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은 늘 열려 있었다 - 화이트 타이거 [영화]

닭장 속 닭
글 입력 2021.05.3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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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 속 닭


 

영화는 현재 인도를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주인공 발람은 최하층 계급이다. 비록 카스트가 1947년 철폐됐지만, 사회 통념과 구조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없어졌지만 없어질 수 없는 계급은 인간을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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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은 빈곤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공부하며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학교에서 한 세대에 단 한 번만 태어난다는 화이트 타이거(백호)라 불리며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총명한 머리를 가졌다. 그러나 아버지가 빚을 지고 폐렴에 걸려 죽은 이후, 그는 더는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결정하는 할머니에 의해 찻집에서 잡일을 하며 성인이 된 발람은 가족이 사는 땅을 소유한 지주를 주인으로 모시며 그의 악독한 첫째 아들 '몽구스'에게 매달 돈을 납부하며, 이 가난에서 벗어날 궁리를 꾀하고 있었다.


발람의 가족은 닭장 속 닭이다. 아니, 인도 대다수 사람은 닭장 속 닭 신세다. 좁은 닭장에 갇혀 매일 눈앞에서 죽는 닭의 피 냄새를 맡는다. 탈출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다. 그저 무력하게 주인에게 순응하며 곧 찾아올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나 발람은 다른 닭들과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으며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가족에게 매달 받은 월급을 준다는 약속으로 집을 나올 수 있게 된 발람은 지주 막내아들 ‘아쇽’의 운전기사가 되었다. 그렇게 새 주인을 모시며 조금은 나아진 삶에 만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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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쇽을 주인으로 모시며 지내는 발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석연치 못한 감정을 느낀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아쇽이 아내 핑키와 속삭이며 놀 때, 몽구스가 자신을 협박할 때, 같은 운전기사가 자신을 모욕할 때,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할 때면 마음속 깊숙한 무언가가 발람을 잠식시켰다.


발람은 똑똑하다. 자신이 이 계급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잘 알고 있다. 그는 주인에게 그리고 계급을 벗어나기로 한다. 그렇게 계급을 벗어나게 된 발람은 아쇽의 돈으로 운전 회사를 차리며 새 신분으로 승승장구한다.

 

영화가 끝날 때 발람은 카메라를 향해 "나는 마침내 닭장을 탈출했다'고 말하며 카메라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가 고용한 운전기사들이 일제히 카메라를 응시하며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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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발람은 왜 아쇽이 자신을 배신할 때까지 아쇽을 배신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인도의 풍습 때문이다. 인도에선 주인은 하인의 가족에 대한 인적사항을 다 알고 있으며, 만약 주인을 배신하면 하인의 일가친척까지 모조리 몰살시키기 때문에 감히 주인을 속이거나 배신하지 못한다.


인도에서는 가족을 중심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집단으로 모여 한 마을을 이루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 그래서 발람은 영화 중후반이 갈 때까지 자신의 가족이 몰살당할까봐 주인을 배신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발림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관심도 없고 무작정 빨리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으라는 강요로 인해 발람은 가족들에게 지치고 만다. 그래서 결국 발람은 영화 끝에 다다라서야 가족이 아닌 자신을 선택함으로써 계급을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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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서 발람이 느꼈던 압박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과 인도는 문화적, 제도적으로 다른 점이 많다. 하지만 가족의 결정으로 자신의 삶이 결정되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한 개인의 삶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부분은 공감이 되었다. 나도 이러한 압박감을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내내 이 영화가 2021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점이 많았다. 특히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아쇽을 꼬박꼬박 주인님이라 부르고 인간 이하 취급을 받는 발람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인도 극빈층의 현실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얼기설기 꼬여있는 끈처럼 꽁꽁 꼬여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인도 상류 계급은 하급 계급을 노예로 취급한다. 같은 인도인이지만 근본부터 다르다고 생각한다. 고정관념은 상류층 자녀들에게로 이어진다. 아무리 미국에서 공부하며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자유주의를 배워도 인도내에 뿌리 깊게 박힌 계급주의를 뽑아낼 수 없었다. 야솝과 핑키의 말투와 행동은 이러한 위선자 모습을 잘 드러내 주었다.


