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수많은 처음이 되어 준 너에게 [사람]

나의 처음이 너여서, 고마워
글 입력 2021.05.2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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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덟 살이던 해의 추운 크리스마스 이브 날, 나의 여동생이 태어났다. 생각해 보면, 나 자신에 대한 글이나 문화 예술에 관한 글들은 줄곧 써 오면서도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인 나의 동생에 대한 글을 쓸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동생과 나는 일곱 살 터울이 난다. 사람들은 일곱 살 터울이면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에 잘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쉬이 이야기하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고 나서부터 우리 엄마의 관심의 대상은 오로지 나뿐이었는데 내가 여덟 살이 되던 해, 뱃속에 지금의 동생인 ‘밝음이’라는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나보다는 밝음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듯 했다.

 

 

 

아홉 살에 맞이한 '동생'이라는 존재


 

동생이 태어난 뒤 두 달쯤 지났을까. 피아노 학원이 끝나고 눈이 펑펑 오던 날, 난 우산이 없었다. 피아노 학원 셔틀버스에서 내리면 당연히 엄마가 우산을 들고 날 마중 나와주고는 하였는데 그 날은 아무도 없었다. 손에 들고 있던 실내화주머니로 머리 위로 내리는 눈을 겨우 막으며, 눈물을 꾹 참고 아홉 살의 나는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 갔다.

 

중학생 때는 회사에 가 있는 엄마, 아빠 대신 매일 오후 4시 50분에 동생의 유치원 버스 앞에 마중 나가 있어야 했다. 친구랑 놀다가도, 공부를 하다가도, 밥을 먹거나 TV를 보다가도 어김없이 4시 50분이면 집 앞으로 나갔다. 중학생 때의 나에게는 나의 하루 일과의 흐름을 끊는 것 같은 이 일이, 꽤나 스트레스였다.

 

 

 

지금의 나에게 '동생'이라는 존재란...


 

“엄마가 좋아요, 아빠가 좋아요?”

 

성인이 된 나에게, 지금 이 질문을 묻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예전의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엄마, 아빠 둘 중에 한 사람만을 선택하라는 것만큼 어려운 질문이 이 세상에 또 무엇이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이 질문에 주저 없이 곧바로 대답할 수 있다.

 

"엄마가 좋아요, 아빠가 좋아요?"

.

.

"동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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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엄마, 아빠를 나의 온 마음을 다하여, 가장 깊이 사랑한다. 그러나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에 대한 질문에 동생이 좋다고 대답하는 것은 동생이 나에게 그만큼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뜻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동생은 어떤 의미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동생’이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갑에 동생의 증명 사진을 넣고 다니는 언니가 되었다. 동생은 ‘언니’라는, 나의 또 다른 지평을 열리게 한 존재이다. 내가 처음으로 ‘언니’라는 존재가 되도록 만들어 준 사람이다.

 

그리고 동생은, 내가 용기를 내어 무언가를 입 밖으로 처음 소리치도록 한 존재이다. 나는 지금과 달리, 어렸을 때 굉장히 내성적이었다. 수업 시간에 발표는 고사하고 엄마, 아빠가 아닌 다른 어른들에게는 인사조차 잘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한 사건이, 그 누구보다 소극적이었던 내가 무언가를 소리치게 만들었다.

 

 

 

나는 몰라도, 동생은 꼭 살아야 해.


 

동생이 태어난 뒤 약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동생과 엄마가 있는 산부인과의 지하 보일러실에서 불이 났었다. 당시 9시 뉴스에 나올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동생을 출산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아 침대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던 우리 엄마, 신생아였던 나의 동생, 엄마와 동생을 간호해 주기 위하여 병원에 와 계셨던 외할머니, 그리고 내가 그 산부인과의 1인실에 있었다.

