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아가는 것에 늦었다는 건 없습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글 입력 2021.05.26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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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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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는 정말 많다. 시간을 되돌려 사랑을 쟁취하는 <어바웃 타임>, 과거의 시간으로 이동하는 <이터널 선샤인>이나 <미드나잇 인 파리> 등등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예능까지 시간을 되돌리는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왜 이렇게 시간을 역으로 돌리는 걸까? 그 이유는 시간의 회귀는 불가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의 총량은 유한하며, 한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지나간 날과 선택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것이다.


2008년에 개봉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역시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단 이 영화는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라, 벤자민의 시간만이 거꾸로 간다. 아이로 태어나 노인으로 생을 마감하는 인생의 순리대로가 아니라, 벤자민은 노인으로 태어나 아이로 죽기 때문이다.

 

 

 

영혼의 시간은 현재의 시간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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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원제는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이다. 원제와 한국 영화 제목이 다른데, 번역 제목은 일종의 스포일러가 된 셈이다. 주관적으로 원제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은 듯하다. 아무튼, 벤자민 버튼의 생애에서는 그의 시간을 둘로 쪼개어 이해할 수 있겠다. 육체적인 시간과 영적인 시간으로.


벤자민은 노인의 나이에서 아이였고, 아이의 나이에서 노인이었다.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그가 괴물 같다는 생각으로 강에 버리려다가, 한 흑인 부부의 가정집에 갓난아이이던 벤자민을 몰래 두고 간다. 마음씨 착한 퀴니는 그를 안쓰럽게 여기고 그의 모가 되기로 한다.


퀴니는 요양원을 운영했고, 벤자민은 그곳에서 다른 어르신들과 함께 살며 노인의 모습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던 중 요양원에서 함께 지내던 한 할머니의 손녀, 데이지와 만나게 된다. 그 둘은 서로의 사정을 알고 있었고 나이는 달랐지만 친구가 된다. 하지만 벤자민을 이해하면서도 데이지의 할머니는 그 둘의 사이를 갈라놓는다. 벤자민은 이러한 이유로 다른 사람과 같은 템포를 맞추지 못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지만, 사람의 성장은 각기 다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적인 시간과 육체적인 시간을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몸은 자라는데 정신이 어릴 수도, 정신은 성숙하나 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벤저민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각기 다른 템포로 살아가는 우리는 저마다의 시간 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넘어져도 툭툭 털고 다시 걸을 수 있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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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을 살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태도가 중요하다. 어릴 적 벤자민은 노인의 몸을 이끌고 동네에서 멀리 벗어나는 경험을 하였다. 자신을 두고 혼자 떠나간 젊은 남자에 관한 불평도 하지 않고, 지팡이로 그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영화 속 벤자민은 묵묵히 다시 돌아올 정도로 의지가 강했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아이였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슬퍼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크게 불평한 적도 없으며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운명은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라고 이야기했던 어머니 퀴니의 말을 새겨들었고, 벤자민은 그 운명에 대한 책임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벤자민의 시간이 거꾸로 가게 된 계기는 사실 당시의 시대적 상황도 기여했다. 시계공을 만드는 장인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은 전쟁에서 죽게 된다. 슬픔에 잠긴 시계공은 혼자서 계속 후회에 빠졌을 것이다. '아들을 전쟁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했다면', '그와 함께 추억을 만들었다면',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들었다. 그 시계는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기차역 광장에 크게 걸려 거꾸로 돌아갔다. 영화는 이러한 배경을 서술한 뒤 벤자민의 탄생을 연결했다.


감독은 엔딩 장면에서 이 시계공이 만든 시계가 물에 빠진 것을 클로즈업한다. 필자는 물에 빠진 시계의 모습에서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이 떠올랐다. 초현실주의 예술가 달리는 공간과 사물의 배치를 낯설게 하는 기법을 사용했는데, 그 모습은 아래와 같다. <기억의 지속> 또는 <기억의 고집>이라고도 해석될 수 있는 이 작품엔 총 3개의 시계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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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1931, 캔버스에 유채 물감, 24×33㎝,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소장

 

 

우선 사람의 형상으로도 보기 어렵지만, 속눈썹이 있는 눈이 있는 걸 보아 얼굴의 측면 위에 시계가 얹혀있고,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 되는 배경 속 시계가 탁자 위, 나뭇가지 위에 걸쳐 있다. 하단부를 검은색으로 채우고, 수평을 알 수 없는 지표면의 위를 하얗게 처리해 대조하였다. 이 지점 때문에 더 몽환적이고 무의식적인 느낌을 받는다.


우주의 시공간처럼 보이기도 하는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서, ‘추상적인 시간을 가시화한다면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무의식에선 단순히 오래된 기억이라고 해서 폐기되지 않는다. 어떤 기억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고집부리는 것 마냥 존재하는 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흘러간 기억나지 않는 시간도 있기 때문이다.


물에 떠내려가는 거꾸로 가는 시계도 달리의 그림 속 시계의 모습처럼 오마주된다. 흘러 떠나가고 없어지는 시간 같지만, 무의식 속 어떠한 기억이 지속된다. 따라서 영화는 ‘인생은 허망한 것이다’라는 주제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잠재된 삶을, 각자의 세계를 가치 있는 것으로 평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림과 관련해 각자의 기억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본인에게 의미 있던 시간을 찾으며 상상해보는 작업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인생은 태풍을 견디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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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벤자민은 어릴 적 만났던 데이지와 사랑에 빠져 살았다. 그 둘의 신체적 나이가 비슷해질 때 즈음 결혼을 했고 행복함 속에 아이를 낳았지만 계속해서 어려지는 자신이 짐이 되리라 생각해, 데이지와 아이에게 돈을 남겨두고 자신은 빈손으로 떠난다. 데이지는 나이가 들어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어른이 된 그의 딸은 엄마를 간호한다. 데이지는 딸에게 한 권의 책을 주며, 벤자민의 일기를 읽게 한다. 그 이야기를 읽으며 딸은 아버지 벤저민을 알게 된다. 영화는 서론부터 결론까지 딸의 내래이션으로 연결되며 벤저민의 삶이 교차된다.


딸이 그 책을 읽고 끝날 때까지 중간중간 영화는 병실 텔레비전을 보여주며 강력한 태풍의 위험을 예고한다. 병실의 사람들은 이동하지만 데이지와 딸은 이동하지 않고 책을 계속해서 읽어나간다. 편지를 읽는 딸의 내레이션과 병실 TV 속 뉴스 내레이션을 삽입한 것은 태풍과 삶의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예전에 “박변의 지지앙꼬”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박변호사님께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생은 태풍 속에서 견디는 것”이라는 말이다. 삶은 잔잔하거나 무서운 태풍의 연속이라고.


벤자민의 인생 역시 태풍 사이에서 견뎌온 나날이었고, 데이지와 그의 딸도 인생이라는 태풍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었다. 영화는 태풍이 몰아치지만 벤자민과 딸에 대한 사랑으로 버티는 데이지의 의지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이렇게 사람의 일생에 있어, 시간은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부터, 삶을 살아가는 태도, 기억의 세계까지, 다양한 시사점을 전달하고 있다.

 

 

[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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