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음악]

나를 사랑하고 싶어
글 입력 2021.05.2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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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ana Grande - Pov

 

 


 

 

이해해. 추운 밤 시린 뼈를 달래기 위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날에도, 끓어오르는 머리와 팽창하는 가슴을 안고 뛰쳐나온 더운 오후에도, 새벽달 아래서 그네를 타던 순간에도. 경애는 늘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내 모습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 애가 택한 그 세 글자가 왜 그리 뜨겁게 느껴지던지. 순식간에 얼음이 녹아 턱 끝으로 떨어져 내린다. 더 커다랗고 반짝거리는 문장을 찾고 싶다. 마음을 다 표현하기에 고맙다는 말은 때로 너무 작고 얕고 좁다.

 

 

It's like you got superpowers / Turn my minutes into hours

넌 초능력자 같아, 몇 분도 몇 시간처럼 만들어

You got more than 20-20, babe / Made of glass the way you see through me

넌 시력도 엄청 좋은 것 같아, 유리처럼 나를 꿰뚫어 보잖아

You know me better than I do / Can't seem to keep nothing from you

너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아서, 네 앞에선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어

How you touch my soul from the outside? / Permeate my ego and my pride

어떻게 내 영혼까지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거야? 내 자존감까지 네 사랑이 스며들어

 

 

경애와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너무 짧고 또 너무 길다. 거리를 쏘다니다 시간을 확인해보면 세 시간이 삼 분처럼 지나가 있다. 헤어짐을 고하고 돌아서는 일은 아쉽지만, 함께한 시간을 곱씹어보면 나눈 마음들이 얼마나 많은지. 경애는 일초도 낭비하지 않고 내 시간을 꽉꽉 채운다. 우린 늘 말이 지나치게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넘치지. 오늘을 기념하고 과거를 회상하고 내일을 기약한다. 서로가 없는 상황은 영원히 성립 불가능한 조건으로 취급한다. 매번 미뤄둔 숙제를 하듯 서로에게 홀로 겪었던 일들을 낱낱이 고한다. 나는 이런 일이 있었는데, 너는 어땠어. 아주 평범한 말들이 부단히 오간다. 그러나 이 패턴이 계속 반복되어도 경애와의 시간은 절대 지루해지지 않는 것이 경이롭다. 노래 가사처럼 사실 경애는 초능력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익숙한 경애가 매일 새롭다.

 

경애는 나를 잘 안다. 함께한 세월의 문제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이 많은 탓이다. 표정만 봐도 마음을 손쉽게 읽어낸다. 가끔은 감추고 싶은 마음도 들켜버려 놀림당하곤 하지만, 나 스스로 알아차리기도 전에 기분을 읽고 살펴주는 것이 내심 흐뭇하다. 그런 친구를 곁에 둔 나 자신이 좋아지기까지 한다. 경애는 늘 내 상황을 섬세하게 헤아려준다. 그 시선은 너무 정확히 나를 해부하고 있어서, 때로는 부끄럽기도 가끔은 제 발 저려 아프기도 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성이 신기하여 감탄하면 겸연쩍은 얼굴로 많이 봤으니 아는 거라고 대꾸해온다. 과하게 다정함을 쏟아주곤 객관적인 척 연기를 한다. 애정이 없으면 결코 알지 못할 것들을 줄줄이 읊어 놓고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 우스웠지만 늘 모른 척하며 넘어가 준다.

 

 

I'm gеtting used to receiving / Still gеtting good at not leaving

사랑받는 것에는 적응 중이지만, 아직 과거를 떨쳐버리진 못했어

I'ma love you even though I'm scared / Learnin' to be grateful for myself 

하지만 두렵더라도 널 사랑할거야, 나 자신에게 감사하는 법을 배우면서

You love my lips 'cause they say the / Things we've always been afraid of

우리가 두려워하는 말들을 뱉는 내 입술까지도 너는 사랑해줘

I can feel it startin' to subside / Learnin' to believe in what is mine

안정적인 삶을 되찾고 있음을 느껴, 내 것을 믿는 법을 배우면서

 

 

싸울 때도 있었다. 미워서가 아니라 좋아해서 치졸하게 성을 내곤 했다. 경애는 싸울 때 유독 어른스럽다. 상대가 상처 받을까 봐 화를 잘 표출하지 않는다. 마음 구석에 불순물을 몰아넣고 휘발되길 기다린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나는 경애의 인내심과 기저의 애정을 곱씹어보며 내가 얼마나 운 좋은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 애가 걷는 흔적마다 배울 점이 남는다. 서운함을 애정 어린 이해로 덮어버리는 바다 같은 경애. 밀물의 하얀 포말처럼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경애. 착한 내 친구.

