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림 같은 영화, 영화 같은 그림 -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영화의 순간들을 담은 맥스 달튼의 캔버스
글 입력 2021.05.1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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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모두 일을 나가시는 집안의 외동딸이었던 나는,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는 평일 혹은 방학에 친구들과 만나지 않으면 늘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는 것이 질려갈 때쯤 이렇게 무료하게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우연히 케이블 TV 영화 채널에서 틀어주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외국 드라마들을 접하게 되었다.


<스타트렉>,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시리즈 등의 영화와 <가십걸>, <글리>, 시리즈 등의 드라마를 섭렵했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유로운 시기에 영화, 드라마 시리즈를 정주행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 정도로 다양한 영상물을 접해왔다.


그리하여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이라는 전시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어떤 전시보다 공감하고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영화의 순간들을 화폭에 옮겨내고 모아 전시까지 열 정도라면, 영화에 대해 작가가 가진 엄청난 애정과 관심이 꾹꾹 눌러 담겼을 것이라고 단번에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영화 덕후로서 맥스 달튼의 열정을 전시를 통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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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카테고리로 나눠진 전시를 둘러보면, 영화광인 사람이라면 달튼에게서 공감과 유대감을 느낄 것이고, 영화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작가의 끓어넘치는 애정에 전염되어 그 영화를 찾아보고 싶어지는 경험을 할 것이라고 의심치 않는다.

 

영화광인 나는 전시를 둘러보며 머릿속에 떠올랐던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보기로 결심했다.

 

전시회에 입장하기 전,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지니’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용권을 제공한다. 전시 작품 옆에 배치된 큐알 코드를 통해 지니 사이트를 방문하면, 영화의 ost와 주제가를 바로 들을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며 작품을 찬찬히 살펴본다면 누구보다 생생하게 작품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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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우주적 상상력'에서는 SF 영화 속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

 

과거에 가졌던 꿈이 떠올랐다. 한때, 우주비행사를 꿈꿨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우리나라 최초로 우주를 비행한 이소연 씨의 기사가 쏟아졌고,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나로호가 3번째 시도만에 발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워온 데에는 SF 영화가 기여한 바가 컸다. <스타트렉>을 보며 우주를 비행하면서 엔터프라이즈호를 이끄는 함장 ‘제임스 커크’가 되고 싶었고, 타디스를 타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외계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닥터 후>의 닥터가 되고 싶었다.

 

이후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 등 우주의 광활함으로 인한 공포를 선사하는 영화를 만나고 난 다음 그 꿈을 자연스레 접게 되었지만, 영화 안에 등장하는 우주에 대한 동경은 쉬이 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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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영화를 보고 자란 맥스 달튼은 영화 속 순간을 캔버스 위에 옮겨냈다. 우리 중 대다수는 우주를 사진으로만 접할 뿐이고, 그리하여 우주의 이미지는 그 어떤 공간보다 미지수에 가깝다.

 

맥스 달튼은 그 미지수 위에 상상을 접목시킨 <스타워즈>, <스타트렉>,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같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우주선과 우주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우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1부의 전시를 눈여겨보는 것을 추천한다.

 

입장 시 제공되는 3D 안경을 통해 바라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장면은 마치 우주를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통해 황홀감을 선사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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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우리가 사랑한 영화의 순간들'은 달튼이 사랑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들의 순간을 모아두었다. 로맨스 영화와 스릴러 영화, 액션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화폭에 옮긴 작품들을 보며 영화를 볼 때 느꼈던 감정과 쾌감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영화 채널에서 <초콜릿 천국>을 본 적이 있다. 배우 조니 뎁이 윌리 웡카를 연기한 팀 버튼 감독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전에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멜 스튜어트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통통 튀고 세련된 팀 버튼 감독의 영화보다 어딘가 기괴하고 엉성한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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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달튼은 영화 속 등장하는 초콜릿 공장 속의 공간들을 하나의 건축 도면처럼 구성하였다. 아우구스투스가 빠지는 초콜릿 강물, 바이올렛이 풍선껌처럼 부풀어 오르는 껌 공장 등 환상적인 공간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옮겨내 영화 전체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영화를 보며 초콜릿 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황금 티켓을 가지고 싶어 미국에 사는 고모에게서 영화 속 나오는 초콜릿 ‘웡카 바’을 보내달라고 떼쓰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나와 같이 가요. 그럼 당신은 순수한 상상의 세계에 있게 돼요.”라는 문구처럼, 달튼의 그림과 함께 누구보다 순수했던 시간으로 돌아가는 듯한 노스텔지어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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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을 오마주한 <먼저 할 일이 있다> (First Thing First)는 영화의 분위기와는 달리, 브라이드의 피투성이 얼굴만 제외하면 험악하긴 하지만 결혼을 축하해 주러 온 하객들과 신랑, 신부가 단란히 사진을 찍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 모습은 영화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지만, 달튼은 영화의 첫 시작이 되는 결혼식 총격 사건의 배경인 예배당을 배경으로, 브라이드, 빌, 데들리 바이퍼스의 멤버들, 암살단 크레이지 88인 등을 배치해 아이러니한 평화로움을 자아낸다.

