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엄마와 함께하는 나날들 [사람]

엄마와 나의 이야기
글 입력 2021.05.2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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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언제 와?"

 

유년기 시절의 내 단골멘트였다. 전화기를 붙잡고 1시간에 한 번씩 엄마에게 전화를 했었다. 엄마에게 미안하지도 않았다. 그저 엄마가 언제 오는 지 정말 궁금했고, 엄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을 뿐이다.

 

 

 

엄마와 '함께했던' 나날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기에 갓난 아기때부터 4살 때까지는 친가댁에서 자랐다. 주말마다 엄마와 아빠가 날 보러왔다. 아주 애기 때는 그저 안기면 좋아라 웃는 정도였지만, 머리가 크고 다리가 길어지면서부터 부모님이 주말 저녁에 친가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 눈물을 글썽이곤 했다. 다행히 4살이 되며 부모님과 처음으로 같이 살 수 있었다. 엄마는 나를 키우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시고 나와 함께하는 일상을 보냈다.

 

처음으로 엄마와 나 단둘이서 보내는 시간을 맞이했다. 참으로 천진난만하고 걱정이 없고, 포근했던 나날들이었다. 예민하고 까탈스럽지만 적당히 애교도 있었던 딸내미를 엄마는 잘 보듬어 주셨다. 우리는 함께 서울역 롯데마트에 갔다가, 내가 잠시 엄마를 잃어버려서 안내 방송에 "신지예 어린이를 찾습니다"라는 멘트가 울려퍼진 적도 있었고, 서울대공원에서 열리는 그림그리기 대회에 참가했다가 폭우가 쏟아져 비를 쫄딱맞은 쥐가 된 적도 있었다. 종종 재즈 음악을 틀고 엄마와 두 손을 맞잡으며 시공간을 잊은듯 춤을 추기도 했다. 나는 줄곧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내 사진을 올리는 엄마 계정을 몰래 훔쳐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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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엄마와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것은 얼마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이었다. 우리 가족이 새 집으로 이사를 한 후 엄마는 새로운 직장을 가시게 되었다. 그때부터 다시 엄마와 떨어지는 날이 이어졌다. 아주 어릴 때처럼 길게 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같이 살아도 엄마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중 현저히 적었다.

 

유치원에서 하교를 마치는 평일 오후는 할아버지와 내내 지냈다. "엄마, 언제 와?" 전화기를 붙잡고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바쁜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듯 늘어졌다. "빨리 갈게"라는 말 한 마디에 마음이 고요해졌다가, 저녁 6시가 넘어서도 엄마의 구두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아득한 불안이 시작되었다. 이윽고 KBS 9시 뉴스가 시작되면 위협적인 뉴스 음악에 가슴이 쿵쿵 뛴다. 하루가 저문지도 한참이고, 이미 밖은 깜깜한데 아직도 엄마는 들어오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아빠는 애초에 일찍 들어오시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어서 밤 10시에 KBS 가요무대가 시작되면 그때는 울먹이기 시작한다. 하루가 2시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엄마를 보지 못했다. 가요무대가 끝나갈 쯤 엄마의 발소리가 들리면 우당탕탕 현관문으로 뛰어가고, 엄마에게 안긴다. 아! 포근하다.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없는 와중에 동생이 태어났다. 동생의 존재는 전적으로 나의 소망에서 비롯했다. 엄마와 민들레에 관한 동화책을 읽었을 때 '민들레 씨앗을 불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구절을 본 적이 있다. 그 후로 나는 거진 1년동안 "동생이 태어나게 해달라"고 엄마 앞에서 빌었다. 8살이 된 2월에 기다리던 동생이 선물처럼 태어났다. 아기를 낳고 쉬어야할 그 타이밍인데 동생을 가진 딱 10개월만 휴식한 후, 엄마는 초인처럼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다. 동생이 태어나기전 함께했던 10개월은 내가 엄마와 단둘이서 보내는 정말 마지막 나날들이었다.

 

그 후로 15년이 지났다.

 

 

 

엄마와 '함께하는' 나날들


 

15년이 지나는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이미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두 번 바뀌는 시간이 흘렀다. 엄마를 기다리느라 눈물 콧물을 질질 짜는 아이는 역사의 뒷편으로 남겨지고, 지금은 '내 인생 내가 책임진다'는 선언을 밥 먹듯이 하는 독립적인(or 독립적이고 싶은) 사람이 이 글을 쓰고 있다.

 

엄마는 올해 초에 15년 전 시작하셨던 일을 마무리하셨다. 그리고 재빠르게 다시 새로운 일에 뛰어드셨다. 그 덕에 재택 근무를 하시게 되어 대부분 온종일을 집에서 머무신다. 아빠는 출근을 하시고, 중학교 2학년인 동생은 학교에 간다. 휴학생이자 인턴인 나는 엄마와 똑같이 재택근무중이다. 그렇다. 15년만에 다시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5살 때 엄마와 함께한 나날들과 비교해보면, 지금은 아주 조용하기 짝이 없다. 지금은 엄마에게 인라인타러 나가자고, 놀이터에 나가서 그네를 태워달라고도 조르지 않다. 어디 가자, 뭐하고 싶다, 이랬다 저랬다하며 쫑알쫑알 엄마를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그저 각자 주어진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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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말 좋은 점이 있다. 엄마랑 점심과 저녁을 같이 먹는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일정때문에 매일 식사를 함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주일 중 최소 3-4일은 함께 밥을 먹는다. 밥을 같이 차리기도 하고, 밥을 먹으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무엇보다 집에서 몸에 좋은 건강한 음식을 차려먹고 여유롭게 티타임을 가지는 것이 즐겁다. 이 별 거 아닌 일상이 우리에게는 별 거였기 때문이다.

 

엄마와 평온하게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놀랍게도 이전까지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15년이 흐르는 중간에 내가 사춘기를 제대로 경험한 지라, 마치 두 행성이 정면 충돌하듯이 엄마와의 관계도 바람 잘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직접적인 갈등이 없을 때에도 앞날이 보이지 않는 불안만 가득했다. 예민한 나는 고입 또는 대입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때때로 밥 한 공기조차 맛있게 먹지 못했다. 밥상에는 늘 깨작거리는 내가 앉아있었고,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맛있게 좀 먹어라"는 애원을 하셨다. 어떻게해도 입 안에 침이 돌지 않았고, 목구멍으로 밥을 삼키는 것이 어려웠던 때가 그토록 많았다. 돌같은 무거운 분위기를 짓이기며 숟가락을 내려놓기만 했다.

 

지금은 밥이 맛있다. 더이상 예민함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 나는, 입안에 군침이 가득 돌고 배도 자주 고프다. 많이 먹었지만 또 후식을 원하고, 다시 맛있게 먹는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잘 먹으니 보기 좋다"라는 말씀을 하신다. 이제는 밥상에 둘이 앉아 보다 가볍고 산뜻한 마음으로 식사를 한다. 15년이라는 긴 터널을 하나 넘은 우리는 "지금이 딱 좋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앞으로 어디를 향해 나아갈 지, 엄마와 내 앞에 무엇이 펼쳐질 지는 모르지만 함께 밥을 먹는 이 시간이 좋다.

 

엄마가 날 낳았을 시절의 나이와 가까워져가는 지금, 나는 앞으로가 더 궁금해진다. 분명한 것은, 엄마와 나에게 온 '함께하는' 지금 이 나날들이 미래의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또다시 먼 시간이 지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돌이켜보면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때도 엄마와 함께 맛있는 밥 한끼 후에 티타임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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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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