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크루엘라, 영웅의 탄생 [영화]

잔인한 세상을 향한 통렬한 복수
글 입력 2021.06.0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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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크루엘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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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핼러윈 시즌에 이태원 등의 번화가를 방문하면 독특하게 분장하거나 캐릭터 가면을 쓴 사람들이 함께 모여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배트맨이나 아이언맨과 같은 영웅 캐릭터로 분장한 사람도 있었고, 할리퀸이나 조커처럼 사회의 음지에서 복수를 꿈꾸는 못된 악당의 모습으로 자신을 꾸민 이들도 많았다. 이는 그로테스크한 핼러윈 분위기를 즐기기 위함이겠지만, 종종 매력적인 악당 캐릭터(villan)가 웬만한 영웅보다 대중에게 더 큰 인기를 얻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소화했던 조커가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배트맨에 맞서 자신의 광기 어린 신념을 끝까지 고수하는 조커의 정체성을 잘 살렸기 때문이다.

 

평범한 인간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권선징악만을 바라보며 분투하기에는 너무나 나약하고, 현실은 논리에 맞지 않는 부조리함으로 가득 차 있기에, 천편일률적인 선(善)보다는 카리스마 있고 매력적인 악(惡)이 문화적인 우위를 점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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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해야 하는 점은 밑도 끝도 없는 사악함에는 대중이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악한 캐릭터의 서사를 구축할 때면 일말의 연민을 느낄 수 있는 공감 요소를 부여하여 일종의 당위성과 개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2019년에 개봉한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플롯을 설계했고, 불합리로 가득 찬 고담시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소시민이었던 ‘아서 플렉’이 뒤틀린 악당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그려내어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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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디즈니의 <크루엘라>를 관람했다. 1961년에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영화 <101마리 달마시안>의 메인 빌런 ‘크루엘라 드 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녀의 과거를 조명한 실사 영화다.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실사 영화에서 악당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피카레스크 장르를 개척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상술했던 <조커>나 <말레피센트> 등이 그 예시다. 하지만 <크루엘라>는 기존의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흐름과는 차별화된 양상을 띤다.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선도할 매력적인 빌런이 탄생한 것이다. 감히 짐작건대 코로나 이후의 핼러윈 축제에서는 크루엘라로 분장한 사람들이 월등히 늘어날 것이다.


<조커>에서는 사회의 소외계층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인공이 빌런이 되었고, <말레피센트>에서는 모성애를 부각하여 빌런의 면모가 조금 퇴색되었다면, <크루엘라>에서는 카리스마와 지성을 겸비한 괴짜 빌런이 위기를 딛고 일어나 보란 듯이 당당하게 성공하여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기존의 디즈니가 추구했던 ‘디즈니스러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혹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가 탄생한 것이다.

 

 

 

다들 빌런의 존재를 믿고 싶어 하니까 내가 빌런이 되려고



작품의 주인공인 에스텔라는 다들 빌런의 존재를 믿고 싶어 하니 자신이 빌런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는 세상의 잔인함을 딛고 일어나 통쾌한 복수를 선사하겠다는 다짐을 담아 ‘크루엘라’로 다시 태어난다.

 

마치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에드몬드 단테스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새로운 인물로 등장하는 것과 비슷한 흐름이다. 복수의 상대자가 멋있게 등장한 주인공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유사하다.


그렇다면 크루엘라는 과연 어떤 빌런이 되었을까. 원작 <101마리 달마시안>에서는 그녀가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강아지들을 잡아다가 모피 코트를 만들려는 억척스럽고 잔인한 모습으로 등장했지만, 이 영화에서의 크루엘라는 그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이 아니다.

 

마치 <위키드>의 오즈민들이 엘파바를 사악한 서쪽 마녀라고 부르며 일종의 이미지 메이킹을 했던 것처럼, 크루엘라의 악한 본성 또한 대중의 입맛대로 포장되어 만들어진 가짜일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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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엘라> 속 에스텔라는 담배도 피우지 않으며(이것은 디즈니의 방침이겠지만), 동물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 그녀는 ‘버디’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어릴 적부터 거두어 기르고 함께 생활했다.

