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 요나단의 목소리 [만화]

글 입력 2021.06.1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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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요나단의 목소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나단의 목소리>는 6월 18일 현재 창작 만화 플랫폼 '딜리헙'에서 무료로 열람이 가능합니다. 작품 열람 후에 글을 읽기를 권장합니다.

 

 

 

요나단과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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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8장 3절 -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사무엘상 18장 4절 -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사무엘하 1장 26절 -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도다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은 성경 안에서 너무나 각별하고 또 애틋하게 쓰였기에 현재까지도 성경 말씀을 읽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요나단은 거인 골리앗과 용감하게 맞써 싸워 승리를 거머쥔 다윗을 보고 첫 눈에 알아보았다. 이스라엘의 왕 사울의 아들-요나단은 자신에게 승계될 왕위를 다윗에게 주리라고 맹세한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핍박하고 증오하여 죽이려고까지 들고, 요나단을 다윗에게 망명을 권한다. 요나단은 다윗을 깊이 사랑하여 언약을 맺고, 그의 겉옷과 군복과 칼과 활과 띠를 모두 내어준다. 그러나 결국 요나단은 전사하고 만다. 요나단의 전사 소식을 들은 다윗은 슬퍼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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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나단의 다윗의 관계에 대한 해석은 현재까지도 갈리고 있다.

 

 

 

삶을 위한 거짓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묘하게 속이 뒤틀렸던 시기가 있다. 티 나게 어설픈 핑계와 부자연스러운 표정, 어색한 말투를 보고 있으면 ‘아, 살면서 거짓말해야 할 일 같은 거 정말 없었나보다’같은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을 볼 때는 그래서 조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정말 악한 목적의 거짓말을 제외하고). 내 것이 아닌 상황과 감정들을 내 것인 양 말하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수의 거짓들이 있었을지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거짓을 지어낼 필요가 없는 삶은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요나단의 목소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을 입고 살아가는 아이인 선우와, 구태여 거짓을 꾸며낼 필요 없이 자란 아이 의영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품은 선우의 이야기지만, 주로 관찰자인 의영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담담하고 일상적인 단어들로 쓰인 나레이션이 이야기 진행의 주를 이룬다.

 

그런데 작품의 관찰자이기도 한 의영이 나레이션을 읊는 시점은, 작품의 배경인 고등학생 시절을 이미 훌쩍 지난 때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된 의영의 나레이션은 작품 내 인물보다도 작품 바깥에서 선우와 의영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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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는 교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모태 신앙 기독교인이자 동성애자다. 의영은 평범-평범과 평범하지 않음을 가르는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이다-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란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이다. 의영과 선우는 기독교계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서로를 룸메이트로 만난다.

 

종교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의영은 성가대로 활동하는 선우의 목소리를 듣고 난 뒤로,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월요일 채플 시간이 싫지 않아졌다. 의영과 선우는 성향도 취미도 달랐지만, 어쩌면 그래서 친해질 수 있었다. 엠피쓰리로 줄리 앤드류스가 부른 My Favorite Things를 듣는 선우와 엠피쓰리에 빅뱅의 하루하루를 넣고 다니는 의영은 친구가 되었다.


의영은 선우와 친구가 되면서 자신이 지금껏 몰랐던 질문과 마음과 믿음을 마주하게 된다. 선우의 부모님은 대중가요를 ‘세상 노래’라며 듣지 못하게 할 만큼 신실한 기독교인이며, 그런 부모님 밑에서 성장한 선우의 믿음은 굳이 믿어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선우는 ‘모범생’이라는 단어에 꼭 어울리는 아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반항 한 번 없이 교회에 꾸준히 다니고 착실히 공부했으며, 타고난 목소리 덕에 성가대 활동도 우수하게 해내왔다. 내성적인 성격까지도 주변의 어른들에게는 차분하고 성숙하게 비춰졌다.

 

의영도 불량아는 결코 아니지만 선우만큼 공부를 잘하지도, 특별히 차분하지도 않았다.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 남자아이다. 그런 의영에게 의영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이유는, 선우 곁의 의영은 늘 의연하고 곧은 모습으로 있어주기 때문이다.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바로 곁의 룸메이트가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친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의영은 그 사실을 알고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선우를 배려하고 위로한다. 의영이 선우를 위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은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큰 위안이 되는 때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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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연하게도 모르기 때문에 영원히 위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의영은 선우의 하나님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었고, 증명되지 않은 천국과 지옥과 죽음 뒤에 가게 될 세상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몰랐다. 선우가 살아온 세상은 의영이 살아온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의영은 선우의 치열한 거짓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의영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애쓰지 않아도 자신이 ‘평범’의 기준에 들어맞을 수 있는 세상. 묘하게도 의영은 선우보다 타고난 행운이 더 좋은 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학교 부지 내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려도 학년과 이름을 말했더니 크게 혼나지 않고 넘어간다든가, 찍은 문제가 맞는다든가 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그에 비해 선우는 찍은 건 무조건 틀리는 아이다. 그런 의영을 선우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선우도 예전의 나처럼 묘하게 속이 뒤틀리는 기분을 느꼈을까. 아니면 부러워했을까? 하나 확실할 수 있는 것은, 누구도 선우의 거짓말을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우의 하나님이나 예수님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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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지도 않은 일 미리 걱정 말라고

