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좋은 사람, 그리고 잔인한 사람 - 프로페서 앤 매드맨

글 입력 2021.06.0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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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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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로페서와 매드맨>은 '사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영화다.

 

세상의 모든 영어 단어를 담은 사전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옥스퍼드 사전을 편찬한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애초에 그랬다면 제목을 굳이 그렇게 짓지도 않았을 것이다. 편찬에 참여한 제임스 머리와 윌리엄 마이너를 단순히 '프로페서'와 '매드맨'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표면적이다.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건 어떻게 그들이 프로페서와 매드맨이 되었는지, 그 숨겨진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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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서는 처음부터 프로페서가 아니었다. 턱수염이 부숭부숭한 제임스 머리는 학위도 없이 혼자서 수많은 언어를 탐구했다. 안정적으로 교직에 몸 담은 그가 한껏 꿈에 부풀어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는 사전 편찬에 뛰어드는 건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그도 그럴게 이전까지는 너무나 평온했다. 그가 아내 에이다와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영화에 몇 안 되는 행복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사전 편찬에 그는 처음부터 초빙된 게 아니다. 엘리트들이 모인 편찬위원회에서 현저하게 삽질을 하다 새로운 시도를 해볼 해결사로 낙점되었을 뿐이었다. 학위가 없어서 능력이 미심쩍고 귀에 해로운 스코틀랜드 억양을 쓴다며 한심하다는 평이 앞뒤로 자자했다. 고품격을 표방하지만 뒷담화하는 모습은 전혀 고급지지 않다. 그들이 고귀한 삽질을 한 덕분에 제임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는 게 인생의 묘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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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의 옥스퍼드 사전엔 수많은 조력자가 등장한다. 에이다가 제임스를 지탱해주는 힘이었다. 그가 사전 편찬에 열정이 넘치는 만큼, 가족들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꿈에 다가가기 위해 가족들에게 소홀해지는 모습에 제임스도 마음 불편해하는 게 보인다. 아내 에이다 역시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남몰래 쓴웃음을 짓고 혼자 제임스의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겪어야 하는 중압감이 느껴졌다. 정든 곳을 떠나서 연고가 없는 곳으로 무작정 떠나 새 집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챙기는 일마저 고단했을 터.


제임스와 에이다가 놀라운 건 각자의 무게를 묵묵하게 견디는 점이다. 힘이 들면 공식처럼 서로를 탓하거나, 나도 힘들다며 고생의 무게를 털어놓으며 싸우게 되기 마련인데 둘은 말을 아끼는 편이다. 언어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제임스가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은 건 수많은 단어를 보다가 질려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짜증 나고 화가 날 땐 사람들의 마음속에 수많은 말이 떠다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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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다 역시 인내심이 있는 것뿐만 아니라 위트가 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작업실에만 틀어박혀 있는 남편을 보고 화를 낼 법도 하다. 그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바로 근처에서 코빼기도 안 보인다니 이건 선 넘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화를 내는 대신 작업실 창문에 아이들과 찾아가 제임스를 자연스럽게 빼내 왔다. 즐겁게 눈싸움을 하다 보니 화낼 일도 없고. 그가 사전 편찬 이후에 곤경에 처했을 때는 직접 어려운 발걸음을 해서 나서기도 했다. 기분 상하지 않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에서 크고, 넓고, 깊은 사람이 이런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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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붙박이처럼 있었던 헨리 같은 사람들이 제임스의 원동력이었다면, '매드맨' 윌리엄은 막막한 빈틈을 채워주었다. 사전 편찬이 난항을 겪고 있을 때, 교도소에서 이 말도 안 되는 사전 편찬에 흥미를 느끼고 도와준 덕분에 단어는 각자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서 등재될 수 있었다. 속을 있는 대로 썩이던 Approve가 마무리될 때의 희열이란, 편찬자가 아니더라도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었다.