 

유독 많이 다투었던 스물하나 늦은 봄밤에는 약속을 하나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가 첫 번째라는 것을 잊지 말자. 서운하거나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겨도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면 확신하지 말자. 소란했던 기숙사 한가운데서 매듭을 지었던 인생 유일무이한 맹세. 당장 재생할 수 있을 만큼 선명한 화소로 기억하고 있다. 긴 시간 연락하지 않을 때도 가까이에서 경애가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나의 영역 안에 기꺼이 상주해줄 존재가 있다는 것은 표류하는 날들을 지탱해줄 중심점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핀란드로 떠나기 전 부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겨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돌아오면 경애가 미국으로 떠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짧은 여행 내내 아쉽다, 또 언제 보냐 그 말만 반복하다 결국 경애를 바래다주는 터미널에서 울었다. 경애는 씩씩하게 참았다.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쳐다봤다. 스물이 된 이후로 밖에서 그렇게 훌쩍거린 건 처음이었다. 그래도 경애 앞에선 하나도 부끄럽지가 않았다. 텅 빈 터미널을 떠나지 못하고 하염없이 몇 년 뒤를 그려봤었다. 문득 절친이라는 말이 우리 사이를 지나치게 축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복잡한 나의 우정을 표현할 단어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경애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입에서 굴려지는 동사의 발음이 제법 이름같이 들렸다. 경애.

 

 

I wanna love me / The way that you love me 

나를 사랑하고 싶어,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Ooh, for all of my pretty / And all of my ugly too

내 예쁜 모습부터 못난 부분까지도

I'd love to see me from your point of view

네가 날 바라보듯이 나를 바라보고 싶어

I wanna trust me / The way that you trust me

나를 믿고 싶어, 네가 나를 믿어주는 것처럼

Ooh, 'cause nobody ever loved me like you do

너처럼 날 사랑해준 사람은 없었거든

I'd love to see me from your point of view

네가 날 바라보듯이 나를 바라보고 싶어

 

 

몇 번을 넘어지고 나서부터 관계의 끝을 상상하는 좋지 않은 버릇이 생겼다. 사람에게 받는 상처에는 면역이 생기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는 것 같아 자신을 자주 죽였고, 매번 상복을 입었다. 그래서 친구 사이가 언제까지고 좋을 수만은 없다는 회의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편이다. 갑자기 사이가 틀어지게 되면, 상대가 내 존재를 견디기 힘들다고 하면 어떡하나 두려운 마음에 미리 방어기제를 세워놓는 것이다. 설령 그런 날이 와도 마음이 덜 다칠 수 있도록.

 

그러나 경애를 떠올리면 한결같은 애정이 유지되는 사이가 있다고 믿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한 신뢰와 무한한 애정을 부어주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영원은 아닐지라도 평생을 가는 마음이 있다고 직접 증명하는 사람. 내 무너짐을 나보다 더 비통해하는 이상한 애. 자책하는 얼굴에 대고 ‘네가 좋은 사람인 이유 100가지’를 읊어주는 친구.

 

경애는 내 상복을 갈아입히고 제 옷을 벗어준다. 외로이 헤매는 걸음의 동행이 되어준다. 급기야는 옆에 앉아 같이 울어준다. 그래서 반복 학습에 넘어가는 학생처럼,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그 무수한 말을 믿고 싶어졌다. 결국은 믿게 되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지금 나를 계속 살게 한다. 어린왕자에게 길들여진 여우처럼 경애에게 천천히 길들었음을 느낀다. 너의 애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도 너를 길들였을까?

 

팔십대에도 함께하자는 약속을 믿는다. 하지만 지금의 믿음이 치기 어린 이십대의 경솔함으로 남는다고 해도, 나는 경애 없이도 잘 살 것이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경애가 나를 그만큼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경애에게 배운 것—상실을 딛고 삶을 다시 꾸려가는 법은 살갗을 뚫고 깊숙이 새겨졌다. 주술이라도 걸린 것처럼, 기실은 유약한 나를 강하다 불러준 친구 덕분에 정말 강해지고 있다. 그 애의 시선으로 나를 보는 연습을 부단히 하고 있는 것이다. 경애가 영구히 빌려준 어깨에 기대며, 너를 잃어도 이전처럼 난파당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뇌까린다. 폭죽처럼 흩어지는 경애와의 추억들을 눈을 감은 채로 채집해본다.

 

부산 버스터미널에서 나를 달래던 경애, 바나나를 싫어하는 경애, 노래를 잘 부르는 경애, 손편지를 읽다가 울던 경애, 나를 짝꿍이라 부르는 경애, 앞머리가 빽빽하던 어린 날의 경애, 언제나 느린 속도로 밥을 먹는 경애, 네가 제일 멋지다고 나를 추켜세우던 경애, 울면 눈이 잘 붓는 경애, 나 대신 가족들에게 꽃을 선물한 경애, 간지럼을 태우며 팔을 엉겨오던 경애, 퍼붓는 잔소리를 들으며 웃던 경애, 내가 선물한 목걸이를 몇 년째 걸고 다니는 경애, 한 상 가득 밥을 지어주던 경애, 내가 추천한 노래를 좋아하는 경애, 한밤중에 기차를 타고 달려와 이름을 불러주던 경애, 나와 통화하며 깔깔대는 경애, 운전석에 나를 태우던 경애, 짙은 사투리를 쓰는 경애, 나를 갈색에 비유했던 경애, 광화문 한가운데서 내 사진을 찍던 경애, 그리피스의 별을 등지고 뛰어다니던 경애, 나보다 열흘 먼저 태어난 경애, 꽃다발을 안겨주던 경애, 나를 뮤즈라고 부르던 경애, 기숙사에서 작은 손으로 기타를 치던 경애, 나를 보러 부산으로 오는 경애, 나의 용기가 되어준 경애.

 

크고 작고 하얗고 까무잡잡한 우리 경애.

 

나는 그들을 경애라고 부른다.


경애하는 나의 경애들에게 이 글과 노래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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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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