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궁'며들다 –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도서]

궁궐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글 입력 2021.06.1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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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울’이란 작가의 이름에서부터 왜인지 서울에 대해 낱낱이 알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아주 사적인’이라는 책의 제목은 나도 모르는 서울을, 그것도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궁궐을 아주 친근하게 알려줄 것 같았다. 그래서 책날개를 펼치고 작가 소개를 읽었을 때 ‘박물관을 좋아하는 유물 애호가’라는 말에 조금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몇 장 넘기지 않은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단호한 어조로 “고궁이 싫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앞의 기대를 깨는 말에 당혹스러웠으나 책을 읽으며 작가가 점차 ‘궁’며드는 모습과 시선에 약간 뿌듯해졌다.

 

작가의 소개를 빌려 독자인 나를 표현하자면 ‘궁궐을 좋아하는 역사 애호가’라고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자주 가던 곳이 궁궐과 박물관·미술관이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역사를 배우고 그와 관련된 것들을 애호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궁궐을 좋아한다. 궁궐의 고즈넉함이 주는 편안함이 발길을 이끌고 수선스럽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또 어쩌면 익숙한 장소로 마음속에 자리 잡아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예전에는 궁궐을 왜 좋아하냐고 묻는 말에 하나씩 답변하기 위해 좋아하는 이유를 일일이 기록하고 들려주었다. ‘내가 이만큼이나 좋아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에 대한 근거를 모은 것 같기도 하다.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혹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무언가 좋아한다고 말하면 꼭 “얼마나?” 하는 질문이 따라붙어 약간 당혹스러울 때.

 

좋아하면 좋아하는 것이지 그것에 깊이를 설정하고 단계별로 나누어 판단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싶으면서도, 질문을 받으면 열렬한 신봉자가 되는 것처럼 열변을 토해내게 된다. 좋아하는 것까지 다른 이와 경쟁해서 증명해내야지 드디어 ‘좋아한다’라는 타이틀을 얻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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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좋아하는 이유만 찾아왔었는데 솔직하게 궁궐이 싫었다고 말하는 작가가 새로웠다. 이러이러한 점 때문에 데면데면했다는 작가의 말에 오히려 궁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시선에 당혹스럽긴 했으나 그 나름대로 놀랍기도 했다. 무엇보다 궁궐을 다니면서 점차 애정을 갖게 되는 작가의 모습은 왠지 모를 뿌듯함까지 불러왔다.

 

여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궁궐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과정을 오롯이 본인의 시선으로 담아내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많이 알고 깊이 있는 모습을 강조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이 보는 궁궐의 매력을 유쾌하게 써내려 흥미로웠다.


역사가 주는 중압감에 그와 관련된 것들은 항상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고 전통을 따라야 한다는 약간의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설명할 때도 쉽게 풀이하기보다 잘 쓰지 않는 전문용어를 사용해서 말하곤 했다. 그렇게 해야만 본래의 뜻을 잘 전달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관심을 가지고 다가온 이들이 어려운 어휘에 지쳐 금방 흥미를 잃었다. 그렇다고 길게 풀어서 설명하자니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고민을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풀어쓰면서 문제를 해결했다. 전통을 옛날의 무엇으로 가만히 놔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 끌고 와서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꼭 조선 역사를 다 알아야만 궁을 즐길 수 있나?”라는 그의 명랑한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신선한 표현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인상 깊었던 비유는 궁궐 전각의 석조 기단인 월대를 조선시대의 베란다로, 궐 내 마당의 박석을 체스판과 레드카펫 사이로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월대와 박석을 보면서도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독창적인 시선이었다. 그의 특이한 발상에 정말 그런가 싶어져서 한번 궁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분명 프롤로그에서는 “싫다”라고 말했지만, 자신의 글을 통해 누군가 궁궐에 방문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그런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궁궐을 좋아하는 만큼 솔직하고 당당하게, 또 이야기를 나눈다는 느낌으로 접근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 사실은 싫어하는 것도 사랑이라는 고백과 함께 순순히 궁궐을 좋아하는 마음을 인정하는 작가의 솔직함에 다시 궁궐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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