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최고(最古) 음악제의 도시, 브장송

글 입력 2014.09.03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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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최고(最古) 음악제의 도시, 브장송



글 -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중학생 시절 내가 자주 꺼내 듣던 LP판이 있다. ‘디누 리파티, 브장송 리사이틀’이라는 타이틀의 두 장짜리 EMI 라이센스 LP판은 그로부터 사반세기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애청하는 나의 명반 중 하나다. 루마니아의 천재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1917-1950)가 백혈병 투병 중에 아내 마들렌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연주회를 가진 무대가 바로 사망 3개월 전 1950년 9월 16일의 브장송 국제음악제였다. 사람에 따라서는 브장송이 프랑스 도시인지, 스위스 도시인지 헷갈려 하는 분들이 있는 걸 봤다. 브장송은 틀림없는 프랑스 도시다. 프랑스 중동부 프랑쉬-콩테주의 주도가 바로 인구 13만의 브장송인 것이다. 나는 중학생 당시부터 방문하기를 고대했던 이 도시를 2009년 9월에야 찾아갈 수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브장송 국제음악제를 일별하기 위함이 나의 브장송 방문목적이었다.




-브장송에서 목격한 특별한 음악의 광경들


    당시 2009년 9월 13일부터 15일까지 브장송에 체류했던 나는 귀한 경험을 하고 파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도착 당일인 13일 일요일 오후부터 브장송 퀴르살에서 열렸던 피아니스트 필리프 카사르의 독주회와 연이어 브장송 음악극장에서 열렸던 로린 마젤 지휘 이탈리아 교향악단의 연주회를 나는 브장송에서 만끽했다. 그리고 이튿날에는 브장송 퀴르살에서 열린 제 51회 브장송 국제 지휘콩쿠르의 16강과 8강, 4강, 결승을 연거푸 목도하는 행운을 누렸다. 대단한 체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최고 권위의 브장송 국제 지휘콩쿠르에서 이 날 우승자로 확정된 인물은 오자와 세이지를 잇는 일본 지휘계의 신성, 야마다 가즈키(1979- )였기 때문이다. 그는 두 달 전이던 지난 7월 15일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진 인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런 가즈키를 세계적인 지휘신성의 반열에 올린 지렛대가 바로 이 날의 제 51회 브장송 국제 지휘콩쿠르였으니 이 날 나는 역사적인 광경을 목도한 것이다.


브장송 대극장 객석에서 바라본 런던 필 무대.png▲ 브장송 대극장 객석에서 바라본 런던 필 무대 - ⓒYves Petit



    브장송 국제 지휘콩쿠르는 1951년 창립 이래 1992년까지는 매년 브장송 국제음악제의 기간에 병행해서 열렸다. 그러던 것이 1993년부터는 격년제로 홀수년에 개최되고 있다. 2013년까지 53회를 거쳐간 브장송 국제 지휘콩쿠르가 배출한 명지휘자들은 한 둘이 아니다. 1956년 즈데네크 코실러와 1959년 오자와 세이지, 1965년 즈데네크 마찰, 1968년 헤수스 로페즈 코보스, 1982년 오스모 벤스케 등의 명지휘자들이 바로 브장송 국제 지휘콩쿠르의 역대 그랑프리 수상자들이다. 특이한 것은 60년이 넘는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일본지휘자들의 그랑프리 석권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1959년 오자와 세이지를 필두로 1982년 오스모 벤스케와 공동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한 마츠오 요코, 1989년 사도 유타카, 1990년 누마지리 류스케, 1993년 소가 다이스케, 1995년 반 테츠로, 2001년 시모노 타츠야, 2009년 야마다 가즈키, 2011년 카기우치 유키가 바로 브장송 국제 지휘콩쿠르가 배출한 역대 일본인 그랑프리 수상자들인 것이다. 이에 비해 브장송 국제 지휘콩쿠르가 배출한 한국인 우승자는 아직까지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는 1985년 중국인 윙-시에 입, 1988년 대만인 샤오-취아 류, 2013년 대만인 야오-유 우가 그랑프리 수상자로 선택되었음에 비해서도 애석한 일이다. 브장송 국제 지휘콩쿠르가 단순히 일본, 중국, 대만인 지원자들에 우호적이었다고만 보기에는 그간 대한민국이 거둔 성적표가 초라하기 그지없다. 내가 목격했던 2009년 제 51회 브장송 국제 지휘콩쿠르에서도 재미교포 헨리 신만이 네티즌이 뽑은 지휘자상을 수상하는데 그쳤다. 정명훈을 잇는 대지휘자가 이 땅에서 배출되기 위해서는 브장송 국제 지휘콩쿠르를 포함한 세계 유수 지휘콩쿠르에서의 한국인 지휘자들의 선전이 절실히 요구된다 할 것이다.

