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지의 오늘들, 'SF2021 : 판타지 오디세이'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5.25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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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과학의 날 행사가 열리면, 매번 교실에 앉아 과학상상화를 그리는 것을 선택했다. 운동장에서 물로켓을 쏘고 행글라이더를 날리는 친구들의 즐거운 목소리를 뒤로 하고, 하얀 도화지를 펼친다. 그때부터 어린 나이에는 조금 깊고 심오한 고민이 주어졌다. '미래'라는 불투명한 단어를 과연 어떻게 선명하게 만들 수 있을지.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먼 미래를 상상했다.

 

아직도 그때 그린 그림 중 몇 가지가 기억난다. 하나는 누구나 그렸을 그림이었는데 초고층 빌딩 사이를 날아다니는 자동차였다. 아마 영화 '제5원소'를 감명 깊게 봤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다른 하나는 인간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척박해진 지구의 모습이었다. 메마른 불모지 위에 선 인간은 우주복을 입고 있었다. 단단히 헬멧을 쓰고 두꺼운 우주복으로 연약한 몸을 감춘 인간의 주위에는 초록이라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의 팔에 화살표를 찍 그어 이렇게 썼던 것 같다. '이 옷을 입지 않으면 피부가 타들어감.' 한창 오존층 파괴로 뉴스가 시끄러웠던 시기로 기억한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이 그림들이 인상적인 이유는 열 몇 살 먹은 어린애에게도 미래가 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가져다 준 장밋빛 유토피아와 멸망으로 향하는 디스토피아. 과학이 완벽히 찬란한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인류는 두 세계를 끊임없이 표류하고 있다. 그 그림으로부터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초기 SF의 배경이 되었던 ‘미래’는 어느덧 ‘오늘’이 되었다. 상상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떤 세상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SF로 떠나는 판타지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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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SF2021 : 판타지 오디세이≫(2021.3.23-5.30)는 SF(science fiction) 장르를 기반으로 다양한 담론을 제시하는 동시대 작품들을 소개한다. SF는 과학을 소재로 다루는 소설에서 시작해 점차 여러 매체로 영역을 넓혀온 장르다.

 

이번 전시에서는 SF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이미 있으나 아직 오지 않은 것', 혹은 '이미 현재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존재하므로 판타지의 형태로 말할 수 밖에 없는 것'.

 

전시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수많은 가능성들을 텍스트를 중심으로 느슨하게 엮는다. 이번 전시에서 텍스트가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SF가 태동한 양상을 되짚는 것 같아 인상적이다. 많은 작품이 전시를 위한 커미션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커미션을 통해 네 명의 SF 소설가는 글을 엮거나 썼고, 그 텍스트를 기반으로 작가들은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했다. 다양한 작품들로 전시는 글과 이미지, 소리, 영상이 얽히며 입체적으로 완성된다. 온라인에서는 소설가와 함께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인데 SF가 소설과 영화의 경계 없이 확장되어온 것처럼 전시도 온라인과 오프라인, 소설과 미술의 경계를 허물려는 것 같아 좋았다.

 

경계와 시공간을 초월해 관객들이 어디론가 항해할 수 있는 SF 전시가 되려는 의도는 ‘판타지 오디세이’라는 모험심 넘치는 제목으로 구체화 된다. 관객들은 작품들 사이를 거닐며 현재와 미래, 그 어딘가에서 자유롭게 방랑할 수 있을 것이다.

 

 

 

SF는 인간의 낭만과 두려움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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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성, Living F(r,l)ame, 2021

 

 

전시의 처음을 여는 이 작품들은 앞으로의 항해를 위한 일종의 이정표이다. 어떤 이야기들을 만나게 될지, 그것들을 어떤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유도한다. 전시장에 들어선 우리가 가장 처음으로 마주하는 것은 강렬하게 빛나는 홍채다. 두 눈동자는 크게 뜨인 채 무언가를 목격하고 있다.