 

우리가 있었던 병실은 7층이었다. 그런데 문틈으로 하얀 연기 같은 것이 들어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무슨 일인지 병실 문을 열어 보았는데, 복도에는 소리 없이 하얀 연기만이 복도를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1인실이었던 각 병실 앞에는 아이의 출산을 축하하는 화환들이 곳곳에 놓여져 있었고, 그 화환들만이 고요한 복도에서 고스란히 연기를 맞고 있었다.

 

지하 보일러실에서 시작된 불이었기 때문에 비상 계단을 이용하여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12월 말의 한파에서 신생아였던 나의 동생과,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은 우리 엄마, 외할머니, 내가 옥상에서 벌벌 떨며 기약 없이 구조를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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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는 만원이었다. 그 틈을 비집고, 살아서 이 층을 내려가겠다는 집념 하나로 모든 사람이 엘리베이터의 한 칸에 겨우 끼어 있었다. 동생을 안고 있었던 우리 외할머니는, 동생이 사람들에게 눌리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셨다. 그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 밖으로 소리를 질렀다.

 

“여기 아기가 있어요! 너무 세게 누르지 말아 주세요!”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소리침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덟 살의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소리를 질렀는지 잘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나는 몰라도 동생은 꼭 살아야 한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정말 다행히도 엘리베이터는 1층에 잘 도착하였다. 그 산부인과가 운영하였던 산후조리원으로 모든 산모와 가족들, 신생아들이 대피하였다. 겨우 산후조리원에 도착하여 거울을 봤는데, 정말 TV에서 봤던 그대로, 연기 때문에 얼굴이 새카매져 있었다. 그제서야 세수를 하고, ‘내가 불이 난 곳에서 대피한 경험도 해 본 거구나!’라고 놀라며 상황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

 

 

 

나의 수많은 '처음'이 되어 준 나의 동생


 

동생과 나의 시작은, 이렇게나 평범치 않았다.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나는 ‘나의 목숨은 상관 없이, 동생을 살려야 한다.’라는 무거운 마음을 지니는 법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사건을 통하여 배운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나의 동생은 어느 새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함께 15년을 동고동락하며, 동생과 나는 둘도 없는 ‘15년 지기 친구’가 되었다. 동생에게는 내가 평생 친구인 셈이다! 정말 친한 친구, 엄마, 아빠에게도 쉬이 하지 못할 이야기들일지라도 동생에게는 주저 없이 꺼내곤 한다. 나의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의 동생일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동생에 대한 고마움을 꼭 이야기하고 싶다. 같은 배에서 태어났지만 나와 성격이정반대인 나의 동생은 대화할 때마다 나의 생각의 범위를 넓혀 준다. 그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집에 동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동생 그 자체만으로도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큰 위로가 된 적이 정말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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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나의 수많은 처음이다. ‘동생’이라는 존재가 생긴 것도,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를 내가 보호해 줘야 한다는 것도 다 나의 동생을 통하여 내가 겪은 ‘처음’이다.

 

동생 덕분에 나는 수많은 ‘처음’을 겪을 수 있었고, 그 경험들은 다 나의 굳은 살이 되었고 하나, 하나 나의 마음에 장미들로 피어났다. 모두 다, 나의 동생 덕분이다.

 

나의 수많은 처음이 되어 준 나의 동생에게 가장 깊고 무거운 마음을 다하여, 진심으로 고맙다. 앞으로도 나와 나의 동생은 수많은 나날들을 함께 걸어갈 것이다. 지금까지의 길이 그저 순탄하지만은 않았듯이, 앞으로의 길 또한 평안한 일들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뭐 그럼 어떤가. 원래 우리 마음처럼,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고, 세상인 법이다. 원래부터 늘 그래왔던 세상이기에, 그런 세상을 새삼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 세상을 함께 걸어갈 사람만 내 곁에 있다면 기꺼이 세상의 어려움들의 모든 지점을 하나, 하나 걸어갈 자신이 있다.

 

사랑스러운 나의 동생이 나의 곁에 있다. 그렇기에 난, 누구보다도 크나큰 용기를 지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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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생.

 

 

[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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