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취화선(2002) [영화]

글 입력 2021.05.2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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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화선>은 그림으로서 살다 그림의 한 부분이 되어 죽음을 맞이한 화가, 장승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장승업의 어린 시절부터 사랑과 죽음까지 지난한 삶을 따라가며 마치 그의 작품과 같은 화풍으로 당시 장승업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장승업의 예술적 삶



영화의 초반부, 어린 시절의 장승업은 자신의 누나를 괴롭히는 남자의 그림을 그려 그로 인해 살고 있던 빈민굴에서 내쫓김을 당한다. 사실적인 묘사, 생동하는 그림은 개화파 김병문의 눈을 이끌어 그로 하여금 장승업을 거둬들이게 된다. 그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본 김병문은 어깨 너머로나마 장승업이 그림을 배우게끔 도와주고 이를 기반으로 장승업의 환쟁이 삶이 시작된다. 영화는 점차 발전해가는 장승업의 예술적 성취를 단계별로 보여주고 있다.

 

그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반에는 장승업 특유의 면밀한 관찰력으로 중국 화가들의 화풍을 베껴내는 모사작을 만들어 인기를 얻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손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기술 연마는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이 기술로서는 예술이 되지 못한다. 의재필선. 무릇 그림이란 눈에 보이는 필선을 담아내는 붓질보다 거기에 어떤 ‘뜻’을 세우느냐가 중요하다는 김병문의 말은 같은 맥락으로 통한다.

 

자신의 예술적 탐구에 있어, 장승업은 이제 어떤 의미를 담고 예술가로서의 작가 정신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기술로서 예술에 다가가는 것은 ‘쟁이’이므로 예술은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장승업은 절박하게 이 선을 넘고자 한다. 관념적인 그림이 곧 예술과 같았던 당시 조선 시대의 사회적 풍조에도 불구하고 장승업이 선택한 길은 무엇보다 생동감 있는 재현방식에 있다.

 

장승업은 화조, 역목, 산수에 능하다는 자신에게 내려진 세간의 보편적 평가를 넘어서기 위해 한 번 더 예술적 성취에 도전한다. 익숙한 자신의 화풍에서 벗어나고 달라지기 위해 그는 술에 취해 자신의 화풍과 전혀 다른 원숭이 그림을 그려내기도 하고 호취도를 그리고자 수십 장을 그리고 수십 장을 버리기도 한다. 그는 사회에 만연했던 그림에 대한 기대를 전면으로 거부하며 내키는 대로 거침없이 붓을 휘두른다. 영화는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는 안일한 삶을 넘어 그림을 온전히 바라보고 기술 수행에서 예술가, 그리고 자신을 넘어서는 예술을 위해 끊임없는 탐구와 시도를 해 나가는 장승업의 모습을 끈질기게 따라간다.

 

영화 속 장승업의 마지막은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노화로 인한 수전증은 장승업이 더 이상 예술가로서의 전망이 없음을 보여준다. 그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 속으로 기어 들어가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의 죽음이 빚어낸 것은 말간 도자기다. 영화는 도자기를 마지막으로 보여주며 끝맺음을 한다. 마치 그의 죽음은 예술의 일부분이 되면서, 마치 예술 자체가 그 자신이 되어 온전한 합일을 이루고자 하는 장승업의 의지가 실현된 것으로 느껴진다. 결국 장승업은 그림으로 살아 그림으로 남게 되는 삶을 꿈꿔왔던 것은 아닐까. 혹은 각자의 개인이 무엇을 원하든 도자기로 하여금 도자기가 되는 것은 불의 몫이라는 도공의 말에 따라 한 차원을 넘어선 자신을 소재로 한 예술적 성취를 마지막으로 바랐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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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같은 영상 재현



