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의 크리스마스 드레스코드는 수영복이었다 - 1편 [여행]

해외여행 막차 탔습니다
글 입력 2021.06.11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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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몰랐다. 19년 12월의 내가 이토록 부러워질 줄.

 

그해 크리스마스는 바이러스를 신경 쓰지 않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맘 편히 어디서든, 뭘 하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연말이었다. 하지만 20년 연말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 몰랐던 19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주 칭찬해주고 싶은 행동을 했다. 바로 크리스마스 기간을 베트남에서 보내기로 한 것.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친구 S와 나는 대학교 1학년을 마무리하고 바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고, 우리가 짠 3박 5일간의 여행 일정에는 크리스마스가 끼어 있었다. 평소에 크리스마스를 화려하게 챙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해외에서 춥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는 생각에 여행 전 설렘은 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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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처음 마주한 베트남. 종강 시즌이면 느끼던 한국의 춥고 건조한 공기와 달리 살짝 덥기도 했고, 습한 기운이 확 몰려왔지만 베트남의 첫인상은 설렘 그 자체였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12시 30분이었기 때문에 낮보다는 조금 더 쾌적한 날씨이기도 했다.

 

스스로 준비해 떠난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스무 살 둘은 부풀어가는 기대감에 마음이 급했고, 서툴기도 했다. 평소엔 걱정도 많고 겁도 많은 나였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호찌민에서 약 400km 떨어져 있는 어촌 마을 무이네까지 가는 슬리핑 버스를 척척 예약했다.

 

하지만 여행 초짜들은 비행기에서 내려서부터 무이네로 가는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의 공백을 과감히 무시해 버렸고,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 집에 돌아온 선배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가득 받은 채 몇 시간 동안 탄손넛 공항에서 날밤을 새웠다. 버티던 중 '도저히 이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몇 시간 머물 숙소도 잠시 알아봤지만, 대부분 당일 예약이 불가능했고 전화를 통해 베트남 현지인과 영어로 소통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공항 내 매점에서 산 콜라는 미지근했다. 카페에서 산 아이스티에 각얼음이 가득 들어있을 때, 얼마나 환호했는지. 공항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고, 옷도 갈아입고, 화장도 고치다 보니 조금씩 해가 떴고, 우리는 공항 출입구 너머 스타벅스가 오픈하자마자 그곳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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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위와 습기, 피로에 지쳐 가는 중 만난 익숙한 초록색 빨대, 아이스 라떼는 정말 반가웠다. 그리고 허기를 채우려 아침 세트를 시켰는데, 머핀 두 개와 커피 두 잔이 한화 만 원에 불과할 때. 우리는 타지에서의 두려움을 조금씩 내려놓고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늘 안심할 때 사건은 터지는 법. 예약 시간이 다 되어 미리 안내받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고, 회사 측에 전화해 봐도 기다리라는 답뿐. 하염없이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 정류장 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버스들이 모인 주차장에 가서야 우리는 차를 찾을 수 있었다. 자세한 사정이나 시스템은 여전히 잘 모르지만, 봉고차를 타고 또 다른 정류장에 가서 큰 버스로 갈아탄다는 설명을 들었다.

 

다른 한국인 여행객들이 타고, 안심하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 팔려 가는 거 아니겠지...' 생각하며 무서움에 떨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상황에서도 사진도 찍고, 음료수도 마시고, '그때의 나는 대체 뭐였지?'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이란, 그렇게 나를 바꾸어 놓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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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핑 버스를 타고 베트남의 풍경을 구경하며 4시간쯤 달렸을까, 우리는 무이네에 도착했다. '베트남 완벽하게 즐기기' 미션을 받은 것마냥 우리는 바쁘게 움직였다. 리조트에 짐을 풀자마자, 예약한 지프가 도착했고, 우리의 '지프 투어'가 시작되었다.

