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극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니 -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글 입력 2021.06.1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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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허'의 삶은 엉망이다. 학우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아빠와는 말 섞지 않는다. 속이 끓고 참지 못하겠는 순간이 많다. 모욕을 일삼는 학우들에게 물감을 뿌리고, 어린 직원에게 무시 받는 아빠에겐 한심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삶이 엉망이고 자주 속이 끓는 건 3년 전 엄마가 살해당하면서부터다. 자허는 웃지 못하겠다. 인상을 구기고 입을 다물어야 버틸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다 마주친 '유레이' 때문에 우울은 증오로 바뀐다. 엄마를 죽인 유레이는 엉망인 자기 삶의 원흉이자 우울함의 기원이다. 미성년이라 4년형 판결이 나왔는데 그마저도 채우지 않고 멀쩡한 얼굴로 정비소에서 일하는 그를 보며 속은 더 뒤집어진다.

 

증오의 대상이 분명해졌다. 욕지거리를 뱉거나 물감을 뿌리는 걸로는 부족하다. 자허는 유레이의 삶에 달라붙는다. 그의 일상에 침투해 같이 어울리는 한편 변호사를 찾아가 재판 재개의 가능성을 따져본다.

 

자허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이 때부터 종잡을 수 없어진다. 자허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 속에서 천불이 나는 마음이 묘사되는 것과 별개로 자허는 유레이 무리와 점점 더 깊게 얽힌다. 유레이는 종종 자허에게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고 그걸 듣는 자허의 표정은 기이하다. 자허가 유레이를 죽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장면이 끼어들다가도 행동거지는 친한 친구를 대할 때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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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허가 유레이에게 SNS프로필의 의미를 묻자 유레이는 과거에 본 폴란드 영화라며 그 내용을 설명한다. 주인공이 기차에 탔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모두 보여주는 영화인데, ‘어쩌다보니’ 발생한 우연과 선택에 의해 인과가 달라지는 게 인생과 비슷하지 않냐고 말한다.

 

유레이가 말한 어쩌다보니,는 자기 행동의 고의성을 부정하는 변명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같은 자조 섞인 탄식이다. 그에게도 맥락이 있었다. 새 아빠가 싫고 자신에게 무엇도 묻지 않는 엄마도 싫다. 자기 처지에 대한 비관에 휩싸인 순간에 ‘어쩌다’ 린자허의 엄마가 거기 있었다.

 

린자허는 그의 말을 이해한다. 삶은 내 뜻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알 수 없는 곳으로 ‘나’를 던져놓는다. 유레이가 자허의 엄마를 죽이고 자허의 삶이 한 순간 엉망으로 돌변한 것처럼. 자허는 점점 유레이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복수와 파국을 그리지 않는 성장영화


 

영화의 전개가 종잡을 수 없는 건 영화가 기구한 사건의 당사자가 겪는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을 표현하는데 주력해서다. 주순 감독은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영화를 연출했다. 중국 내 중년 여성이 묻지마 폭행을 당했지만 가해자가 14살 미만이고 정신질환자란 이유로 처벌을 피한 사례다. 피해자의 딸이 가해자의 행방을 수소문해 그에게 휘발유를 뿌리려 시도했으나 돌아갔다는 결말이다.(김소미,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뜨겁고도 차가운, 성장의 장력, 씨네 21, 21.06.09)

 

몇 줄의 사연이지만 당사자의 마음에는 메울 수 없는 도랑이 생긴다. 주순 감독은 복수심에 타올랐던 피해자가 왜 돌아섰는지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영화에는 비극을 겪은 사람이 도랑을 메우고 이전의 삶에 복귀하기를 바라는 연출자의 마음이 있다.

 

“나는 또 다른 네가 되고 싶지 않아” 강물에서 유레이를 죽이려 시도하다가 금방 단념한 린자허가 말한다. 문득 스치는 충동에 휘말리면 결국 자신도 유레이와 똑같은 살인자 아니겠냐는 맥락이다. 린자허는 충동이나 복수에 얽매인 삶이 세상과 어떻게 유리됐는지 유레이의 후회를 통해 배웠다.

 

린자허는 그 말을 하며 웃고 있다. 그건 자기 안의 이성을 따라가보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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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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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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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꼬치 학살자
    • 아 다른 글에 비해 아쉽습니다.... 좀 더 깊은 시각이 있었으면 하네요. :(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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