 

 

“끊임없이 눈앞에 전개되는 광경에 싫증이 나기는 어려울 겁니다. 나는 새로운 해저 세계일주를 시작하려는 참입니다. 일찍이 어떤 인간도―물론 나와 내 부하들은 빼고―본 적이 없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구는 내 노력을 통해서 그 마지막 비밀을 드러낼 겁니다.”

 

- 쥘 베른, 해저 2만리, 1869.

 

 

소설가 김보영은 SF 연대기 '세계를 바꾸는 문장들'이라는 이름으로 SF의 역사를 돌아보며, 중요한 쉼표를 찍은 문장들을 갈무리했다. ‘장밋빛 전망, 경고, 사회비판, 소외된 자들, 모험, 새로운 세상’이라는 여섯 주제는 스물다섯 개의 소설에서 발췌한 문장으로 실감나게 다가온다. 전시장에는 그 중 여섯 작품이 구현성 작가의 손으로 선명하게 구현되었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는 최첨단 잠수함을 통해 인류에게 숨겨져 있던 바다 밑 세계를 탐험한다는 내용이다. 발췌된 문구에서처럼 과학의 발전은 사람들에게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꾸게 했다. 과학이 장밋빛 전망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미래가 그리 달콤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역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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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성, [Hu{Cyb(Android)org}man], 2021


 

“프랑켄슈타인. 나는 선했고, 내 영혼은 사랑과 박애로 빛났다. 하지만 나는 외롭지 않은가? 참담하게 고독하지 않은가? 내 조물주인 당신이 나를 증오하는데 하물며 내게 아무것도 빚진 바 없는 당신의 동포들은 어떻겠는가?”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1818.

 

 

최초의 SF 소설로 여겨지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인공 생명을 만들어내는 인간과 그가 만들어 낸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지나친 과학적 욕망이 일으키는 비극을 경고한다. 프랑켄슈타인의 욕심으로 만들어진 괴물은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들었음에도 그것이 살아 움직이자 끔찍하게 여기고 도망간다. 태어난 순간부터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괴물은 그에게 복수를 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꿈과 두려움에서 태어난 SF에는 항상 동시대가 가지고 있는 호기심과 공포가 녹아있었다. 괴물의 절규를 구현성 작가는 사람과 기계가 결합한 사이보그처럼 그려낸다. 프랑켄슈타인이 쓰인 1818년,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을 인간을 닮은 인공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은 현재로 와 인공지능을 가진 사이보그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을 닮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인간은 정작 기계가 우리를 닮았다는 사실에 불쾌함을 느낀다. 피조물이 우리를 전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은 시대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존재했다.

 

 

 

'나'를 만드는 부엌



인간이 자신의 신체를 향상시키기 위해 클론을 일상적인 음식으로 섭취한다면 어떨까? 루시 매크래는 아름다운 영상미로 차분하게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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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매크래, Make Your Mak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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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매크래, Make Your Maker, 2012

  

 

냉장고에 푸딩처럼 생긴 음식이 보관되어 있다. 이어지는 영상을 통해서 이것은 여성이 만든 자신의 클론이라는 것이 보여진다. 여성은 베이킹을 하듯이 계량하고 조합하여 만든 물질로 자신의 몸을 닮은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날카로운 것에 의해 잘리고, 조각나고, 부서진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것만이 선별되어 먹기 위해 냉장고에 보관된다. 말랑한 푸딩처럼 생긴 그것을 여성은 천천히 씹는다. 신체를 만드는 부엌과 ‘나’를 섭취하는 식탁.


이 음식들은 아마 섭취함으로써 유전자를 변형시켜 원하는 신체를 만들기 위해 제작되는 것 같다. 인간이 음식을 먹어 피와 살을 만드는 것처럼 음식을 먹어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작품에서는 피부로 보이는 정도의 신체 복제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는 이내 그 이상의 범위를 상상하게 된다. 나에게서 배양한 복제품이 나에게 먹히기 위해 만들어진다는 상상은 그다지 가볍지 않다.

