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넷플릭스를 보는 방법 몇 가지 [영화]

빈지와칭 Binge watching이라고?
글 입력 2021.05.3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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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할 일 없는 주말. 시간은 보내야 하는데, 마땅히 만날 사람도 생각나지 않고, 그렇다고 요리를 하기에도 귀찮고, 혼자 나가기엔 더더욱 귀찮은 (대부분의) 그런 날.

 

조용한 방 안에서 넋을 놓고 있는 것보다는 넷플릭스라도 틀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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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xplore

 

 

언제나 그렇듯이 신작은 계속해서 업데이트되고 있다는데, 이미 한 차례 본 것 같기도 한 익숙한 풍의 포스터들이 줄 지어있어 손이 가는 영화는 딱히 없는, 그런 날의 반복.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는 것도 다 구식이다.

 

여기, 나만 그런줄 알았던 넷플릭스 보는 법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 단계, 한 번에 보기


 

초심자들을 포함해 제일 많은 보기 방법이다. 엉덩이에 쥐가 나고 싶지는 않은 내 마음을 아는 지, 요즘은 시리즈물도 10부작은 커녕 4~5부작인 경우도 많다. 게다가 각각 20분을 겨우 넘기는 경우도 부지기수. 예를 들어, 60분짜리 에피소드 4개로 구성된 콘텐츠의 경우, 4시간 정도면 그 날엔 무언가 마무리지었다는 명패를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주말은 ‘무언가’ 한 채 보냈다. 이걸 다 보았으니 나름 알차게 보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행동은 이름도 가지고 있다. 이름하야, ‘빈지와칭 Binge-watching’. 어원을 들먹이면 괜히 죄책감이 생길 것만 같은, 이 단어의 앞쪽을 수사하고 있는 ‘Binge’는 ‘폭식binge-eating’, ‘폭음 Binge-drinking’과 같은 맥락이다. 내가 중독자라니!

 

다행인 건, 학자들이 아직 문제행위라고 명명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공식적으로 중독되지 않았다. 죄책감이 생기거나, 우울해질 수도 있고, 불안함을 줄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비만과 연결되기도, 심장병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넷플릭스 중독자라고 진단받을 확률은 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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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ndo

 

 


두 번째 단계, 띄엄띄엄 보기


 

빈지와칭은 또 이 행동도 포함한다. 잔인해서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 장면을 건너뛸 수도 있다. 음, 누군가와 같이 보기 민망한 장면은 빨리 건너 뛰었다가, 혼자 있을 때 여러번 돌려볼 수 있는 것도 포함이다. 또는 앞뒤 내용의 개연성을 연결할 수 있을 정도로 몇 씬만 봐도 충분하겠다 싶을 때도 이 방법을 쓴다. (하도 영화나 드라마들이 많아져서 이제 우리는 모든 장면을 보지 않아도 결말을 뻔히 글로 써 낼 수 있는 능력자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제부터 나오는 시리즈물들은 이전 에피소드를 볼 필요가 없는 것들도 많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한 가지 주제에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콘텐츠도 늘어났다. 애초에 시리즈물이 인기를 몰기 시작한 것이 몰아보거나, 띄엄띄엄볼 수 있도록 해서 몰입도를 높인 거였고, 결과적으로 딱히 볼 것이 없더라도 넷플릭스에 오래 머물게 된다. 덜 재밌다고 느껴서 내용 자체에는 덜 집중하더라도 넷플릭스라는 어플리케이션에서는 나가지 않는 원리다.

 

콘텐츠에 대한 몰입도는 낮아지고, 플랫폼에 대한 몰입도는 높아지는 특이한 구조가 탄생했다.

 

 

 

세 번째 단계, 배속으로 보기


 

우선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접한 방법이고,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다. 아무리 띄엄띄엄보면서 제작자의 의도는 껌씹어먹었더라도 청각적 효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고, 제작자의 의도를 이렇게 여러겹으로 압축시켜버리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넷플릭스같은 경우에는 1.5배속까지 제공하고, 왓챠는 배속 기능이 없다. 유튜브도 2.0배속까지 가능하다. 다른 사람들은 꽤나 많이 이런 재생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시청해야 하는 밀린 많은 콘텐츠들 때문이기도 하고, 단지 넷플릭스 외에도 할 일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빠른 현대의 속도에 발 맞추어, 빨라진 개인의 내재된 시계의 초침 속도가 요구하는 속도이기도 하다.