 

제임스에게 윌리엄은 동아줄이나 다름없다. 둘을 보고 있자니 갈수록 설레는 느낌이었다. 서로 모를 만한 단어를 이야기하며 즐거워하고, 펜팔로만 만나다가 실제로도 만나 절친한 사이가 되는 전개, 이거 정말 잘 되지 않을 수 없는 사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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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인가. 프레디는 제임스가 사전 편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면접부터 힘을 실어주었고, 초판이 나온 후 빠진 단어들로 비난을 받았을 때도 자신의 잘못이라며 먼저 자리를 내어놓았다. 사전에 아랍과 아프리카 같은 단어는 넣을 생도 못했다니, 사전 편찬에 참여한 사람들이 얼마나 닫힌 마인드였는지 답답함은 차치해두자.

 

나중에 제임스가 범죄자인 윌리엄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더 이상 사전을 편찬하지 못할 것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그가 맥 빠지듯이 하는 위로가 압권이다. 신조어가 자기 집에서 들리는 것만 해도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사전에 모든 단어를 넣을 수 있겠냐고. 그저 틀을 만들어놓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애초에 모든 단어를 담겠다는 건 욕심이고, 앞으로 계속 개선해 나가면 된다는 말. 당연한 위로인데, 다른 누구도 제임스에게 해주지 않았던 말이다.


여왕님의 도움에 힘입어 각종 비난에도 불구하고 '옥스퍼드 영어사전 = 제임스 머리'라는 프리패스권을 받아냈다. 이쯤 되면 모두가 함께 만든 옥스퍼드 사전인 셈인데, 제임스가 감사의 인사를 할 분들을 언급하지 않으면 큰일 날 일이다. 아마 비단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하는 모든 일도 마찬가지는 아닐까.

 

