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금 특별한 Z세대가 떠난 경북 북부 문화유산 기행 [여행]

글 입력 2021.06.1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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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 MBTI를 밝히고 시작해야겠다.

 

내 MBTI는 때로는 ESTJ, 또 가끔은 ISTJ, 즉 E와 I 사이에 있는 STJ이다. 아니, 여행기라면서 왜 뜬금없이 MBTI냐고? MBTI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알 수도 있겠지만, E든 I든 STJ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젊은 꼰대’이고, 이 단어로부터 비로소 나와 오늘의 여행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 블로그를 비롯한 그 어떤 공개적 플랫폼에서도 내 MBTI를 밝히지 않을 만큼 MBTI 자체를 잘 믿지 않는(알고 보니 이것 역시 나와 같은 성향을 지닌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한다) 나였지만, 고백하건대 ‘젊은 꼰대’라는 이 MBTI의 특징을 듣는 순간 속으로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꼰대’라는 단어는 본래대로라면 권위적인, 나이가 많은, 중년 남성을 대표하는 말이지만 이 단어가 비교적 대중화된 오늘날에는 조금 더 넓은 범주의 의미를 포함하게 되었다. 예컨대 굳이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로 대표되는 권위주의가 아니더라도, 전통과 옛것을 고수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는 일명 ‘FM'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역시 자주 꼰대라 불린다. 그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말이다. 사실 원래의 의미대로라면 그 단어 자체가 모순인 ’젊은 꼰대‘라는 말이 현재 널리 범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꼰대‘라는 단어는 이미 특정 성별과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단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짐작하겠지만, 이러한 최근의 기준대로라면 결국 필자도 역시 꼰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약간의 변명을 덧붙여보자면, 나는 그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 불리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답지 않게 디지털 기기와 친하지 않고 아날로그적인 것들을 좋아하며, 내 나이 또래들이 관심을 잘 가지지 않는 것들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 아, 유행하는 것들 중 열에 여덟 정도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것도.


*

 

이런 내가 좋아하는 게 있다면 바로 여행이다.

 

물론 맛집 투어나 사진 찍기 좋은 곳 위주의 최근의 여행 트렌드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편안해지는 자연, 그 중에서도 이 자연 속에 묻혀 있는 유적을 찾아가는 기행에서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이 큰 에너지를 얻는다.


대학생활을 마무리하는 4년 중 마지막 정규학기, 교생실습,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숨 가쁜 일정들까지. 지난 한 학기, 그 어느 때보다 수고한 나를 위해 우리나라의 정신, 문화유산의 본산인 경북 북부, 그 중에서도 안동과 영주 지역으로 하루간의 짧은 기행을 다녀왔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영주 부석사



앞서 언급한 수많은 종류의 유적들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가 있다면 단연 사찰이다.

 

