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원히 찰나를 그려내고 싶어요 [사람]

단절의 안정에서 시작된 나의 그림
글 입력 2021.06.0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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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첫 크로키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언제나 관찰하고, 감상하고, 그려낸다.

 

 


회고



어느 날 아버지께서 하셨던 이야기를 기억한다.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열기 올라오는 아스팔트를 걸으며 하교를 하던 중 아버지로부터 갑작스레 시내로 나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스마트폰 너머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무언가 결단을 내린 듯한, 언뜻 엄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때 나는 타국에서 적응하지 못해 불안한 어린 나날들을 보내던 중이었다. 앞길에 대한 걱정을 일상처럼 하던 때라, 나는 그 전화를 받자마자 드디어 아버지께서 내가 어영부영 보냈던 시간에 대해 크게 타박하고 앞으로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결정하신 것이리라 확신했다.

 

언제나 아버지께 가는 길은 즐거움이 넘쳤는데, 이날은 순식간에 고행길이 되어버렸다. 이 걸음의 끝이 아버지께서 나에게 영영 실망하시는 최후가 될까 무서웠다. 각국의 언어로 메워진 지하철에 발을 얹어 시내로 향했다. 푸르른 하늘의 여름날이었기에 지하철 밖은 햇빛 찬란한 그림과도 같았으나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들을 말의 내용에 대한 추측만을 생각했다. 두려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생각들 대부분이 부정적인 결론으로만 연결되었기 때문에 점차 감정은 가라앉았고, 지하철 안에서의 짧은 시간은 영겁과도 같았다.


그러나 아버지를 마주하자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마 앞으로 그날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종이와 연필 걱정은 하지 말고 네가 그리고 싶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그려."

아버지의 손에는 큼직한 스케치북과 스케치북 케이스, 그리고 고급 연필 세트가 들려있었다. 철제로 이뤄진 의자에 앉아 아버지는 말씀을 이어가셨다.


"너는 항상 무언가에 금방 싫증을 내며 질려 했어. 무언가를 시작해도 그것이 오래가는 법이 없었지. 네가 처음 그림을 그리겠다며 연필과 종이를 찾아다닐 때도 당연히 오래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어. 그리 생각하며 너를 봐온 지 벌써 3년이 지났어. 너는 그동안 꾸준히도 그림을 그렸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네가 무언가에 이리 마음을 붙이는 것은 처음이야. 그려. 네가 그리고 싶은 모든 것들을 그려내. 연필과 종이는 걱정하지 말고, 다 닳은 연필 꽁다리와 흑심 묻은 종이가 산을 이룰 수 있을 때까지 네가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껏 그려. 네 뒤에서 네가 그것들을 준비해줄게."


어리둥절하게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던 게 기억난다.


 

 

단절의 안정



내가 지내던 타국은 여름을 지칭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한 해의 대부분이 더위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기억나는 것은 건조한 공기 속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즐거운 웃음소리. 그리고 그 소리 사이에서 과분한 햇빛에 숨겨 흘려보냈던 외로움들. 차오른 감정은 제때 표현하지 못하면 어느새 속에 고여 썩기 마련이다. 그곳에서의 난 그것을 감내하기에는 아직 너무도 미성숙한 나이였다. 열을 갓 지났으니까. 차마 힘들다는 말을 꺼내지 못해 속에 차곡히 쌓아 올리던 중이었기에 더욱더 힘들었던 것 같다. 감정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그때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라고는 스마트폰과 종이와 연필뿐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선 한 두 개를 그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한국에 있을 때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어봤던 것을 떠올리며 자신감을 가졌다. 이후 선에 망설임이 없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소심하게 이어지던 선들은 어느새 하나의 거대한 원이 되었고, 그 원들이 모여 순식간에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단정함이라는 단어를 대변했다. 산처럼 쌓아 올려졌던 감정들이 흑심에 묻어 종이 위에 피어났다.


종이는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세상의 지반이었다. 새하얗던 공간들이 내가 손을 쓰는 대로 의미를 부여받기 시작했다. 세상을 창조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선을 긋는다. 선이 그어진다. 이 단순한 과정의 반복일 뿐이었다. 이곳에는 나를 지독히 괴롭혔던 어떠한 우연과 개입이 없었다. 정직했다. 크게 그리면 큰 그림이, 작게 그리면 작은 그림이, 조금 공들이면 더 좋은 그림이 나올 뿐이었다.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말하지 못해 한껏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려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무언가를 그려내는 시간의 흐름에 부유하다 보면 누구도 나를 방해할 수 없었다. 오롯이 시선에 집중하며 마치 물속을 유영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이국의 언어들, 웃음소리와 울음소리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나로부터 아득히 멀어졌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공허한 공간에서 부유하는 느낌에 깜짝 놀라 그림을 그리다 말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금세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어떠한 잡음도 나를 잠식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단단한 고치를 만들어 그 안에 숨어있는 아늑함이었다. 세상에 흔들리던 나에게 부목이, 방패가 생겼다는 사실을 곱씹었다. 그 누구도 그림 그리는 동안은 나를 방해할 수 없다는 확신의 기쁨이었다.

