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살기 위해 살기 좋은 곳이 되기를 바라며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5.2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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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웃 아주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친구분이셨기에 그분에 대해 잘 알고 있던 나는 그분이 수명을 다하신 경위를 듣고 깊은 생각이 들어, 자칫 무거운 소재를 어렵게나마 꺼내 보고자 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빌려 이야기하는 것이라 상세히 기술하진 않을 테지만, 그분께서 숨을 거두신 경위를 결과적으로 읊자면 동네 병원 의사의 오진 때문이었다. 몸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채지 못해 '조금만 더 지켜보자'는 말만 되풀이하였으며, 갈수록 심해진 증상을 느끼셨던 그분께서 큰 병원으로 옮겼을 땐 이미 손 쓸 수 없이 병이 진행된 상황이었기에 석 달을 겨우 버티시다 얼마 전 숨을 거두셨다. 이 일은 내가 몇 달 전부터 뼈저리게 느꼈던 지역 간 의료 수준 차이에 관한 불만의 기폭제가 되었기에, 주변의 이야기와 미디어를 통해 접한 사실을 바탕으로 이 글을 써 내려 가려한다.

 

우리 동네 행정구역은 '읍'에 속한다. 터무니없는 시골이다. 조금만 걸어가도 논밭이 나오고,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지 못해 교통이나 경제면에서 불편한 점이 꽤 많은 동네다. 의료 현황도 비슷하다. 개인병원은 줄지었지만 불쾌한 농담이나 자잘한 오진으로 평이 안 좋아 주민들도 잘 방문하지 않는 병원이 있는가 하면, 병원 홍보 매체에는 치료가 가능하다고 적힌 항목이 진료 접수대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고 못 박아두는 경우도 꽤 있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어느 새부터 간단한 감기 증상이 아니면 버스를 타고 더 멀리 있는 병원으로 옮겨 다니게 됐다.

 

스무 살 때의 일이다. 아주 어렸을 적에 종기가 생겨 동네 작은 병원에서 이를 절개해 봉합한 적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고 틈새로 돌출 흉터가 생겼길래 어떤 영문인가 싶어 학교 근처의 대학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가 켈로이드 피부라는 것이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앞으로는 되도록 절개 수술을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보다 피부의 예민도가 크다고 말씀하셨다. 몇십 년을 다닌 병원에서 한 간단한 시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큰 돌출 흉터가 남았어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다. 어쩌면 예견된 의료사고였을 수도 있다.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있었다. 중학교에 다녔을 때 다쳤던 발목 치료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 동네의 병원을 옮겨 다니다가 얼마 전 번화가에 있던 한의원에 들리니 이미 만성이 되었다는 말도 들었고, 다른 지방에 사는 지인의 가족은 동네 병원에서는 진료조차 되지 않아 두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큰 대학 병원에 매주 방문해 외래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도 한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하필 눈이, 발목이, 내 피부 상태를 모르고 작은 병원에 간 것이 문제였던 건지, 내가 갔던 병원들만 문제였던 건지. 아직도 해답을 못 찾겠다.

 

 

 

 

내 주변에서도 이런 사례를 충분히 접한 바 있다. 인터넷에서도 의료 격차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다양한 사안을 접할 수 있으며, 이미 언론에서도 여러 번 다뤄진 사안이다. 의료 빈부격차, 의료 쏠림현상 등 다양한 언어가 파생될 만큼 계속해서 쏟아져나오고 있는 문제임과 동시에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이 글은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이 어떤 문제점을 낳고 있고, 어떤 계층이 피해를 입고 있는지 고발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 글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직접적인 기여를 하진 못함 또한 알고 있다. 또한 의료 수준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 지역적인 인프라 개선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이것이 단기간에 해결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기고하는 이유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다수가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음을 공공연히 알리기 위함이다. 인프라가 확충되지 않은 곳이라고 해서 미비한 의료 체계로 인해 피해 보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며, 나처럼 나의 증상, 나의 피부 상태 등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로 시술을 받아  흉터가 생기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큰' 병원에 가기 위해서 대중교통으로는 한 시간, 자차로는 30분을 달려야 갈 수 있는 지역에 사는 나는, 쭉 이곳에서 지낼 우리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의료 빈부격차가 하루빨리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더는 가야 할 병원, 가면 안 될 병원 같은 구분 선이 생기지 않기를, 어느 곳을 가든 안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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