 

이러한 성정은 에스텔라가 크루엘라로 각성한 이후에도 유지되며, 남작 부인은 그녀가 자신의 달마시안 강아지를 모피 코트로 만들었다고 의심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원작과는 다른 설정이라 다소 생소하지만, 관객은 선과 악을 가르는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보수적인 편견이나 선입견을 배제한 솔직한 시선으로 크루엘라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운명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



영웅적 인간이 저항할 수 없는 운명적 결함을 마주하고도 담담히 이겨낸다는 설정은 <오이디푸스 왕> 등으로 대표되는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플롯이다. 오이디푸스의 아내가 실은 그의 어머니였다는 진실이 밝혀지고 오이디푸스가 끝없는 좌절에 빠지면, 연극을 관람하던 고대 그리스의 관객들은 감정의 정화, 즉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 영화 속의 주동 인물(protagonist)인 크루엘라가 반동 인물(antagonist)인 남작 부인과 맞서면서 남작 부인의 숨겨진 딸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도 관객들은 알게 모르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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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시청자들이 <펜트하우스>와 같은 드라마 속의 인물에게 연민을 느끼고 갑갑함에 사로잡히면서도 동시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과 비슷하다.

 

관객은 <크루엘라>에서 운명의 굴레가 던진 모순 앞에 서게 된 주인공이 파멸의 길로 가게 될 것인지, 혹은 운명을 딛고 일어설 것인지 기대하면서 그녀 또한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동시에 잔인한 세상을 향한 통렬한 복수로 대변되는 크루엘라와 남작 부인의 대결 구도는 예측할 수 없는 긴장을 느끼게 만든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의 운명 비극에서 사용되었던 출생의 비밀과 같은 충격적인 소재는 현대 극예술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어찌 보면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구조지만, 이를 참신하게 재구성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고전의 훌륭한 재해석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멋이 흘러넘치는 시청각적 쾌감



<크루엘라>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예상 가능한 복수극이자 운명 비극이다. 플롯이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하면 상영 시간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볼거리가 많아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우선 엠마 스톤과 엠마 톰슨이 인물 간의 대립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두 명의 엠마는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지금까지 온화한 역할을 주로 맡아왔던 엠마 톰슨이 사악함의 끝을 달리는 남작 부인을 맡은 것이 새롭고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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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화려한 의상과 매력적인 음악이 비극적인 플롯과 잘 어우러져 영화를 보는 내내 시청각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크루엘라>의 빼어난 영상미를 구성하는 데 사용된 미술, 음악 요소를 분석하려면 펑크 문화(Punk subculture)로 대표되는 사회적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데, ‘펑크’란 1970년대 서구권의 주류 문화에 반기를 든 청년들의 이색적이고도 반항적인 하위 문화를 의미한다. 마침 이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이 70년대 영국 런던이기에, 주인공 크루엘라의 의상과 영화 전반에 깔리는 음악들은 펑크 문화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퀸, 도어즈, 비지스, 니나 시몬, 티나 터너, 데이비드 보위, 롤링스톤스 등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의 강렬한 펑크락이 극장을 채우고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중에서도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이 공식 OST로 작곡한 ‘Call Me Cruella’는 크루엘라의 정체성과 영화의 주제의식을 정확히 보여주는 곡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음악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기로 유명한 디즈니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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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의상 또한 뛰어나다. 아마 다음 오스카 의상상 후보에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마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처럼 패션 회사의 상사와 직원 관계인 남작 부인과 크루엘라는 경쟁이라도 하듯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하는 빼어난 옷을 입고 겨룬다. 흰색, 검정색, 빨간색이 주를 이루는 크루엘라의 옷은 70년대 펑크룩의 중심을 이끌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 스타일을 따르며, 남작 부인의 옷은 크리스챤 디올의 고급스럽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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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엘라>는 오락성이 짙은 영화지만, 기존 영화에서 즐겨 쓰인 불필요한 애정 관계나 전통적 가족관을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덜어냈다. 크루엘라의 주체적인 서사만 오롯이 빛나도록 구성한 것이다. 원작 만화 영화를 그대로 실사화했다면 화이트 워싱으로 논란이 되었을 법한 점도 자연스럽게 해결하여 이야기를 풀어낸 것 또한 좋았다. 전체적으로 현시대의 관객과 공존하기 위해 공들인 부분이 돋보였다.


수많은 달마시안을 훔쳤다고 소문난 그 사람. 바로 사악하기로 유명한 크루엘라 드 빌. 영화를 보고 나니 그동안 자신 있게 그녀를 빌런이라고 불렀던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니, 더 나아가서 나도 크루엘라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도 생겼다. 크루엘라처럼 매사에 솔직하고 당당하게, 그게 진정으로 멋있는 삶이 아닐까.

 

이렇게 디즈니가 또 하나의 영웅 신화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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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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