영화는 장승업의 삶을 마치 장승업의 그림과 같은 화풍으로 보여준다. 인물 장승업이 자신의 삶과 예술을 결국 일치시키는 욕망을 이룬 것처럼 영화는 장승업이라는 예술가의 세계와 그의 작품을 합일하기 위한 재현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마치 수묵화처럼 개인이 하나의 풍경 속에 자리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인물을 위치시키며 그 뒤로 산, 들, 갈대, 바다 등이 등장인물들을 아우르게 한다. 원경에 의해 멀리 있는 것들이 옅게 보이는 것처럼 인물들은 공간에 따라 옅어지고 끊임없이 공간이 품은 인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카메라가 선택한 이러한 원경의 방식은 무엇보다 관조하듯 인물의 삶을 지켜보면서도, 장승업이 그림을 그리는 장면에서는 서슴없이 사물에 가까이 다가간다. 이는 장승업이 그림을 그리는 대상과 그 대상이 얼마나 생동감 있게 사실적으로 표현되는가를 강조해서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영화에는 다양한 자연을 담아내는 인서트들이 자주 자리한다.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참새의 움직임, 숲, 한옥들의 모습들이 장면장면 삽입되어 장승업이 그리는 그림들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현실의 삶과 자연이 어떻게 예술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영화의 자세한 묘사는 장승업이 삶에서 경험하고 본 것이 그림으로 나타나게 되는 유기적 관계를 끊임없이 놓치지 않고 표현해 낸다. 예를 들어, 말을 타고 길을 가던 장승업은 탐관들의 헛배를 불리는 곡창 위로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철새들의 움직임을 본다. 이 새들의 움직임은 곧이어 장승업의 작품으로 등장하게 된다. 보이는 것과 그림으로 재현되는 것, 더불어 영상으로 재현되는 것. 영화는 이렇게 다층적인 ‘시선’과 ‘재현’의 문제를 놓고 비교 감상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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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생을 담아내는 영화의 태도



이 영화가 성취한 지점은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가에 대해 적절한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평가내리지 않으면서 복합적인 개인을 담기 위해서는 카메라와 인물 간의 적절한 거리를 확보해야 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야 한다. 과한 감정이입을 통해 분별없이 개인의 영웅화 혹은 미화로 인물에 대한 평가를 강요하지 않고 오직 역사적 인물의 ‘사실’만을 집중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의 태도는 분명 이 영화의 장점으로 작용한다.

 

재능 넘치는 예술가이면서도 동시에 여성편력이 심한 인물이었으며 주정뱅이에 폭력적인 인물임을 관객의 반감 없이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는 대부분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며 인물의 대화 구성 또한 장면을 많이 나누지 않고 하나의 장면구성으로 오래 보여주길 선택한다. 이렇게 확보된 물리적 거리감을 통해 우리는 개인 장승업의 삶과 예술적 삶을 분리시키되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며 한 사람의 긴 생을 숨 죽이고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삶은 우리가 절대 겪어볼 수 없다는 이유로 함부로 비판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 장승업은 개인으로서 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인물로 그려진다. 기술을 연마했고, 기술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올랐을 땐 한 번 더 자신을 넘어서 예술적 성취를 이룩하고자 도전했다. 그가 정치적 상황을 등한시했다는 세간의 작은 비판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예술이 먼저였던 장승업에게 이러한 비판은 혹시 달가운 것은 아니었을까.

 

취화선. 그것은 술에 취해 그림을 그리는 신선이라는 의미다. 술을 마시고 자기 자신의 의식을 넘어서 새로운 예술의 경지에 다가가고자 했던 초극의 정신은 누구나 배울 만한 것이다. 이성이 규제하지 않는 취기의 예술적 정신. 이는 니체가 주장한 디오니소스의 정신, 즉 예술가가 가져야하는 태도와도 닮아있다. 끊임없이 땅바닥에서 그 시선으로 작품을 만들어낸 장승업이 그림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 한옥의 기와 위로 올라가 술을 마시고 앉아있는 장면에서 장승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치 하늘에서 인물들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와 시점은 장승업에게 무엇을 감각하게 했을까. 그 시선은 어떤 또 다른 시각이었을까. 자신을 극복하고 또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새로운 것을 탐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파괴시켜야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장승업에게는 술이 그 역할을 해냈던 ‘취화선’ 이었다.

 

 

[김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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