 

작가 루시 매크래는 스스로를 인체 설계자로 소개하는 만큼 인체를 설계하는 것에 큰 관심이 있다. 'Make Your Maker'에서 음식과 유전자, 인간의 몸에 대한 상상을 보여주었다면 그의 또 다른 작품인 '고립 연구소'에서는 지구와 다른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 고립된 장소에서 신체를 훈련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서 ‘신체’란 어떤 의미를 갖게 될 것인지 생각했다. 신체는 태어나기도 하고 만들어지기도 할 것이다. 조립되기도, 결합되기도, 분해되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평범한 인간의 경지를 넘어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신체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우주에서 만나는 창백한 푸른 점의 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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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 태양계, 2021

 

 

수천 년의 세월 동안 한번도 닿아본 적 없음에도 인류는 달에 대해 영원한 노스텔지어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손이 닿을 수 없지만 줄곧 시선이 닿았기 때문일까. 인류는 그곳을 정복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우주선을 쏘았고 달에는 인간의 발자국이 남았다.


전시장 한 벽을 가득 채우는 두 달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꼽는다. FM 99.9에 맞춰진 작은 라디오에서는 낯설지만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감성적이고 몽환적인 멜로디였다. 이 노래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흘러나오는 노래에 두리번거리다 벽면에 쓰인 문구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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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달을 보세요 #REWIND

보이저 2호처럼, 연인은 멀어져간다.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우주로 간다. 그리고 나는 태양계에서 어제의 회전을 계속한다. #FASTFORWARD

당신은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가 채집한 소리를 찾는다 #PAUSE

#PLAYLIST

 

 

양아치 작가는 지구의 소리가 우주에서는 어떻게 맴돌고 있을지 생각했다. 그 소리들은 어쩌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채 텅 빈 우주 곳곳을 맴돌고 있지 않을까하고. 지구를 스쳐가던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에서는 어떻게 들렸을까. 혜성이 그 소리들을 채집했다면? 시간선을 잃어버린 채 헤매고 있을 지구의 소리를 작가는 라디오에 담았다.


매일 요란하고 정신 없이 요동치는 지구의 소리가 혜성에서는 이렇게 아름답게 들리는 것인지. 어딘가 감상에 젖게 하는 멜로디가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낸 소리라고 하니 마음이 울렁거렸다. 거대한 우주의 공간에서 인간은 하찮은 미세먼지일지 모르지만, 미세먼지들의 소음들은 멀리서 들으니 꽤 아름다웠다.

 

 

 

무한한 확장이 초래할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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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영, 세계의 껍질 우주의 뼈, 2021

 

 

세상의 종말이 찾아왔을 때, 지구를 떠나지 못하고 홀로 도태된 최후의 한 명으로 남는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장서영 작가는 최후의 목소리를 빌려 암세포와 마젤란, 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암세포는 '영원히 살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극소한 부위에서 탄생해도 누구도 붙잡을 수 없는 속도로 숙주의 몸을 정복한다. 복제와 한계가 끝이 없는 이 어마어마한 세포는 현대 의학으로도 잘 죽여지지 않는다. 그렇게 암세포는 인간의 몸을 정복하며 다가올 영생을 꿈꾼다.

 

마젤란은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지구가 평평한 것이 아니라 둥글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달에 비친 지구의 둥근 그림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누구도 감히 시도할 수 없었던 세계 일주에 도전했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밝혔다. 마젤란에 의해 지도는 세상의 끝을 잃어버렸다. 그곳은 뾰족한 낭떨어지가 아니라 다시 시작과 만나며 둥근 곡선을 그리는 곳이 되었다.

