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야만적이거나 환상적이거나 - 판타스틱 플래닛 [영화]

글 입력 2021.06.0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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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Planete Sauvage ?



<판타스틱 플래닛>은 프랑스에서 1973년에 제작된 애니메이션으로, 국내에서는 2004년에 개봉하였다.

 

원제는 La Planete Sauvage로, '야만의 행성', '미개의 행성'으로 해석된다. 벌써 제작된지 약 50년이 되어가는 영화지만, 영화가 담은 철학적 메시지는 현재까지도-혹은 개봉 당시의 관객들보다도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더욱 유효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영화는 파란색 몸에 빨간 눈을 한 거인, 트라그족이 지배하는 이얌 행성을 배경으로 한다. 인간으로 보이는 옴 종족은 영화 내에서 트라그족의 지배를 받는 동물로 등장한다. 트라그족은 옴을 재미 삼아 괴롭히기도, 야생 움을 주워 애완 움으로 키우기도 하며, 자신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야생 옴들을 주기적으로 소탕하기도 한다. 그 모습은 동물보다도 차라리 곤충을 대하는 태도에 가까운 것 같다.

 

영화의 주인공 옴인 '테어'는 갓난 아기 때 지나가던 트라그들의 장난으로 엄마를 잃고, 어린 트라그 '티바'에게 주워져 반려 옴으로 키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테어'는 우연한 기회로 트라그족들의 공부 수단인 '헤드셋'과 가까이 있다가 트라그족들의 지식을 배우게 되고, 자유를 찾기 위해 집을 탈출해 야생 옴 사이에 섞여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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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어떤 부분에서 멈추든, 그 화면 그대로 캡쳐하여 미술관 벽에 걸어도 작품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영화 내의 모든 오브젝트와 인물을 포함한 작화는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이 강한데, 이는 감독인 롤랑 토포르와 르네 랄루의 작품 세계가 짙게 드러난 것이다.

 

<판타스틱 플래닛>에 등장하는 모든 장면들은 마치 '어떻게 하면 더 불편하고 기괴하게 느낄까'를 연구하여 탄생한 것 같다. 트라그족의 생김새는 불쾌한 골짜기 효과를 의도한 듯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피부와 눈의 보색의 대비로 불편함을 주고, 눈을 비롯한 이목구비의 생김새 또한 오랫동안 마주치고 있으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괴해 보인다. 명상할 때, 잠들 때 등, 모습이 변화할 때는 더욱 그렇다.

 

영화의 초반에는 '와..주제도 불편한데 작화까지 이렇다고?'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영화를 보면 볼 수록 이 작화가 판타스틱 플래닛의 주제 의식을 표현하기에 꼭 알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진들은 관객들이 말 그대로 온 몸으로, 시각, 청각, 그리고 인간의 본능까지 동원하여 불편함을 느끼게 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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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작화와는 별개로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에서는 약간의 어색함이 느껴지는데, 이는 셀 애니메이션이 아닌 페이퍼 애니메이션의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셀 애니메이션은 배경이 되는 그림은 그대로 두고 그 위로 움직임이 생기는 오브젝트나 캐릭터만 따로 그려내는 방식이다. 반면 <판타스틱 플래닛>은 한 장 한 장을 전부 그려내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회화적 표현을 중시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총 컷수는 1073장으로, 25명의 제작자들이 3년 동안 제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행성은 'Fantastic' 한가 'Savage' 한가



<판타스틱 플래닛>에 대한 글에서는 거의 반드시 '생명 경시'와 '동물권'과 같은 키워드가 등장한다.

 

영화 내에서 옴들은 인격적인 대우라고는 조금도 받지 못하며, '테오'를 진심으로 사랑한 것으로 보였던 '티바'조차도 딸꾹질을 하는 아기 '테오'를 거꾸로 물에 넣거나 다른 옴과의 싸움에 붙이는 등, 옴을 정말 '애완'동물 그 이상 이하로도 보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관객들은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한 채 푸른 거인의 지배를 받는 옴을 보며 미묘한 기분을 느끼고, 또 현실의 인간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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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내가 <판타스틱 플래닛>에서 가장 감정 이입이 되었던 인물은 테오나 다른 옴이 아닌 티바였다.

