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휴식과 일상의 시간들 -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6.1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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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은모든 작가의 중편소설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이다. 은모든 작가는 단편소설 「포춘쿠키」를 통해 접해 본 바 있다(단편소설 「포춘쿠키」에 대한 리뷰는 이곳에). 「포춘쿠키」에서는 각박한 생활을 접고 서울에서 벗어나 평범한 휴일을 누릴 수 있게 된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은모든 작가는 아무래도 오늘날의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극적인 이슈들을 문장 속에 직접적으로 담아내기보다는, 휴일을 맞이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사건들로부터 한 걸음 벗어나 삶의 회복을 그려 내려 한 것 같다. 몸소 사건의 현장으로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지 않고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해 인물들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삶을 점검하는 소설의 설정은, 어쩌면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청년들을 위한 위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편소설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역시 「포춘쿠키」와 결을 같이하고 있다. 2020년 5월에 출간된 이 소설은 단편소설 「포춘쿠키」에 1년 앞서 발표된 작품이다.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는 전업 과외 교사로서 바쁜 나날을 살아가는 ‘경진’이 오랜만에 휴가를 맞이하며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외생 ‘해미’와 연락이 두절되어 안심할 수 없는 휴일인 와중에도 그녀의 휴식에는 여러 사람들이 접촉해오고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들을 전해 듣게 된다. 웃긴 얘기와 슬픈 일화들이 쉼없이 교차하는 소설의 서술 속에서, 작가는 소통과 휴식을 한데 어울러 놓으며 새로운 종류의 연대를 모색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날의 현실을 따뜻하게 주무르려는 은모든 작가의 문제의식을 중편소설이라는 형식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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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간만의 휴가를 앞두고 들뜬 경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전업과외교사라는 프리랜서 신분으로 일하면서도 평일과 주말 항상 일정이 가득한 삶을 살아온 경진은 모처럼 사흘간의 긴 휴가를 마련했고, 세상 사람들과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어디 떠나지 않고 많은 잠을 자기로 계획한다. 그런데 그녀의 계획은 이내 틀어진다. 과외생 해미가 실종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해미를 찾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력을 발휘하지 않지만, 마음이 불편한 휴일을 보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한편 파혼한 친구가 갑자기 집으로 찾아와, 집에서 잠만 자려던 계획 역시 틀어진다. 이내 경진의 휴일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계속 진전된다. 친구와 함께 을지로로 나가 기분풀이를 하고 이태원에서 호캉스를 지내며, 남은 휴일 동안에는 오랜만에 고향 전주에 내려고 그 동안 새삼 바뀌어버린 전주의 모습을 경험한다. 이러한 즉흥적인 여정에는 여러 주변인들―버스 옆자리 아주머니, 고등학교 동창, 길 잃은 관광객, 세신사 등―이 수시로 나타나 말을 걸어주면서 경진의 휴일을 더욱 풍성하게(성가시게?) 한다.


소설의 구성 측면에 있어서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수많은 무명씨들이 소설의 진행에 자꾸 개입한다는 점이다. 소설의 제목이 암시하듯, 각자의 사연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경진에게 말을 붙이게 되는데, 이 인물들의 발화를 통해 오늘날 우리나라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이 드러나게 된다. 비혼과 미혼모, 소수자, 피씨(PC, political correctness) 등 사회 정의의 문제부터, 교권을 남용한 체벌, SNS를 통해 여중생에게 접근하려는 성인 남성의 모습 등 일상적인 범죄의 모습까지, 불쾌한 현실이 소설 속에 계속 언급된다. 주변 인물들의 이러한 직접적인 발언들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소설가의 태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의 발화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들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설 전반을 지배하는 거대한 플롯은 경진의 휴일과 휴식으로 줄곧 일관되며, 경진의 선택에 의해 주변인들의 목소리가 부수적으로 참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이 소설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작가는 경진의 휴일을 소설의 주제로 견지하고 있으며 이 이슈들로 소설이 잠식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 소설은 분명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첨예한 이슈들로부터 주인공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이 나는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가 오늘날의 다른 소설들과 차별되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도 갈등과 대립으로 가득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켜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학교나 직장으로 이동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와 자유로운 저녁을 누리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소중한 생활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그리고 있는 과외교사 경진의 일상과 휴일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며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물론 주인공은 자신의 휴일을 십분 누리면서도 주변인과의 대화를 거부하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의 일상과 휴식을 지켜나감으로서 여유를 얻고 그 여유로 일면식 없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암묵적인 연대를 이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소설 속 또 하나의 특별한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작가 자신이 탄생시킨 인물들을 변화시키거나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은모든 작가 소설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소설이 진행되며 인물간의 접촉은 발생하지만, 접촉 전후로 어느 인물의 일상도 변하지 않는다. 소설적 사건을 통해 인물에게 있어서 새로운 영감이나 통찰력이 생기지 않으며, 인물들은 짧은 휴식을 뒤로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게 된다. 사실 전통적인 소설 장르의 특징을 토대로 생각하면 이는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사건이 발단되어 긴장이 고조되며 모종의 방식으로 이 긴장에 도전하여 새로운 국면에 도달하는 것이 전통적인 소설이라면, 은모든 작가는 소설을 위해 자신이 동원한 인물들을 다시 제자리에 데려다 놓는다. 경진에게 말을 걸었던 인물들은 다시 자신의 생활로 돌아가고, 경진 자신도 자신의 생활로 돌아간다. 소설의 전과 후에 인물에게 있어서 변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나는 작가가 설계한 이러한 소설 구조가 독자가 살아가는 삶과 유사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소설에 이입하며, 곧 우리의 삶을 소설에 투사한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어떤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나든 간에 독자는 책장을 덮으면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진이 휴일 후에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 것처럼 독자도 독서라는 일탈을 경험한 뒤에 결국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은모든 식 서술은 “너의 삶을 주도 하고 삶을 개선해 보”라는 자극제와는 거리가 멀고, “이제 우리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위안에 가깝다.


물론 소설의 전과 후, 주인공 그리고 독자에게 변화가 없을 순 없다. 특히 독자에게 있어서, 경진이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 모습들은, 새로운 방식의 연대로 느껴질 것이라 생각한다. 광장에 나가 구호를 제창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조리를 극복하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 그러니까 스스로 애쓰며 자신의 삶을 극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때는 바로 대화의 순간들이다. 경진은 가장 기본적인 방식의 연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아마 소설을 읽고 나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독자들도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가족이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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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모든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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