가톨릭교도인 나에게도 절의 목탁과 풍경 소리, 그리고 절이 주는 특유의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는 과거부터 남다르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 등산을 할 때나 석가탄신일에 부모님을 따라 드나들며 잠시 쉬어가던 절, 두 번의 수능을 치르며 역시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준다는 느낌을 받아 자주 듣던 원불교 방송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절이라는 장소에 대한 나름의 좋은 인상 때문일까, 아니면 더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의지했던 신앙의 힘에 대한 믿음이 적게나마 나의 DNA에 새겨진 탓일까. 숭유억불이라는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억압과 고통의 역사가 그 계기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부분 산골짜기에 숨어든 대다수의 절이 오늘날 이 결과로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진 수려한 경관을 자랑할 정도로, 산세와 절이 서로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관계에 있어서이기도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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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양산의 통도사, 안동의 봉정사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된 바 있는 경북 영주의 부석사는 전국의 수많은 사찰들 중에서도 단연 사찰 예술의 백미를 뽐내는 곳이다.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어쩌면 경주의 불국사 다음으로 높은 인지도를 지니고 있을 만큼 유명한 이곳을, 내가 처음 마음속에 품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읽은 故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 덕분이었다. 엄마, 아빠 중 누군가가 젊은 시절 사 놓았다가 이후 그대로 서고에 처박아 둔 듯한 이 오래된 책은, 우연히 이것을 책장에서 집어든 나에게 예상외로 꽤나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비록 책의 제목으로 쓰였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 언급된 부분은 3페이지에 불과했지만, 이 짧은 분량만으로도 부석사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당시 교실에서 이 책을 읽고 있다가 ‘이런 책을 왜 읽는지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다’는 친구의 핀잔어린 말을 듣기도 했지만, 당시 매일 입시를 위한 쳇바퀴 같은 삶을 살고 있던 나에게는 적막한 어느 초겨울에나 찍혔을 법한 책의 흑백 자료사진마저도 그저 운치 있어 보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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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약 2시간 반, 이제 도착했구나, 싶은 순간으로부터도 한동안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끝에 도착한 부석사. 오랜 시간 책으로만 보아오던 장소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는 날을 축하라도 하듯, 조명보다 밝게 내리쬐던 강하고 맑은 햇살은 카메라의 그 어떤 필터로도 흉내 낼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등산로에 가까운 가파른 길을 지나 본격적인 부석사 경내로 들어서는 첫 문인 천왕문,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으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숙이지 아니할 수 없게 하는 안양루의 누각 밑을 자세를 낮춰 지난 후, 비로소 눈앞에 우리나라에서 그 가치가 가장 높은 목조 건축물 중 하나인 부석사 무량수전을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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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해설사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살짝 엿들어보았더니, 국민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부석사 무량수전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그리고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을 그것으로 배웠다고 한다. 결국 일단 현재까지는 후자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는 한 듯하다. 물론 건립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건물들 중 가장 오래된 건 예산 수덕사의 대웅전이고, 무량수전이나 극락전의 연대는 어디까지나 ‘추정’ 연대라고 한다. 어찌 됐든, 두 건물 다 목조건물로서의 나름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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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도 없는 수수한 처마, 오색찬란과는 거리가 먼, 목조 그대로의 수수한 모습이지만 한 자리에서 약 천 여년의 세월을 견뎌온 고아한 자태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무량수전. 법당 안에서 예불을 드리고 있는 신자들이 있어서 다소 조심스러웠지만 감격스러운 마음에 배흘림기둥의 가장 두꺼운 가운데 부분을 붙잡고, 그것에 기대서서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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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에는 단순히 건물의 건립연대나 그것의 미로만 한정지을 수 없는 또 다른 자랑거리가 있다. 바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을 모두 잊게 만들어주는, 소맥산맥 자락을 품은 압도적인 경치다. 가히 자연과의 합일(合一)이라 할 만하다. 유홍준 교수 역시 그의 대표 저서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에서 부석사에 대해, ‘무량수전은 그 건축의 아름다움보다도 그것이 내려다보고 있는 경관이 더 장관’임을 언급한 바 있다.

 

부석사가 위치해있는 봉황산은 소백산맥은 물론 태백산맥까지 아우르는 곳의 경계에 위치해있는 만큼, 눈앞에 끝도 없이 펼쳐진 굽이굽이 산들이 절로 눈을 트이게 한다. 무량수전의 팔작지붕 아래에서 유유자적 거닐기도 하고, 그 앞의 석등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도 하면서, 6월 어느 날의 내 토요일 아침은 평소보다 느긋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배산임수의 절정, 병산서원



다시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영주 아래 위치한 도시인 안동의 병산서원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가장 많은 독립 운동가들을 배출한 지역이자,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에는 유교와 선비문화로 대표되는 당대 지식인들의 정신이 깊게 배어있는 곳. 흔히들 문화유산의 도시하면 같은 지역에 위치한 경주를 떠올리지만, 안동 역시 도시 전역 곳곳에서 세계 문화유산 및 국보들을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정기가 살아있는 곳이다.


이 중 안동을 포함한 경북 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건축물로는 당대 유생들이 공부하던 사설 교육기관인 ‘서원’이 있다. 이 지역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영주의 소수서원을 비롯, 안동의 도산, 병산, 묵계 서원 등 다양한 서원이 있으나 시간 관계상 모든 서원을 방문할 수는 없는 만큼, 우선순위를 정해 단 하나의 선택지만을 골라내야 했다.

 

이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역시, 초보 기행자인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 영원한 교과서와도 같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권이었다. 소수, 도산, 병산까지 세 서원을 낱낱이 비교하고 비평한 이 권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풍천면의 ‘병산서원’이 여행지로 최종 낙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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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을 둘러싸고 있는 병산과 하천. 완벽한 배산임수의 입지를 자랑한다.