 

티바는 테오를 사랑했다. 테오가 집에서 탈출한 때에, 티바는 진심으로 슬퍼했을 것이다. 그러나 티바는 테오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볼 때에 옴에 감정을 이입하기 쉽다. 옴들은 인간처럼 생겼고, 또한 인간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런 티바의 모습은 현실 세계 속에서 인간들이 반려 동물, 혹은 모든 동물들에게 ‘이렇게 하면 좋아할 것’이라며 미루어 생각해 하는 행동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던 반려 동물들이 하나 둘 집에서 탈출해 자기들만의 그룹을 만들어 인간들을 죽이며 반란을 일으킨다면 그 충격은 어떨까. 티바는 유년기부터 줄곧 함께 자라온 테오가 자신을 떠났을 때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그 기분이 정말 현실 속 반려 동물의 보호자들이 느끼는 기분과 달랐을까? 조심스러운 견해지만, 영화 속 트라그족들을 무심코 악역이라고 여기기 쉬우나, 그들을 악역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지는 ‘대상화’이다. 우리가 동물들에게 하는 모든 행동들은 결국 대상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동물들에게 무엇을 하든, 우리는 동물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기에 대상화의 영역을 넘어설 수는 없다. 이해할 수 없음, 즉 몰이해는 이토록 잔인하다.


내가 <판타스틱 플래닛>에서 유독 주목했던 장면은 옴들의 전투 장면이었다. <판타스틱 플래닛>속의 길들여진 옴들은 트라그족들의 반려동물로 살아간다. 그리고 트라그족들의 유흥을 위해 같은 옴들끼리 싸우게 되기도 한다. 그 모습은 꼭 현실의 어린 아이들이 재미 삼아 사슴벌레와 같은 곤충을 싸움에 붙이는 행위 같아보인다. 그런데 야생에서 살아가는 길들여지지 않은 옴들 또한 옴들끼리 전투를 할 때에 다른 생명체를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 생명체는 옴들의 몸에 묶인 채 서로를 상처입힌다. 전투가 끝난 뒤에는 옴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기분이 아주 애매해졌다. 영화 속의 옴들이 그 생명체들을 그런 식으로 다룰 수 있었던 이유는, 트라그족들이 옴을 대할 때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 아닌 다른 생명체의 언어를 비롯한 그들의 상호작용을 이해할 수 없으며, 이는 나아가 그 생명체들끼리 가지는 존엄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과 같고, 또한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상위 개체’로서 일종의 우월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옴들은 트라그족과 뭐가 그리 다른가. 영화는 트라그족들의 지배와 탄압을 동시에 받는 옴들이 다른 생명체를 다루는 방식을 통해 모순을 꼬집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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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체는 자기 바깥의 것을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위해-‘위한다’는 단어가 적확하다고 확신할 수 없으나 편의 상 사용하자면- 하는 행동들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되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불통하는 언어와 이해할 수 없는 상호작용을 뛰어 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의 감상은 지나치게 비약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현실의 인간들은 영화 속의 트라그족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의 비인간 동물 이해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라그족들은 옴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들은, 인간 동물인 우리가 비인간 동물을 대상화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으로 부단히 애쓰고 있다.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어휘를 바꾸고, 이 바뀐 어휘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들이 우리의 반려동물이 되기를 선택했냐는 것이다. 또한 비건과 환경 보호, 동물 보호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키워드이다. 물론 그럼에도 놓치는 부분들은 너무나 많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호'하기로 '선택'한 동물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판타스틱 플래닛>을 보며 인간과 똑같이 생긴 옴에게 이입을 했지만, 옴의 생김새가 인간과 아주 다르게 생겼더라도 같은 감상을 가질 수 있었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판타스틱 플래닛>은 오로지 작화만 보더라도 수작임이 마땅하다. 공포스럽고 기괴한 분위기를 느꼈다면 그것까지도 분명 제작진의 의도였으리라 확신한다. 영화의 주제의식, 즉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인간으로서-들의 행보에 물음표를 던지게 하고, 반성하게 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껏 인간으로 살아오며 자연과 비인간동물들에게 저지른 행위들을 뒤로 한 채 느꼈던 불편한 감정, 그 자체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환상적인' 행성인가, 혹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행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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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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