 

이렇게 다채롭고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B급 액션물의 정수를 보여주는 <킬 빌>을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날 한 번쯤 찾아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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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리고 노스텔지어'는 맥스 달튼이 웨스 앤더슨 감독에게 선사하는 선물과도 같은 작품들이 펼쳐져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콘셉트의 전시 공간을 넘어, <로얄 테넌바움>, <문라이즈 킹덤> 등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선사하는 웨스 앤더슨 감독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그림으로 담아냈다.

 

웨스 앤더스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이나 배경, 이미지 등이 마치 움직이는 그림처럼 느껴졌을 때가 많았는데, 일러스트로 옮긴 웨스 앤더슨 영화 속 장면들을 보니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예상할 수 있었다.

 

완벽한 대칭과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비비드 한 색채, 용모가 뚜렷한 인물들까지, 그림과 영화 사이를 넘나드는 감독의 연출을 더욱 섬세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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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맥스의 고유한 세계'와 '5부: 사운드 오브 뮤직'을 통해서는, 영화 일러스트레이터 이외에도 맥스가 예술가로서 지니는 고유한 예술 세계를 느낄 수 있다.


외톨이 타자기, 외톨이 공중전화기, 소리 지르는 요리사 등의 짧은 동화를 만들어 일러스트와 함께 펴낸 맥스 달튼은 순수하고 환상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처럼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내 아이들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동화 일러스트를 창조하는 작업을 해왔다.

 

액자와 함께 걸려있는 수십 개의 일러스트와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맞은편에는 달튼에게 영감을 준 거장들의 작업 모습을 달튼의 화풍으로 옮겨 놓은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달튼의 포근하고 따뜻한 그림체로 옮겨 낸 화가들의 모습에서 그들을 향한 달튼의 동경과 애정을 담뿍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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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에서는 달튼이 사랑하는 음악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어렸을 적 음악가를 꿈꾼 달튼은 화가가 되고 난 후에도 작업을 하며 음악을 빼놓지 않을 정도로 음악 애호가라고 한다.

 

레코드 판을 본떠 그림을 그리기도,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 컬렉션을 모두 그려내기도 하면서 음악 마니아다운 면모를 드러낸다. 전시장 구석에 비치되어 있는 LP 감상 테이블에 앉아 음악을 들으면, 마치 달튼의 작업실에 와 있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LP나 초상화를 찾는다면 더더욱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가지고 돌아갈 것이다. 기타리스트들의 모습을 모아 그린 <기타 레슨>과 보컬리스트들을 그린 <스토리텔러> 등을 천천히 살펴보며 내가 사랑하는 뮤지션의 모습을 찾아보자. 나는 2열 5번째에서 엄청나게 애정 하는 ‘데이비드 보위’의 그림을 발견하고 (내적으로) 환호했다.


5개의 카테고리로 구성된 맥스 달튼의 전시를 둘러보고 나오면, 마치 영화관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환상의 공간을 여행하고 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캔버스를 통해 영화 속 열정적 사랑을 느낄 수도, 질주하는 액션의 쾌감을 즐길 수도, 환상적인 판타지 세계를 여행할 수도 있는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전시를 통해 다른 전시에서는 느껴볼 수 없었던 색다른 경험을 해보기를 추천한다.

 

 

[조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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