 

호찌민의 도시 풍광과 다르게 다양한 그림의 자연이 있는 무이네. 이 자연을 하루 만에 스릴있는 지프를 타고 즐길 수 있는 '지프 투어'는 일출 투어와 일몰 투어로 나뉜다. 우리는 버스 이동 시간 탓에 일몰 투어를 선택했다. 협곡 사이의 샘물을 걸어볼 수 있는 '요정의 샘물' 코스, 사구(모래 언덕)지만 마치 바다 옆 사막을 보는 것 같아 신기한 '화이트 샌듄'과 '레드 샌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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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샌듄에서의 ATV 체험은 평소라면 내가 절대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모래 언덕이지만 경사가 엄청났고, 주변에는 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어 자칫하면 빠질 것 같아 겁이 났다.

 

무엇보다 바이크의 속도는 생각보다 놀라웠다. 바이크에 탄 채 먼저 달려가는 다른 여행객들을 보며 잠시 뒷걸음질을 쳤지만, 무서움보다는 여행 와서 모든 것을 해 보겠다는 욕심이 더 컸던 나는 용기를 내서 바이크에 탔다. 타는 동안 모래가 날려 소리도 못 지르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바람에 내리고 나서 목이 탔지만, 정말 새롭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일몰 투어는 레드 샌듄에서 일몰을 구경한다. 레드 샌듄의 붉은 모래와 무이네의 높은 하늘, 타들어 가는 노을이 한 프레임 안에서 어울려 절경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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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부터 버스 이동, 바로 이어지는 투어까지 쌓인 피로가 엄청났지만 투어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사실 앞서 '스릴'이라고 표현했지만 숙련된 현지인 기사님이 모는 지프는 정말 투박했고, 가끔은 위험하진 않을까 두려웠다. 마치 도로 위의 무법자처럼 엄청난 속도와 핸들링으로 달리는 지프 위에서 얼마나 많은 모래바람을 맞았는지.

 

하지만 잔뜩 덜컹거리는 차 위에서 깔깔 웃었던 순간들과, 이동 중 잠시 멈춰 구경하는 풍경들, 시원하고 통쾌했던 그 느낌은 우리의 본격적인 여행 첫날, 시작을 멋지게 장식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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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빡빡한 일정에 투어가 끝나고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 한 끼도 먹지 못한 우리는 화려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어촌 마을답게 해산물을 바로 조리해 주는 곳이 많았고, 먹는 것은 절대 실패하고 싶지 않아 이미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다녀갔다는 음식점을 선택했다.

 

타이거새우, 모닝글로리, 계란볶음밥, 갈릭소스를 얹은 가리비, 망고스무디까지. 한국이라면 상상하지도 못할 저렴한 가격에 배불리 만찬을 즐겼다. 평소 손에 묻히고 먹는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도, 정신없이 새우를 까먹었던 기억이 난다.

 

바쁘게 즐겼던 이 날은 사실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사실 새우의 맛은 이제 기억에서 사라져 가지만 식당에서 리조트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의 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우리는 그때부터, 베트남이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깜깜한 밤거리를 달리던 택시. 기사님이 갑자기 차를 세우고 길 건너에 있는 동료분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뭐라 물어볼 타이밍도 놓쳐, 영문 모른 채 택시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곧 반짝반짝 빛나는 미러볼을 마주했다. 갑자기 어디서 가져오신 건지 기사님은 미러볼을 차 가운데 놓고 록 버전 캐럴을 틀기 시작하셨고 광란의 택시는 그렇게 신나게 달려 리조트에 도착했다.

 

정말 당황스럽고 놀라운 상황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와, 결국 이해할 수도 없는 노래에 리듬을 타며 즐겼던 순간. 참 여행다웠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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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돌아온 리조트. 밤하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빛나고 있었다. 급하게 핸드폰으로 찍느라 별이 거의 보이지 않는 사진만 남았지만, 그래도 사진을 보면 행복했던 그때가 느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했지만, 하늘을 올려다본 채 빙글빙글 돌며 한동안 별을 구경했다.

 

치열한 입시 이후, 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온 스무 살에게, 직접 번 돈으로, 직접 준비해 떠난 첫 여행의 밤하늘은 유난히 반짝거렸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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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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