 

연필을 들어 선을 그었다.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기존에 쌓여있던 감정들을 차근차근 풀어냈다면, 이후에는 어쩌면 울컥 솟아오르는 속을 토해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벅차오르는 감정들을 감당하지 못할 때마다 급하게 종이를 찾아 위로 토해냈다.


스케치북 속은 잿빛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존재한다. 사탕이나 케이크 같은 달콤한 것들로 가득 스케치북을 채우면 그곳이 달콤한 세상이었고, 창가와 고양이, 침대, 이불 등을 그리면 그곳이 아늑한 안식처였다. 비록 허상의 것들이었지만 그런 그림을 그려내면 정말 신기하게도 마음 한 켠이 가벼워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부대끼는 세상에 멀미를 겪던 열 살의 소년이 마침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찾아냈다.


순식간에 삶과 그림이 동일시되어버린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림으로 가득 채운 스케치북은 해가 지나기도 전에 큼직한 이사 박스 하나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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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벼운 낙서의 즐거움

 

 

 

어린 욕심



그림에 대해 하나 둘 지식이 늘어날 때쯤 타블렛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저 종이와 연필이라는 기본적인 재료로만 그림을 그리던 중이었기에 디지털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심이 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서도 내가 마주하고 있던 현실은 저가 타블렛도 선뜻 사기엔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은 알았다. 결국 욕심을 숨기고 마음 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보는 것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욕심과 열망은 숨긴다고 쉽게 숨겨지는 것이 아니었고, 나는 시내 한쪽에 있던 전자기기 가게에서 몇 달 동안 몰래 타블렛을 훔쳐보다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왜 이리도 늦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그저 산책을 하다 늦었다고 얼버부리는 동안 언제 타블렛을 부탁드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마침내 생일 때 용기 내 품에 안았던 타블렛 박스의 그 감촉을 잊지 못한다. 매일같이 출석 도장을 찍는 어린 소년을 눈여겨본 것인지, 전자기기 가게의 사람들이 타블렛을 품에 안고 있는 나에게 "그리 오래 바라보더니 드디어 사게 되는구나, 축하해"라고 이야기하며 지었던 웃음도 아마 영원히 뇌리에 박혀있을 것이다.

 

최근 이 타블렛이 꼬박 10년을 채우고 명을 다했을 때, 습도 높은 감정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 마음의 눅진함은 단순히 오래된 물건을 향한 아쉬움 때문은 아님을 알고 있다.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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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의 크로키들


 

좋아하는 것이 '그리기'에서 시작해 '그림'으로 변화한 것은 성장하고 싶다는 갈망에서 이뤄진 것이다. 잘 그리기 위해서는 많이 관찰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많다는 SNS 계정을 개설해 좋아하는 스타일의 그림들을 찾아 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림 감상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SNS에 수없이 올라오는 그림들은 너무도 다채로웠다. 같은 색을 너무도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한 것들을 보며 순식간에 나는 그 다양성에 매료되었다. 이 일러스트레이터는 어떤 색의 조합을 썼지? 어떻게 이런 구도를 그렸지? 이 사람이 좋아하는 고전 화가는 어떤 화풍을 갖고 있지? 이 화풍이 이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일까?


어느새 나에게 그림을 감상하는 행위는 그런 의문을 찾아내는 것과 같았고, 그런 의문들과 감탄 속에서 그저 그림을 차근히 뜯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움은 감탄을 불러내고, 그 감탄은 욕심을 끄집어낸다. 훌륭한 작품들을 보고 나면 어느새 손이 펜을 찾아 나선다.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그리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해 못 견디게 된다. 하지만 이런 답답함을 성가시게 생각한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다.




스며든 영원



비록 종이와 연필 걱정은 하지 말라던 아버지의 말씀은 수년이 채 지나지 않아 저버렸다. 아버지의 결심이 무색하게도 나는 연필과 종이가 부족해 그림을 전공으로 삼지 못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가지지 못했던 것이라면 몰랐으나, 한 번 가졌던 것을 잃었다는 느낌이 들어 쉽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아직도 미술을 전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미련이 남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괴로움에 그림을 저버리지도, 영영 다시는 그림을 안그리겠다 결심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나는 단단한 껍질에 들어가 세상 속 잡음을 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무엇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망설임 없이 그림을 이야기하고, 생애 가장 마지막으로 무엇과 묻히고 싶냐는 친구의 우스갯소리 질문에 고민 없이 타블렛이라고 대답한다. 슬프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에는 축배를 들기 난 타블렛 펜을 먼저 든다. 그림을 그릴 때면 망설임 없이 행복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삶과 그림을 동일시한 것은 어린 나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의 내가 그림을 사랑하는 방식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에 두시간씩은 꼭 작품들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진다. 아무리 바빠도 틈이 날 때는 펜을 들어 무언가를 그려내려 노력한다. 오랜 시간 펜을 들지 못하면 화가 나고 불행해진다. 반대로 말한다면, 그 무슨 불행이 있어도 펜만 있으면 마음이 다스려진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명을 다할 때까지, 아니 혹은 명을 다하고 나서도 영원히 나의 모든 시간 속 감정의 찰나를 그려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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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타블렛에서 올해로 꼬박 10년

 

 

추신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언제나 관찰하고, 감상하고,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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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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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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