브장송 대극장 무대에 선 주빈 메타와 피렌체 5월 음악제 오케스트라.jpg▲ 브장송 대극장 무대에 선 주빈 메타와 피렌체 5월 음악제 오케스트라 - ⓒYves Petit



-프랑스 최고(最高) 음악제는 아니지만 최고(最古) 음악제인 관록의 음악제

    브장송 국제음악제는 2차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8년 출범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클래식음악제다. 액상 프로방스 음악제와 동갑내기인 이 음악제는 그러나 액상 프로방스와 비교하면 그 규모에서 밀리는 2인자 신세다. 그럼에도 나는 액상 프로방스 음악제 이상으로 이 브장송 국제음악제를 사랑한다. 해외 유수 음악제란 음악제는 쫓아다녀봤다는 내 주위 사람들 중에도 브장송 국제음악제를 다녀왔다는 사람은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이야기지만, 그만큼 브장송 국제음악제는 때묻지 않은 태곳적 신비를 한껏 머금고 있는 클래식음악의 산실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마이너리티의 운명을 타고났어도 브장송 국제음악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내가 방문했던 2009년 9월 13일 일요일의 오후와 저녁 시간대에 퀴르살과 음악극장에서 연거푸 목도한 필리프 카사르의 리사이틀과 로린 마젤 지휘 이탈리아 교향악단의 무대는 각별한 것이었다. 지난 4월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은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의 첫 내한무대에 반주자로 등장해서 무결점의 영롱한 서포트를 과시했던 인물이 바로 필리프 카사르다. 흡사 황금비늘로 치장한 반짝이는 물고기가 깊은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쳐 가듯 이 날의 카사르도 번쩍이는 유창한 비르투오시티로 일관해 나를 감동시켰다. 특히 리스트의 ‘페트라르카의 소네트 104번’과 ‘단테를 읽고’는 금상첨화의 명연이었다. 카사르의 독주회가 끝나고 음악극장으로 자리를 옮겨 열린 마젤 지휘 이탈리아 교향악단의 무대에서 카사르는 음악극장 객석 2층에 앉아있던 내 바로 앞자리에 청중으로 착석해 있었다. 그는 마젤의 등장에 주체할 수 없는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 시대 마지막 거장에게 카사르가 청중으로서 보낸 감사와 경탄의 메시지처럼 들렸다. 세계 각국의 유수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는 실력파 이탈리아 연주자들을 그러모아 결성된 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교향악단=이탈리아 교향악단을 지휘하던 마젤을 본 것은 색다른 체험이었다. 프로그램부터가 슈베르트의 ‘이탈리아 양식’ 서곡 및 베토벤 교향곡 8번, 로시니의 ‘비단사다리’, ‘신데렐라’, ‘알제리의 이탈리아인’,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 같은 소담한 곡들 일색이어서 이색적인 체험일 수밖에 없었다. 애석했다면 어쿠스틱이랄 것도 없던 조악한 반사음향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조악한 브장송 음악극장 무대에 과거 카를 슈리히트(1880-1967)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1886-1954), 앙드레 클뤼탕스(1905-1967), 이고르 마르케비치(1912-1983), 라파엘 쿠벨리크(1914-1996) 같은 수많은 명지휘자들이 발디디고 서서 수다한 명연들을 일구어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음향이 좋지 않다고 얕잡아 볼 수만은 없는 관록의 음악제가 브장송 국제음악제인 것이다.