모두 진심이라면 걱정할 게 없다고

깨져버린 양심의 거울 그 위에 당당하게 수북하게

쌓인 가책의 먼지는 언제쯤 털어낼 생각인가요

지금 어디 있나요 대체 어디서 뭘 하나요

모두 뿌리쳐버릴 지라도 내 손 꼭 잡아주겠다더니

지금 어디 있나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나요

내가 지쳐서 휘청거릴 지라도 날 믿어주겠다더니

어디에 있나요

 

넬- Good night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요나단의 목소리>에는 메인 스토리 라인과 나레이션 외에도 작품의 몰입도를 높이는 요소들이 정말 많다. 그 중 하나는 아이들을 포함한 작품 내 인물들이 나누는 평범한 대화이다. 이 평범한 대화들이 매우 탁월하게 느껴지는 것은,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개그 코드나 자극적인 유행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정말 평범한 학생들의 대화 그 자체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평범한 감각은 선우와 의영과 아이들을 독자들의 바로 앞으로 데려다 놓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정말 현실에 있는 인물들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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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빠트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사라 브라이트만의 ‘Pie Jesu’와 사이먼 앤 가펑클의 ‘Scarborough fair’, ‘이 시간 너의 맘 속에’, ‘Amazing Grace’와 같이 ‘세상 노래’가 아닌 음악들이 작품 내에 자주 등장한다. ‘딜리헙’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작품에서 언급되는 노래와 영화는 모두 개신교 가정에서 자라며 기독교 사회에서 살아온 작가 본인이 접하며 자라왔던 작품들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내가 독자로서 <요나단의 목소리>에 가지고 있는 애정은 유독 각별하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여러 번 읽었는데, 그 때마다 꼭 <요나단의 목소리>용으로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듣곤 했다. 그렇게 만화를 읽고 있노라면, 피아노를 치며 ‘Pie jesu’를 부르는 선우가 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교실 어딘가에 선우와 의영과 다윗과 주영이 있었을 거라는 믿음 비슷한 게 생기기도 했다.

 

 

 

나와 너의 세계가 부딪힐 때


 

나는 현재 무교지만, 초등학생 때 잠시 개신교 계열 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아침 조례 시간과 하교 전 조회 시간마다 뜻도 제대로 모르고 신나게 불렀던 찬양가와, 4학년 즈음 시간표에 새롭게 생겼던 ‘성경’ 시간이 떠오른다. 성경 시간을 위해 새로 오신 목사님은 늘 정갈한 정장을 입고 계셨다. 그 시간들은 제법 즐거웠고, 어린 내게 신의 존재를 얼마간 인식시켜주었으나 그를 믿게 할 정도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주변에도 종교인이 전무했던 나는 기독교 사회를 전혀 모르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독자들이 무교인이겠지만, 그럼에도 <요나단의 목소리>가 이렇게 사랑받는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요나단의 목소리>는 결국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생 선우는 어느 날 노란 머리를 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 다윗이었다. 다윗은 첫 만남에 선우에게 천원을 빌려갔다가 정말 그 천원을 돌려주러 온다. 선우는 다윗을 만나 몰랐던 질문과 마음과 믿지 않음을 마주하게 된다. 다윗은 이름부터 성경 내 인물에서 따온 목회자 자녀이지만, 기독교인이 아니다.

 

선우는 부모의 종교가 나의 종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윗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리고 선우는 금세  키와 손과 발이 한참 크고 머리가 노랗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윗을 사랑하게 된다. 다윗과 다윗의 여자친구 주영이 알려주고 들여준 세계는 선우에게 너무나 낯설지만, 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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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정말 각양각색으로 나올 수 있겠지만, <요나단의 목소리>에 등장하는 사랑은 한 사람이 만들어온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충돌한 혼란함에서 태어나는 것 같다. 사랑을 꼭 선우가 다윗에게 품었던 마음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 선우의 부모님이 선우를 사랑하는 것, 주영과 선우가 다윗이라는 공통점으로 만나 서로에게 우정과 애정을 가졌던 것, 의영이 선우를 걱정한 마음, 이 모든 것들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마음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충돌’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이 살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세계가 다른 이의 세계와 부딪혔을 때, 부딪힌 흔적이 남길 수 있는 마음 중 하나가 사랑일 것이다. 내가 만들어온 모든 세계가 무너지더라도, 그 잔해를 밟느라 발이 쓰리고 까져도 감히 껴안겠다는 결심과, 의심조차 않았던 믿음의 흔들림을 받아들이는 용기.

