시달리는 건지 의심했다는 말을 이었다. 에스에스가 침 뱉는 시늉을 낼 때 나는 웃으면서 앞으로는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학사를 따야겠어요. 뭘 할까, 그런 걸 벌써부터 거창하게 걱정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 에스에스는 그 매장의 매니저가 됐다. ‘하루하루는 열심히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란 문장을 가장 잘 실천하는 이가 됐다.

 

기자로 정착하고 싶었던 나는 기자가 되고 세달 만에 퇴사면담을 신청했다. 그 주는 최악이었다. 보도기사의 정보를 누락하거나 틀려서 정정보도 요청을 받았고 칼럼 필자의 이름을 틀려 자정 무렵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좌담회 내용을 엉망으로 정리해 선임기자가 다시 기사를 쓰게 만들었다. 기자는 전문가가 돼야 하는데 네가 사회주택에 대해 아는 게 뭐냐. 사전에 공부는 했냐. 열심히 하는 거 알겠는데 티가 나야 하지 않겠냐. 나는 죄송하다고 고개를 조아렸다. 이렇게 같은 실수를 연발하는 건 열심히 하지 않은 증거라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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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다는 문장은 나와 무관한 것 아닐까. 열심히 해도 민폐를 끼치면 진즉에 포기해야 하지 않았나.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장담할 수 없었다. 선임기자에게 깨진 날 나는 성호르몬에게 전화를 걸어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이건 내가 열심히 해도 잘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 성호르몬은 포기하라고 했다. 어떤 일과 맞지 않는지 배웠잖아요. 포기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그런 생각도 용기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차주에 출근하자마자 국장을 호출했다.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국장은 사유를 물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지난주에만 같은 실수를 연이었습니다. 선배 기자에게, 국장에게 민폐였습니다. 국장은 자기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원래 기자와 무관한 일을 하다가 언론학 석사를 마치고 늦은 나이에 기자가 됐다. 자기 역시 이 일의 속성을 완전히 파악하는데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 때까지도 선배 기자에게 ‘니가 쓰는 건 기사가 아니라 취재한 내용을 정리한 수준’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국장은 버텼다. 도망가지 않았다. 고민하고 휘둘렸지만, 스스로를 벼렸다. 성빈님이 이 시기에 그런 고민을 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다만 그 마음이 드는 것과 별개로 퇴사를 공표하면 돌이킬 수 없어요. 정말 이 일과 맞지 않아서 퇴사를 결심하는 것과 단지 도망가고 싶어서 퇴사를 결심하는 건 차원이 다릅니다. 제가 보기엔 무언가 맞다, 맞지 않다를 가름하기에 3개월은 짧습니다. 좀 더 해보세요. 그리고 지금 드는 생각이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는지 제대로 파악해보세요.

 

국장의 말이 맞았다. 도망가고 싶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멍청하고 찌질한 박성빈. 취재원에게 말도 어버버버버버 더듬는 개똥같은 박성빈 새끼. 그만 혼나고 싶다. 그만하고 싶다. 속에서 그런 문장을 몇 번씩 되새겼다. 나는 자학에 매몰됐고 자기혐오를 멈추는 최선의 방법은 회사 욕을 하며 도망가는 거였다.

 

국장은 일주일 생각할 시간을 줬다. 더 해보겠다고 했다. 국장 말이 맞습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컸습니다. 도망가더라도 좀 더 해보고 도망가겠습니다.

 

유야무야 수습 기간을 채웠다. 국장은 정규직 전환 의사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답했다. 면담 시 말씀 드렸던 제 능력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국장은 그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실은 다른 마음이었다. 그게 무슨 마음이었는지 아직 모르겠다. 할 만큼 해봤으니 이쯤에서 도망가자는 생각과 나를 좀 더 벼리고 싶다는 의지가 상존했다. 그 의지는 기왕 기자로 정착하려면 좀 더 규모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이어졌다가 얼마나 많은 수모를 치러야 진짜 ‘기자’가 되는지 벌써 겁이 나 다른 곳에 눈을 돌려야 겠다는 마음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그냥 좀 놀고 싶었다. 이런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싶었다. 내게 주어진 것, 혹은 해야할 것들을 제쳐두고 싶었다. 그래서 그만두겠다고 말한 거였다.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문장은, ‘일’말고 다른 걸 하겠습니다, 란 의미를 내포했다. 성호르몬에게 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제가 잘못 선택한 걸까요. 좀 더 버텼어야 했던 걸까요. 무엇이든 버티면 능사인데 지레 포기한 거면 어떻게 하죠. 성호르몬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버티는데 많은 가치를 두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곳이 혹은 그 분야갸 안 맞아서 그만둔 것뿐이에요. 버티지 못했다는 문장이 당신을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좀 포기하면 어떱니까? 놀면 어때요? 사람이 도는 궤도가 다 같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퇴사했다. 생각하는 시간이 줄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게으른 삶을 사는 중이다. 모아둔 돈을 서서히 까먹었다. 다시 오면 삼대가 멸한다며 침을 뱉었던 패스트푸드 매장에 진짜로 다시 돌아갔다. 그래 뭐... 내 이대가 생길지 말지도 모르는데...

 

어제는 막차가 끊길 시간까지 고기를 뒤집어서 택시를 탔다. 기사님이 목적지를 물었다. 어디로 가세요? 나는 그 질문을 곱씹었다. 어디로... 어디로... 지금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가야 하는 방향이 있는데 거기서 이탈하고 있나... 지금 내 삶에 목적이란 게 있긴 할까. 어디로 당도할지 모르겠는데 어디 내려달라고 말하는 게 가당키나 하나. 기사님은 알고 있어요? 저는 여전히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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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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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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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원
    • 흥미롭게 읽었어요. 항상 솔직하게 글을 쓰셔서 더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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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위저
    • 2021.06.21 02: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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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원감사합니다...여전히 제가 솔직한지는 모르겠네요... 변명 같은 마음으로 쓰는 건 아닐까... 변명이 솔직함이 될 수 있을까, 란 생각 입니다. 정말 솔직해질 때까지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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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돌주먹
    • Wow. This is amazing. Im impressed. Fucking so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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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저
    • 2021.07.03 21: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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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돌주먹Thank you! my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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