 

게는 일정 정도 자랄 때마다 탈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린 몸은 껍질 안에 갇힌 채 무럭무럭 자라고, 껍질이 버티지 못할 정도까지 꽉 차면 원래의 몸을 빠져나가 새로운 몸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다. 더 큰 세상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소수의 게만이 탈피에서 살아남아 다음 삶을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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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영, 세계의 껍질 우주의 뼈, 2021

 

 

모두가 죽거나, 떠나고 난 뒤 홀로 남은 목소리는 '무한하게 확장하는 정신에 의해서 끝의 도래가 앞당겨졌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암세포는 숙주를 정복할 수 있지만, 숙주가 정복 당하면 숙주와 함께 죽어야 한다. 인류는 지구를 정복했지만 그렇기에 둥근 감옥에 갇혀버렸다. 그러나 정복욕은 메마르지 않고, 지구 너머를 욕심내며 우주로 나가기 위해 발버둥 친다. 게가 탈피하듯이 목숨을 걸고 도전한다.


영상이 끝날 무렵, 철썩이던 파도가 거꾸로 밀려나가기 시작한다. 종의 마지막 개체로서 유언처럼 남기는 그의 말을 듣다보니 의문이 생긴다. 세상의 종말이 찾아온다면 그건 인간 때문일까? 우주의 크기만큼 빠르게 팽창하는 우리의 욕심을 세상이 버티지 못하고 펑 터져버린 것일까. 언젠가 우주라는 껍질이 인간을 버텨내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 우리는 어디로 탈피할 수 있을까.

 

 

 

미지의 오늘들


 

전시는 내내 SF가 꿈꾸는 판타지가 공허하고 허황된 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상상력을 자양분으로 삼는 이 독특한 세계의 중심에는 언제나 오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SF는 미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과 불안을 다시 써내려간다. 신과 같은 신체를 얻게 되는 인간, 우주에 대한 동경과 공포, AI와 복제인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또 다른 가능한 모든 세계에 대한 호기심. 이것들은 오늘의 우리에게서 기인하는 것이다. 미지의 오늘들로부터.

 

전시장 곳곳 기억의 조각처럼 흩어져 있는 듀나의 '나의 도시에서'를 읽었다. 이 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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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나의 도시에서, 2021

 

 
나는 내 미래를 직접 써야한다. 장르는 SF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가 갖고 있는 건 과거의 파편뿐. 이들을 구성해 의미있는 현재를 재구성하는 건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무의미하다. 내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상상력에 바탕을 둔 허구이다.
 

 

로 시작한다. 여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가짜 우주 속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자신을 뒤쫓는 악당들을 피해 달아나기 위해 도시를 만들기 시작한다. 과거의 것으로 추청되는 기술을 이용해 미래를 향해 발돋움한다. 그 사이에서 현재가 만들어진다. 더 이상 여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채워진 도시. 하늘을 침범하듯 계속 자라나는 높은 건물들, 미로처럼 얽힌 도로와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 여자는 그 속으로 겨우 몸을 숨겨 도망친다.

 

내딛는 발걸음만큼 성큼성큼 뛰던 이 글들은 전시가 끝나는 출구 옆에서, 이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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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나의 도시에서, 2021

 

 

골목 저편에서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와 성난 고함 소리가 들린다. 나는 다시 달아나야 한다.

 

 

쫓기는 이유도 모른채 다시 미래로 달아나는 여자의 모습은 어딘가 인류의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시간에 쫓기듯 더 나은 세상이라 믿으며 미래로 달아났던 인류를. 전시를 쭉 걸어오는 동안 만난 SF적 상상들은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 사이에는 어떤 무궁무진한 상상과 기대, 공포가 있었는지 보여주었다. 오늘은 그 몇천 년의 상상이 쌓이며 만들어진 것이라고.

 

방금 전 종말에 대한 생각을 하다 와서인지 종말이라는 단어에 신경이 곤두선다. 하지만 아직 종말은 멀어보이고 아늑한 지구에서 우리의 생은 계속될 것 같다. 인류가 대를 거듭하여 이어오고 있는 모험은 과연 어떤 결말로 끝날까.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아무도 알 수 있는 이가 없기에 우리의 오디세이는 여상히 이어지고 있는 것일 테다.

 

"나는 다시 달아나야 한다."라는 문장을 다시 읽고 전시장 밖으로 나섰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세상으로 달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처럼 발자국을 찍었다. 듀나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직접 써야한다. 장르는 SF다."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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