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구나 비밀은 있다. [음악]

글 입력 2021.06.1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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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대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당신에게 허용하는 내 마음속의 범위’를 지정하는 일이다.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사람인지라, 관계의 거리가 멀든 가깝든 누군가가 나만의 내밀한 영역 안으로 발을 들어놓으려 할 때면 곧바로 경계태세를 취하는 게 습관이 돼버렸다. 그곳에 내재한 비밀이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그 누구도 볼 수 없게, 오로지 나를 지키기 위한 명목 하에 늘 날 선 눈빛으로 경계한다.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허용하는 범위의 크기는 보통 친밀도와 비례하기 마련이다. 농도가 짙은 관계일수록 그 속에 누적되는 정보량은 많아지고, 이는 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A라는 친구에 대한 나의 데이터가 예민함, 까칠함, 냉정 등의 단어로 구성된 경우, 그 친구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릴 때 ‘까칠한데 나쁘진 않은 애’라는 문장으로 연상되는 것처럼 말이다.

 

 

비밀에는 두 가지가 있다.

말할 수 있는 비밀과 말할 수 없는 비밀

 

-드라마 <청춘시대>-

 

 

사전적으로 오직 자신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을 가진 비밀은 두 가지 성격으로 구분된다. 겉으로는 비밀이라 치부하지만 정작 그 알맹이는 가벼워 남에게 드러내는데 전혀 개의치 않는 비밀과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인해 오직 속내에서만 맴도는 비밀.

 

타인에게 민낯을 드러낼수록 약점만 늘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에게 있어 하나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에 대한 정보를 타인에게 하나씩 주입할 때마다 혹여나 비밀이 드러나지 않을까 하며 전전긍긍하는 자신을 늘 안타까워했고, 여전히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을 단단히 쌓아 올리는 일에 큰 힘을 쏟고 있다. 말할 수 있는 비밀과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구분해 후자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들만 차곡차곡 저장하다 보니, 어느덧 비밀의 사전적 정의와 일치하는 형상이 내면 깊이 자리했다.

 

한때는 자기방어 기제에서 발현된 이 습관들이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의 시간도 있었다. 나만 이렇게 유난스러운 걸까,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닌데 숨길 게 뭐가 그리 많다고, 등의 생각이 하나씩 뻗어 나갈 때면 단단하다 믿었던 공간이 조금씩 허물어지려 했다. 끝까지 지키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타인에 의해 망가지려 할 때쯤, 이 노래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누구나 비밀은 있으니 넌 네 공간을 지켜도 된다고.

 

 

 

누구나 비밀은 있다.


 

 

 

아이유와 가인의 듀엣곡인 이 곡은 작사가 김이나와 프로듀서 윤상의 작품이다. 곡의 발매 연도인 2013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아이유와 가인은 정반대의 스타일을 가진 가수였다. 김이나 작사가는 당당하고 발칙하며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하는 가인과 소녀답고 수줍은 이야기를 하는 아이유의 전혀 다른 방향성이 매우 난감했다고 한다. 그녀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하나의 공통분모는 분명히 존재하리라 생각했고, 그것이 ‘비밀’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누구나 가슴 속에 담고 있는 비밀, 각자 다른 이유로 말하지 못하는 비밀, 아주 사소한 것부터 세상이 뒤집힐 정도의 엄청난 것까지, 다양한 비밀이 존재하는 사람의 속내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내가 누굴 탐했었는지

네가 알면 넌 어떤 표정을 할까

내가 어제 무얼 했는지

네가 알면 넌 어떤 얘기를 할까

:

내가 무슨 꿈을 꿨는지

네가 알면 넌 어떤 얼굴을 할까

내가 누굴 싫어하는지

네가 알면 까무러칠지도 몰라

 

 

내가 무얼 했고 무슨 꿈을 꿨는지, 누굴 탐했고 누굴 싫어하는지, 이 모든 것을 네가 알게 된다면 넌 놀라 자빠지고 말 거라는 확신에 찬 가사는 은연중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린 모두 상황에 따른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온전한 민낯을 쉽게 공개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깊은 마음속의 외침을 혀끝에서 맴돌다 그치기를 반복하고, 머릿속의 상념들을 한데 묶어놓고는 순수한 정신을 내보인다. 내 안에서 일어난 모든 것이 절대 공개되는 일이 없게.

 

책이나 영화, 또는 실제로 발생하는 무수한 일들 속에서 인간의 추악한 내면이 드러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벗겨진 타인의 속내 깊이 자리한 추악함을 향한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자신에게 향하는 법이 없다. 실은 우리 모두 별반 다를 거 없는 사람인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인간의 본능에 의존한 이기심이 발현되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그 사람을 마음껏 비난하지 못한 적도 몇 번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비인간적인 행동이 아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심이 발현되는 경우를 말한다.)

   

 

넌 내가 정말로 없을 것 같니

아무도 모르는 story 하나

넌 네가 정말로 다 안 것 같니

너의 제일 가까운 그 사람을

 

누구나 비밀은 있는 거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우리 아무 일도, 없던 걸로, 안 들은 걸로 해요

모두 비밀은 있는 거야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사람들에게는 진실이란 중요하지 않아

 

 

불과 며칠 전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라는 공식이 처절하게도 와 닿았던 날이 있었다. 제일 가깝다 여겼던 사람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나에게 거짓을 늘어놓았다는 사실은 큰 충격과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이건 속이면 안 되는 일이지, 우리 사이에 이걸 거짓말로 하면 어떡해, 등의 혼돈이 나를 감쌌지만,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자코 생각해보니 나라고 별반 다를 거 없었다. 이 사실을 직시하자 얼마 안 가 평안함을 되찾았다.  이건 그저 비밀이 드러났기에 찾아온 충격일 뿐이라고. 네가 나를 다 알지 못하듯, 나 역시 너를 다 알지 못할 뿐이라고.

 

 

 

나를 지키는 방법



인간은 너무나도 유약하다. 타인의 무게를 감당할 만큼 강하지도 않고, 자신의 무게만으로도 힘들게 버티고 서서 묵묵히 삶을 살아가는, 고작 ‘나’ 하나 지키기 위한 힘이 전부인 존재이다. 그런 우리에게 자비 하나 베풀지 않는 냉정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저마다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외관을 강하게 장식하고, 누군가는 거친 언행을 내뱉고, 누군가는 격리된 채로 혼자 살아가고, 누군가는 명예와 권력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스물다섯의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비밀’을 택했다. 외관으로 방어하는 방법은 부질없게 느껴지고, 그렇다고 혼자 살아갈 용기는 없고, 아직 명예와 권력을 손에 쥘 만큼의 힘도 없는 평범한 사람인지라 고작 '비밀' 하나 지키는 것, 이것이 나의 유일한 방패일 수밖에 없다. 나를 드러냈더니 되레 상처로 돌아온 지난날을 토대로 바라봤을 때, 이 선택이 지금의 나에게는 최선이다. 가령 누군가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 하다가 큰코다친다고 경고할지라도, 이 또한 언젠가 역으로 돌아와 해를 입힐지라도, 한없이 유약하기만 한 나는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려 한다. 어차피 누구나 비밀은 있는 거니까. 나만 이런 건 아닐 거니까.

 

 

 

지은정.jpg

 

 

[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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