   지난 4월 17일 광화문 금호아트홀에서 76세의 고령에도 명연주를 선사해 감탄을 불러일으켰던 프랑스의 명바이올리니스트 제라르 풀레(1938- )의 부친인 가스통 풀레(1892-1974)의 이니셔티브로 1948년 출범한 브장송 국제음악제의 매력은 바로 이 같은 뚝배기 아닌 장맛에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클래식음악계는 이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만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몰라 개탄스럽기만 하다. 수천억원을 쏟아부어 뚝배기부터 호화롭게 지어놓고 정작 그 안에 담기는 장맛은 형편없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 21세기 들어 아트센터 건립붐을 타고 있는 한국 클래식음악계의 현주소인 것이다. 건물 이전에 내실부터 기할 일이다. 허세는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뚝배기에 쏟아부을 돈 수백억, 수천억을 내실을 기하는데 투자한다면 대한민국의 클래식음악계 레벨도 부지불식간 수직상승할 것이다. 브장송 국제음악제와 브장송 국제 지휘콩쿠르를 생각하노라면 이 같은 생각이 더욱 확고해지는 기분이다.




-브장송의 음악요람들, 음악극장과 퀴르살 그리고 브장송 요새

    그처럼 브장송 국제음악제와 브장송 국제 지휘콩쿠르를 60년 넘게 개최해 오고 있는 두 요람, 브장송 음악극장과 퀴르살은 호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이 둘의 역사는 말 그대로 유서깊은 것이다. 브장송 시내 메즈방 거리 49번지에 위치해 있는 브장송 음악극장은 오페라, 클래식 전용극장이다. 1778년부터 1784년까지 건축가 클로드 니콜라 르두의 설계에 따라 클로드 조세프 알렉상드르 베르트랑에 의해 건립된 브장송 음악극장은 현재 1100석의 객석수를 보유하고 있는 브장송의 대표극장이다. 1857년 들라크루아에 의해 내부 개,보수 공사가 행해지기도 했다. 1857년 당시 2000석에 이르던 객석수는 개,보수 공사를 거치면서 현재의 1100석으로 축소되었다. 6개의 장중한 원주들이 심어져 있는 건물 정면의 위용과는 어울리지 않게 내부는 소박한 편이지만, 상술했듯 전설적인 마에스트로들이 거쳐간 역사적 무대인 만큼 문화사적 가치는 매우 진귀하다 할 것이다.


브장송 퀴르살 정면.png▲ 브장송 퀴르살 정면 - ⓒYves Petit



    브장송의 나머지 극장으로 1893년 개관한 360석 규모의 퀴르살(Kursaal)을 빼놓을 수 없다. 역시 자랑할 만한 규모와 시설은 아니지만, 브장송 국제음악제와 브장송 국제 지휘콩쿠르의 상당부분을 이 극장은 도맡아 소화하고 있다. 이 외에도 루이 14세 시대에 프랑스원수를 지낸 보방 후작에 의해 1668년에 축성된 브장송 요새를 병풍 삼아 펼쳐지는 야외음악회 등이 브장송 국제음악제의 운치를 더해주는 이색 이벤트들이다.


브장송 퀴르살에서 연주하는 아카데미아 비잔티나.jpg▲ 브장송 퀴르살에서 연주하는 아카데미아 비잔티나 - ⓒYves Petit


    마지막으로 조만간 시작될 올해 2014년 브장송 국제음악제의 프로그램을 일별하는 것으로 맺음말을 대신할까 한다. 9월 12일 니콜라 샬뱅이 이끄는 오케스트르 데 페이 드 사보아의 개막연주회를 필두로 제레미 로레 지휘 르 세르클 드 라르모니의 무대, 미하일 루디의 피아노 리사이틀, 로저 노링턴 지휘 파리 체임버 오케스트라, 카렐 마크 시숑 지휘 도이치 라디오 필하모니(손열음 협연), 조반니 안토니니 지휘 바젤 체임버 오케스트라 등을 거쳐 21일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 지휘 바젤 교향악단의 폐막연주회로 그 성대한 막을 내린다. 이 모두가 브장송 음악극장과 퀴르살, 브장송 요새 앞 야외무대를 중심으로 한 군소무대들에서 펼쳐진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지 않은가. 관심 있으신 분들은 조만간 브장송으로 떠나 음악의 신세계를 경험해 보시는 건 어떨는지.


브장송 요새를 전경으로 펼쳐지는 야외음악회.png▲ 브장송 요새를 전경으로 펼쳐지는 야외음악회 - ⓒYves Petit

브장송 음악제 기간 중 실외무대에서 펼쳐지는 야외음악회.png▲ 브장송 음악제 기간 중 실외무대에서 펼쳐지는 야외음악회 - ⓒYves Petit

2014 브장송 음악제 로고.jpg▲ 2014 브장송 음악제 로고 - ⓒYves 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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