아쇽과 핑키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의 문화를 배워서 인도에 정착하고자 하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초반에 자신의 아버지, 몽구스가 발람을 하대하는 모습을 보고 그러지 말라며 말리기도 하며 발람을 그나마 인간으로 대우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쇽은 발람을 하대하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핑키는 아마 변해가는 아쇽의 모습과 계속해서 인도에서 살아간다면 자신 또한 아쇽의 가족들처럼 변해갈 것 같아서 아쇽을 떠나 미국으로 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도에는 이러한 위선자도 있을뿐더러 더 안타까운 건 인도 대다수의 하급 계층은 자신의 삶에 순응하며 산다.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런 마음조차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세뇌하며 산다. 자신의 부모님이 그랬으며 할머니, 할아버지 또한 그랬고 조상부터 대대로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기에 굳어진 빈곤의 삶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벗어나려 하지 않는 하급 계층은 계속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도의 심각한 부정부패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물론 정경유착이 아예 없는 나라가 별로 없지만, 인도는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해서 사회를 갉아 먹는 수준이다. 영화 속 서민들의 영웅으로 추대된 여성 정치인 역시 당선되고 나서는 사업가들에게 뇌물을 대놓고 요구한다. 그리고 그 여성 정치인은 자신의 서민 이미지를 이용하여 다시금 당선되는 쾌거를 누리며 당선 이후에도 사업가에게 당당하게 뇌물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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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부자는 계속해서 부자가 되고 하급 계급은 계속 빈곤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인도는 철저하게 두 계급으로 나누어져 고착화 되었다. 영화는 인도를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그리고 숨김없이 다 밝힌다. 닭장 속 닭처럼 도살될 날을 기다리며 소모품으로 이용되는 하급 계급의 모습과 부정부패와 비리를 일삼으며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상류 계급의 모습을 보여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인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고 하면 갑자기 춤과 노래를 한다거나 흔히 저세상 전개라 하며 말도 안 되는 결말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영화 화이트 타이거는 노래와 춤이 나오거나 허무맹랑한 결말로 당황하게 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리고 인도 배경으로 유명한 영화인 슬럼독 밀리어네어, 세 얼간이와도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오랫동안 열쇠를 찾아다녔지만, 문은 늘 열려 있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자신의 계급을 벗어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열쇠를 찾아다녔지만, 그 문은 언제나 열려있던 문이었다. 그저 한 번이라도 문고리를 잡고 돌려볼 시도라고 했었으면 열쇠를 찾기 위해 들였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단 한 번이라도 문고리를 잡아볼 시늉이라도 했었으면 말이다.


그러나 문고리를 잡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당연히 저 문은 잠겨있고 열기 위해선 열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당연하니까. 누군가 저 문고리를 한 번만 잡아보라고 말만 해줬어도 그의 인생은 달라질 텐데 말이다.


보고 나서는 한국 영화 기생충이 생각나기도 했다. 기생충 또한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면서 공감이 가기도 했지만, 충격적으로 느껴진 부분이 많았다. 나에게 인도는 문화적, 종교적으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로 알고 있어서일까? 경제적, 정치적으로 얼마나 빈곤한지, 얼마나 어려운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저렇게 살아가는 건지 의심스럽기도 했고, 이 영화가 언제 만들어진 건지 궁금해 포털 사이트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2020년에 개봉된 영화이며 이 영화 속 인도의 모습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인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 인식이 더 나빠진 것은 아니다. 인도라는 나라를 더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음을 그렇지만 변해야만 하는 현실이라는 점을 더 많은 사람이 알기를 바란다.

 

 

[나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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