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뉴욕 지하철에 울린 네 발의 총성, 미디어 재판 [다큐멘터리]

한 명의 백인과 네 명의 흑인 소년, 지하철에서 벌어진 총격
글 입력 2021.05.2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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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뉴욕 지하철 안에서 총성이 울린다. 총상을 입은 것은 흑인 소년 네 명.

 

뉴욕 경찰은 총을 쏜 범인을 찾으려 하지만, 그는 이미 도주한 이후다. 며칠 후, 한 백인 남성이 자신이 소년들에게 총을 쏜 사람이라고 자백한다. 그의 이름은 ‘버나드 게츠(Bernhard Goetz)’. 무자비한 악인이라는 비판도 잠시, 그는 뉴욕 시민들에게 ‘지하철 자경단’이라는 명칭으로 추앙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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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작은 전자 장비 개발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버나드는 1981년 뉴욕 지하철에서 십 대 소년 세 명에게 폭행을 당한다. 그 이후, 버나드는 총을 소지하고 다니며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일이 벌어질 경우 언제든 총을 겨눌 수 있도록 대비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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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1984년 12월 22일에 벌어진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친구들과 술 한잔하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하던 버나드는 같은 칸에 타게 된 흑인 소년 네 명에게 총알을 발사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먼저 자신의 돈을 빼앗고 강도 짓을 하려고 했다는 것.

 

사건 며칠 후 자수한 버나드는 소년들을 공격한 것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정당방위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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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소년의 총격 피해 현장을 취재하던 언론은 버나드의 등장 이후, 그와의 인터뷰를 내보내며 ‘지하철 자경단’, ‘뉴욕의 영웅’ 등의 수식어를 붙여 신문 보도를 하기 시작한다.

 

당시 뉴욕은 폭력과 범죄의 온상이었으며, 정당방위를 위한 총기 소지 여론이 들끓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사회적, 시기적 상황에 힘입어 버나드는 영웅으로서 여론의 지지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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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도 잠시, 버나드의 취조 영상이 검사에 의해 공개된다.

 

그는 자신을 취조하는 경찰들 앞에서 소년들이 자신에게 실제로 위협이 되는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표정과 눈빛을 보고 그들이 곧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그 순간 그들을 없애버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발언을 한다.

 

덧붙여, 마지막으로 총을 쏜 소년 대럴 케이비(Darrell Cabey)가 멀쩡해 보인다는 이유로 “너는 괜찮아 보이는 구나. 한 방 더 받아.”라고 말하며 총격을 가했다는 영상이 언론에 그대로 송출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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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공개된 이후, 여러 흑인 인권 운동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일어나 이 사건을 ‘인종차별로 인한 살해 위협’이라고 규정하고, 버나드의 유죄 선고를 주장한다.

 

그들은 지하철 총격 사건이 1981년의 폭행 사건 이후 모든 흑인들을 범죄의 주체라고 자의적으로 상정한 버나드가 벌인 인종차별 범죄라고 외치며 차별 반대 시위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이미 버나드의 위세는 높아져있었고, 그의 이름을 프린팅 한 굿즈까지 불티나게 팔리던 상황이었다. 당시 피해자의 어머니가 위협 편지를 받을 정도로 버나드를 향한 지지 여론이 불어나게 된 이 시기, 게츠는 신문사, 방송사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총격을 후회하지 않으며, 그들은 충분히 공격을 당해도 될 만한 사람들이었다고 떠벌린다.


여론의 지치지 않는 차별적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던 1987년, 드디어 게츠의 형사 재판이 결말을 보게 된다. 배심원 중 10명이 백인인 재판에서, 게츠는 살인 미수죄를 포함한 12개의 죄목 중 불법 총기 소지 혐의만을 인정받아 징역 1년형을 선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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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그가 승소했다는 것을 연이어 보도한다.

 

살인 미수죄는 법원에서 인정받지 않았지만, 그가 총격을 가한 소년들 모두가 중태에 빠지거나 반 혼수상태를 겪었고, 그가 한 발을 더 쏜 대럴은 영구적 하반신 마비를 얻었으며 심각한 뇌 손상으로 인해 평생 어린아이의 지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게츠는 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모범수로 분류되어 8개월의 복역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게 된다. 미국총기협회와 인권단체의 갈등으로 이어진 뉴욕 지하철 총격 사건은, 미국 내의 총기 소지 합법 논쟁과 흑인을 향한 인종차별 범죄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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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건의 결말은 여기서 나지 않는다. 형사 재판 선고 9년 후, 대럴의 어머니가 버나드에게 민사 소송을 제기한다.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버나드가 “내가 쏜 녀석들은 사회의 실패작이다.” “우리가 이 거리를 청소할 유일한 방법은 깜둥이와 라틴 놈들을 몰아내는 길뿐이다.” 등의 인종차별 발언을 했던 것이 밝혀진다.


당시 흑인 4명과 히스패닉 2명으로 구성된 배심원은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게 된다. 약 4,300만 달러의 보상을 선고받은 버나드는 재판 직후 파산한다. 하지만 여론은 버나드의 과잉 진압과 인종차별적 행태에 분노하고, 이로써 소송을 제기한 대럴의 어머니와 변호사는 궁극적으로 원했던 목적을 이뤘다고 밝힌다.


DC 코믹스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 영향을 주었다고도 알려진 뉴욕 지하철 총격 사건. 당시 뉴욕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버나드의 총격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이 사건은 자신이 범죄를 처단할 수 있다고 믿었던 한 백인 남성의 인종차별 범죄로, 미디어가 그를 영웅으로 추앙하며 벌어졌던 비극적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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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미디어 재판>이 ‘지하철 자경단’이라는 부제로 그 당시 일어났던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선보였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당시 일어났던 논쟁의 양상과 사건의 결과, 현재 버나드 게츠의 일상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다 보고 나면 씁쓸한 마음이 드는 <미디어 재판> 2편, ‘지하철 자경단’.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총기 규제 논쟁과 인종차별 범죄를 생각하면 1984년의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만 같은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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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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