 

 

 

네 번째 단계, 유튜브에서 통합본 보기


 

이제는 제작자나 유통사가 올려준 영상물을 뛰어넘는 단계다.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넣어 16부작의 드라마를, 7년간 방영했던 예전의 예능들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같은 회차를 요약했더라도 두 명의 주인공에 집중하는 서사, 조연에 집중하는 서사, 사건 A만 조명한 내용 등 주제도 매우 다양해 가장 가까운 사람과도 시청하는 비디오가 다르다.

 

이런 통합본들은 마치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식의 잡학사전’과 같이 사회 속에서 대화의 원천이 되어주기도 하고, 배속으로도 절약하지 못한 시간을 더욱이나 주머니 속에서 꺼내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유튜브 쇼츠나 틱톡과 같은 숏폼 콘텐츠가 유행하는 것과 같다. 친구와의 약속을 기다리는 4분 가량의 시간동안 잠깐 볼, 수면시간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길이의, 테이크아웃하는 커피가 나오는 잠시간을 심심치않게 보내줄, 횡단보도가 빨간불에서 파란불로 바뀌는 시간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마이크로 단위의 아주 짧은 시간부터 ‘시’단위의 부담스러운 긴 시간의 직전에 있는 애매한 시간들을 흘려보내기 딱이다.

 

오죽하면 티비 프로그램들은 책을 대신 읽어준다거나, 영화의 줄거리를 보여주는 형식이 줄곧 보인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들 역시 한 번 더 요약되어 유튜브에 업로드된다. 책을 쓴 작가나, 프로그램의 마지막 크레딧에 적혀있는 감독의 역할이 점점 축소되고 분산되고 있다. 안그래도 해외 작가의 책은 역자에 따라 상이한 문장구조와 서사를 가지는 경우도 많아, 역자를 눈여겨 보는 독자들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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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람들은 오리지널 콘텐츠가 아니라, 각자 제작한 콘텐츠를 만끽하고 있다. 본래의 문화생활도, 그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건들은 같은 순간에 지나가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경험의 기억을 가진다. 하물며 이런 식이라면 세상에 넘쳐나는 평론은 같은 작품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보기 매우 힘들어진다.

 

그러나 이치다. 이미 세상은 권한을 분산시키도록 흘러가고 있다. 각각의 인생이 필요로 하는 내용들은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라는 인위적인 장치가 아니더라도 개인의 가치관과 흥미가 더욱 상이한 방향으로 걸어가도록 하고 있다. 그만큼 그룹의 크기는 작아지고 똘똘 뭉치게 될지도 모른다.

 

한 가지 콘텐츠가 세상에 공개되면 수백, 수천가지의 콘텐츠로 재생산된다. 이 재생산에는 내용의 요약이나 크리에이터의 감상평 뿐만 아니라, ‘댓글모음’이나, ‘비슷한 콘텐츠 비교’처럼 아예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편향이 고착화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많다. 하향식에 익숙했던 단 50여년 전에는 더 얼마나 획일화된 세상이었다. 현재의 흐름이 중도층을 없애고, 양극단에 선 이들의 비율을 늘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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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hable india

 

 

확실한 것은 문화는 분명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다양성이 우리는 처음이다. 위의 방법 외에도 다른 방법으로 넷플릭스를 볼 수도 있고, 위의 방법들을 서로 다른 비율로 혼합해 넷플릭스를 시청하기도 할 것이 분명하며, 이를 ‘중독’이라고 명명하거나 금지할 수 없다.

 

한 가지, 우리는 드라마 ‘마인’을 보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일이 있더라도 서로 다른 내용을 묘사하는 것에 화를 내거나 당황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콘텐츠가 주어진 대신, 우리는 그 정도는 할 줄 아는 문명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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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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