 

 

잘 닦인 매끈한 포장도로를 달리다가, 어느 순간 2021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좀체 만나기 어려운 비포장도로로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것이 병산서원의 특유의 첫 인상이라면 첫 인상이다. 마치 ‘와 볼 테면 한 번 와 봐.’라고 하는 듯 한 고고한 자태랄까. 이러한 비포장도로길이 3km 정도에 걸쳐 이어진다.


물론 이곳을 찾는 관광객 입장에서야 불편한 일일 수 있겠지만, 반대로 역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에서 언급되었듯, 이와 같은 불편한 길이 지금까지 병산서원이 비교적 잘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는 점은 다소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하긴, 자연에 묻힌 그대로의 멋과 순수함을 간직했던 사람, 건물, 식당 등 많은 것들이 유명세를 타며 자의로든 타의로든 간에 서서히 변질되어 가는 현실을 우리는 지금껏 너무나 많이 보아오지 않았는가. 사실 병산서원으로 가는 이 길도 자칫 접근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언제든지 말끔한 포장도로로 덮일 위기(?)에 놓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책이 출간된 97년부터 21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사람들은 여전히 10분여의 시간동안 조금 불편하지만 즐거운 덜컹거림을 경험해야 비로소 병산서원에 닿을 수 있다. (여기에는 역시 ‘비포장도로로부터 시작되는 병산서원의 정체성‘에 대해 열렬히 설파한 저자의 공로가 크다고 생각한다.) 병산에서만큼은 편리함이 매력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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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은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 정책 시행 당시 살아남았던 전국의 47개 서원 중 하나이자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로, 그 역사적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규모는 생각보다 작았지만 앞선 부석사처럼 자연과 합일된 공간으로서의 존재감만큼은 그 어느 곳보다 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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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린 후 5분여를 걸어 도착한 서원은 흔히 생각하는 문화재로서의 위엄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이곳에 학생이 몇 명이나 들어갈까, 싶을 정도로 아담한 곳이었다. 동재, 서재와 같은 강학 공간, 그리고 전사청과 같은 제향 공간 등 각각의 건축물들의 목적이 명확한 것을 제외하고는 마치 조선시대 어느 향반의 집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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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간이라 시간으로 따지면 불과 몇 분 만에 둘러볼 수 있는 곳이었지만, 한 번 이곳에 들어온 많은 사람들이 좀체 떠나지 않고 이곳에 머물다 가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처음 병산서원에 들어섰을 때 놀랐던 것은, 동재와 서재, 그리고 입교당 툇마루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신발을 벗고 올라가 조용히 경치를 감상하고 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눈빛이었다. 병산서원에서는 그 누구도 핸드폰 화면 속에 코를 박고 있거나, 인생샷을 남기려고 시끄럽게 소리치며 줄을 서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러한 모습을 낯설게 여겼던 나 역시 어느새 그들처럼 동재 마루 위에 걸터앉아 병풍처럼 둘러진 산과 물을 바라보며 여름 바람을 맞았다. 이렇게 이 날 토요일 오후, 나의 시간은 조금 더 느려졌다.

 

*


이날의 내 기행은 분명 내가 어쩔 수 없는 ‘젊은 꼰대’임을 다시 확인시켜준 여행이었다. 이 날 방문했던, SNS에서 유명하다고 알려진 다른 여행지들에서는 ‘이 지역도 많이들 알고 오는구나’ 싶을 정도로 내 또래 여행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으나, 유독 이 두 곳, 병산서원과 부석사에서만큼은 이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자가용이 아니면 쉽게 찾아올 수 없는 곳이라 그랬을 거라며 애써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옮겨보지만, 사실 이제는 너무나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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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친구들과 다른 책을 좋아하면 어떠랴, 내가 즐겁게 읽었는데. 조금 오래된 걸 좋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Z세대라고 다 빠르고 새로운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남들이 다 하는 걸 나만 안한들 뭐 어때.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오늘 내가 부석사 무량수전 처마 밑과 병산서원 입교당 마루에 앉아서 떨쳐내 버렸던 건, 다름 아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의 방식과 속도가 진정 맞는 것인지에 대해 간간히 고개를 내밀곤 했던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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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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