세상 모든 단어를 넣는 일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 이렇게 다뤄지고 있을 뿐. 내 일이라는 게 100% 내 힘만으로 된 적은 있었나. 내 일이 아닌데도 내 일처럼 도움을 받은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역시 감사드려야 할 사람들을 떠올리다가 날이 샐 지경이다. 누군가 시상식 소감에서 수많은 사람들 얘기를 꺼내는 광경이 이해 못할 일만은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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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편찬에 있어선 제임스가 윌리엄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제임스 역시 윌리엄이 자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교도소에서 그를 만났지만 그가 범죄자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고, 범죄자인 것을 알게 되고 나서도 거리를 두지 않았다. 그가 정신적으로 더 상태가 나빠질 때조차 안타까움이 묻어날 뿐, 두려움이나 혐오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범죄자인걸 알고 나서는 사전 편찬에 그를 참여하게 할지 고민을 하긴 했을 것이다. 아내에게 말하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혼자서 고민한 시간이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처칠에게 아무 계획도 없이 불쑥 찾아가 간곡히 요청한 결과 윌리엄이 무사히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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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은 다채로운 모습을 지녔다. 외과의사로 단호한 모습, 전쟁에 참여한 충격에 시달리는 병약한 모습, 자신이 고통을 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에 견디지 못하는 모습, 그림이나 책, 단어 등 한 가지에 몰두하는 모습. 하지만 영화 시작부터 그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픈 사람으로 표현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그를 섬뜻하게 만드는 전쟁이 없었다면, 그가 탈영병의 뺨에 낙인을 찍지 않아도 되었다면, 그가 탈영병에 대한 환각으로 전혀 다른 사람인 조지를 실수로 죽이지 않았다면, 그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제임스에게 에이다는 긍정적인 버팀목이었지만, 윌리엄에게 일라이자는 결과적으로 그를 더 많은 죄책감에 빠지게 했다. 일라이자는 그가 죽인 조지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에게 용서를 바라지 않았기에 그녀가 그를 용서하게 될수록 괴로워했다. 그는 자신이 일라이자에게 준 것들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 자신의 연금을 모두 주고, 그녀와 아이들에게 시종일관 너무나 미안해했고, 글자를 쓸 줄 모르는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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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알게 된 이후 그녀는 달라졌다. 당신 덕분에 할 수 있다(I can, becase of you)고 하는 순간까지 그는 행복했지만, 사랑이라면 어찌할지(If love...... then what?) 묻는 말에 죄책감의 지뢰가 터지고 만다. 이 부분은 약간 당황했다. 일라이자와 윌리엄 각각의 반응이 단순히 인류애적인, 용서를 하고 받는 사람의 반응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키스를 하고, 연락이 닿지 않자 애타게 그를 찾는 그녀의 모습도, 그녀를 그림으로 그리고, 그녀가 쓴 문구 한 마디에 그렇다면 속죄도 없다면서 성기 부근을 자해한 그나. 사람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는 건가. 남편의 살인자를 사랑하게 된 아내. 아내는 어느덧 그를 용서했지만, 살인자는 죄책감과 사랑 사이에서 괴로워한다니. 시작은 악연이었지만 알아갈수록 서로가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영화에서 에이다는 일라이자의 그 문구를 보고 "If love..... then love."라고 간단하게 답변해주었고, 일라이자도 아마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최선이었을까? 사랑이라면 그녀는 그에게 질문하지 않았어야 한다. 흘러넘치는 마음이었다고 해도. 그녀는 그 문구가 이렇게 역효과가 될지 몰랐다.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적어도 그 문구를 주며 키스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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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자의 한 문장 이후로 윌리엄이 스스로를 해치고, 고문에 가까운 치료법(?)을 자발적으로 받는 모습을 보면서부터는 판도가 뒤바뀌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를 치료하려고 했던 의사는 왜 윌리엄을 괴롭히면서 왠지 모르게 즐거워하고 있었을까. 억지로 토하게 하는 게 혁신적인 치료법인가? 정말 지식과 신념에 따른 치료법이었을까? 성과를 남기겠다며 사진을 찍으라고 지시하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 죄책감은 누구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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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에서 만든 시대극 같은 느낌의 영화 덕분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멋진 눈빛과 목소리가 모여서 이렇게 하나로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것들을 엮어냈다. 꿈과 현실, 도덕성과 성과, 죄책감과 용서, 성실과 평가 같은 다양한 가치가 부딪힌다. 꿈을 좇다 보면 현실이 멀어지고, 성과를 찾다가 도덕성은 눈감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미안하단 말을 들었다고 해서 앞으로 그 사람에게 미안할 일이 없다고 볼 수도 없다. 성실하다고 꼭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제임스와 에이다, 윌리엄과 일라이자도 서로에게 그랬다. 완벽한 사전도, 사람도, 완벽한 세상도 없다.


영화 속엔 순도 100%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 순리나 이치라는 것이 존재했다면 이런 광경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TV와 인터넷, 핸드폰으로 나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없이 접하면 한 마디씩 보태면서도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느끼기도 한다. 무관심한 사람은 내게 벌어진 일이 아니라서, 분노하는 사람은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다. 분명 법으로 규정된 나쁜 사람과 사회에서 나쁜 사람, 개인이 생각하는 사람은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아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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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서와 매드맨은 해피엔딩이었다. 제임스는 옥스퍼드 사전을 편찬하고, 프로페서가 되었다. 윌리엄은 사전 편찬을 돕고 미국으로 무사히 돌아가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도 이상한 기분이었다.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서인가. 어느 누군가도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에 외롭고 나 혼자 사는 것 같다가도, 막상 우리와 엮여 있는 사람들로 인해 크고 작은 영향과 도움을 받는 게 신기해서였을까. 사람에 대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맛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좋고, 그래서 사람이 싫다. 좀처럼 답이 없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서도 다시 한번 기대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좋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종종 우리가 나쁜 사람과 엮이거나, 우리가 나쁜 사람이 되는 건 막을 수 없다. 우리는 때로는 좋은 사람이고 때로는 나쁜 사람이다. 어쩌면 운이 좋아서, 어쩌면 의식적으로 피할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 혼자서도 빛나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주는 나쁜 사람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죄책감이 용서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나로 인해 웃었다면 나로 인해 눈물 흘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철렁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인 당신과 내가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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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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