 

나는 그래서 선우의 어머니가 선우가 동성애자임을 알아차리고 난 뒤 보였던 반응도, 감히 선우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기독교 가정을 비롯한 수많은 가정에서 동성애자 자녀를 받아들이지 못해 일어나는 폭력적인 상황들을 사랑 때문이라고 포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롯이 아이들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더더욱 작품 내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인물들의 감정을 떠올려 보게 된 것이다.

 

의영의 말을 빌려오자면, 그들의 지옥같은 두려움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자식이 순식간에 멀어지는 것이 두렵고, 정해지지 않은 천국과 지옥이 두렵고, 동성애가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성경과, 선우를 틀렸다고 이야기 해야하는 자신의 믿음이 그렇게나 두려웠을 것이다. 선우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한 편 내게 작품 내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인물을 꼽아보라면 선우가 아닌 의영이라고 답할 것이다.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아픈 사람의 곁에 머무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그 무력감과 막막함은 때때로 견디기가 어렵다. 그래서 외면을 하고 싶어진다.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려움은 알지 못함에서 기인한다.

 

모르는 것은 예측을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모르는 감정에 둘러싸인 채로 내가 모르는 세계-그러니까, 내가 없을 수도 있는, 혹은 나의 말과 행동이 유효하지 않은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하는 일은 너무나 두렵다. 그래서 때때로 사랑은 외면을 불러온다. 선우의 어머니가 선우에게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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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실 누군가를 '예측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 자체가 오만인지도 모른다. 앞서 이야기했듯, 사람은 모두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구축한 세계의 규칙이나 상식이 나와 같으리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그리고 그 선한 착각은 종종 사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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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은 어떤 부분을 외면하고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려는 것이다. 그 과정이 모두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타고 나길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착각의 과정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에 가깝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나는 이 사람의 모든 면-혹은 많은 면-을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가 쉽다. 그것이 깨트려질 때 사랑은 위협받고, 사람은 선택을 강요 받는다. 내가 모르는 그 사람까지 직면할 것인지, 외면할 것인지. 그런데 외면이 떠나는 결과만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등 돌려 떠나는 것은 물론 외면이지만, 껴안아 버리는 것도 외면이 될 수 있다. 포옹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내게 안긴 상대의 얼굴과 마음을 멋대로 상상하게 된다. 이기적인 포옹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포옹을 외면이라고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포옹이 너무나도 외로운 행위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어떤 포옹은 내가 보지 못하는 너의 표정과 내가 모르는 너의 마음까지 전부 껴안겠다는 결심일 것이다. 그 포옹은 외면하는 포옹과는 다르게- '알지 못함'과 그로 인한 두려움까지 모두 인정한 포옹이다.

 

의영이 선우의 모든 괴로움을 알아주거나 껴안아주지 못한 것은, 의영이 아직 어렸던 탓도 있겠지만, 어른이 된 의영이 그 때로 돌아간다 한들 선우에게 더한 것을 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선우와 의영은 다른 세상을 살아온 다른 아이들이었고, 아마 그게 전부일 것이다. 아이들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서로의 친구로 계속 남자는 결정을 내린 것이 분명 더 중요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천국과 지옥과 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은 직접 볼 수 없다는 이야기는, 고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랫동안 여러 작품에서 등장한 소재이다. 셰익스피어가 어린 왕자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편리하다. 내가 볼 수 없는 어느 곳에는 분명 있을 거라고, 마음대로 믿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믿음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기에 연약하고. 그래서 종교를 가지고 신과 지옥과 천국을 믿는다는 것은 내게 경이롭게 느껴진다. 연약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믿음이 무엇보다 사람을 견고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아프고 어렸던 선우의 곁에 의영이 있어 다행이라고, 작품을 읽으며 몇 번이나 생각했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는 모든 아이들에게 의영과 같은 친구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찾아 걷는 길마다 사랑이 있기를, 아이들이 마주할 길의 끝에 결국 사랑이 기다리고 있기를. 선우와 의영과 주영이 자기만의 자리에서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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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아무 데서나 자랄 수 있잖아?

아무 데서나 사는 건 아닌 거 같애

아빠는 그럼 사랑을 기억하려고 시를 쓴 거야?

어두워서 불을 켜려고 썼지

시가 불이야?

나한테는 등불이었으니까

아빠는 그래도 어두웠잖아

등불이 자꾸 꺼졌지

아빠가 사랑하는 나라가 보여?

등불이 있으니까

그래도 멀어서 안  보이는데?

등불이 있으니까 

 

  

마종기,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中

  

 

[송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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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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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762
    • 투박하게라도 말해봅니다 항상 좋았지만 이번 글은 특히나 더 좋아요 세희님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건 너무 값진 일인 것 같습니다(이런 글을 돈을 내지 않고도 볼 수 있는가 싶을 정도로요) 항상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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