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화대혁명을 기록하는 두 가지 시선 [영화]

영화 <5일의 마중>과 <햇빛 쏟아지던 날들>
글 입력 2021.06.1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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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머우의 <5일의 마중>과 장원의 <햇빛 쏟아지던 날들>은 문화대혁명 시기가 서사의 배경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두 영화가 영화라는 기록의 관점에서 문화대혁명을 드러내는 방식은 아주 다르다.


 

 

아픔과 상흔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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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의 마중>은 문화대혁명 당시의 지식인과 그 가족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아픔과 상흔에 주목한다.

 

주인공 루옌스는 대학교수로 문화대혁명 때 지식인, 즉 ‘반동분자’로 여겨져 잡혀가 십여 년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옌스는 아내 완위가 심인성 기억장애로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 완위는 끝까지 옌스를 기억하지 못하고 돌아온 옌스를 끊임없이 기다린다. 거기엔 여전한 아픔이 서려 있다. 옌스가 묵묵히 아내의 곁을 지키는 모습에서는 치유나 극복보다, 수용과 체념이 느껴진다.


완위의 기억은 문화대혁명의 그 시점에 머물러 있다. 이는 문화대혁명이 끝났음에도 그 상처는 계속되고 있음을, 망각을 되풀이하며 상처 자체를 잊는 식으로 아픔을 버티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옌스의 사랑으로 표현되는 (어쩔 수 없는) 수용과 체념의 태도는 그 상처가 결코 극복하기 쉽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세상은 무자비하게 변화했다. 어제는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가 순식간에 가엾음의 대상이 됐다. 어제는 이게 좋은 일이었다가 내일은 저게 좋은 일이 됐다. 그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은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았고, 그들은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를 버텨낼 뿐이었다.

 

그렇게 버티다 생긴 상흔은, 잊히었다. 그리고 기억되기 위하여 망각이라는 또 다른 아픔으로 기록됐다.

 

 


햇빛 쏟아지듯 찬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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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쏟아지던 날들>은 <5일의 마중>과 전혀 다른 지점에서 문화대혁명을 바라본다. 같은 시기에 존재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서술자를 10대 소년으로 설정하여 계층과 나이, 상황에 따라 역사적 사건이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집중한다.


주인공 마샤오준의 가족은 국민당 세력으로 몰린 외할아버지로 인해 피해를 입는다. 그러나 가족인데도 정작 그 상처를 피부로 느끼는 것은 마샤오준의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일 뿐, 마샤오준과 그의 친구들에게 문화대혁명이란 자유의 시기에 불과하다.

 

고통스러운 현실은 영화에서 연출적으로 묘사한 것과는 별개로 시점 주체인 마샤오준과 친구들에게는 전혀 자각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단지 아버지가 집을 비우고 청년들이 군대에 가는, 다시 말해 ‘권력’의 부재로 오직 자신들만의 세계가 주어진 햇살 가득한 날들 중의 하나였다.


이 영화는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는 주인공이 이때를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라 청춘의 향수가 담긴 추억의 일부로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동시에 역사적 진실은 서술자의 기억에 따라 재편되고 재구성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사실상 ‘진실 다운’ 진실은 아니더라도 ‘진실이 아니라곤 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건 완전히 환상이다. (...) 진실을 말하려고 애썼지만 진실을 말하려고 할수록 자꾸 잡생각들이 나를 괴롭혔고 슬프게도 진실이 사라져갔다. 기억은 항상 감정에 따라 바뀌었고 나를 괴롭히고 배신했다. 너무 혼란스러워서 기억의 진위를 모르겠다.

 

- 어른이 된 마샤오준

 


"완전히 환상"이며 "기억의 진위를 모르겠다"는 마샤오준의 말을 통해 관객에게 던지는 기억에 대한 의문은, 역사적 '진실'과 동의어로 기능하는 '공식' 기억에서 제외된 비공식적 기억들을 소환한다. 이는 미화의 시도가 아니라 기억을 기록하는 역사의 본질에 닿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


두 영화 모두 문화대혁명이라는 사건이 그 역사의 주체인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중점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는 정치적 맥락의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 사건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누군가에게, '정치성'의 무엇 정도가 아닌 삶 자체라는 것이다.


아울러 누군가에게는 아픔인 것이 자각되지 않을 만큼 아프게 새겨져 버린 흉터로 남았고, 누군가에게는 행복했던 기억만 남기기 위해 스스로 왜곡했을지 모를 추억으로 남았다고, 영화는 각각 기록한다. 그리고 이 기록의 서사를 통해 기억과 기록을 매 순간 마주하는 관객을 향해 묻는다.


기억은 무엇을 기록하는가? 기록은 또 어떻게 기억되는가? 기억을 기록하고, 기록을 기억하고, 그것들을 알고 배우고 기록하고 또 기억하는 자는 무엇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가, 를.

 

 

[송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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