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진정한 공포는 설명하지 않는다 - 곤지암 [영화]

글 입력 2021.05.16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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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친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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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사의 개연성과 공포의 완성도는 서로 맞아떨어지기가 쉽지 않다.


개연성이 빼어난 공포 영화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 안의 공포가 논리적으로 설명되었다는 뜻이고, 그만큼의 이해가 이뤄졌다는 뜻일 테다.

 

그러나 사실 이해는 공포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감정이다. 이해가 가능한 존재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위협이나 위기감을 느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공포만큼은 더 이상 느낄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알고 있다. 설명이 없어서 이해도 할 수 없는 서사라는 게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포 영화를 질색하는 이유도 바로 그 불편함 때문이라는 것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불편하지 않으면 공포가 아니니까. 진정한 공포는 설명하지도, 설명되지도 않는다.

 

 

 

곤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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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곤지암>은 바로 그러한 공포의 맥락을 오랜만에 아주 제대로 이해한 공포 영화다.


<곤지암>의 서사는 극히 진부한 편이다. 누가 봐도 음침하기 짝이 없는 폐건물에 괴담의 실체를 쫓는 마니아틱한 사람들이 팀을 짜서 들어갔다가 초월적인 존재에게 농락당하고 끝내 끔찍한 최후를 맞게 되는 이야기.


공포라는 장르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도 머릿속을 스치는 유사작이 적지 않다. 관객들에게 나름 신선하게 다가왔을 ‘파운드 풋티지’도 국내에서나 신선한 것일 뿐,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파격적인 성공이 낳은 공산품들에 의해 클리셰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곤지암>에서 그런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서사의 진부함, 기법의 유사성. 그런 것들은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밝은 햇빛 아래 이성을 되찾은 다음에나 생각날 트집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곤지암>은 보고 난 후에 무언가를 남겨주기 위한 감상주의 영화가 아니라, 보고 있는 그 순간에만 오롯이 집중하여 관객들의 감각을 철저히 장악하는 극체험주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곤지암 정신병원’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그 문은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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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이 선정한 미스터리 스팟’ 중 하나라는 현실 속의 인식이 영화로까지 이어지면서 신빙성이 부여되는 <곤지암>의 공간은 인물들의 시점에 동화된 관객들의 감각을 극도의 폐쇄감 속으로 점차 깊숙하게 끌어들인다.


공간을 탐색하는 건 1인칭 카메라를 장비한 ‘공포 체험단’ 멤버들의 시점숏이지만, 그들을 몰아붙이는 괴기 현상은 늘 그 시야에 포착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은밀하게 다가온다. 벽면에 가득한 정체불명의 낙서와 흔적은 공간에 배어있는 음울한 역사를 짐작하게만 할 뿐, 그것이 이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이해시켜줄 만한 단서가 되어주진 못한다.


그렇게 무지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결국 실체를 드러낸 공포와 맞닥뜨릴 때쯤, 그들…아니, 우리는 깨닫게 된다. 우리가 곤지암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곤지암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곤지암’ 그 자체였다는 것을.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때늦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자 하지만, 곤지암은 묵묵히 문을 닫아건다. 들어오기 위해 문을 열었던 것은 그들의 의지였지만, 나가지 못하게 문을 닫는 것은 공간의 의지다.


비명으로 애원해도 대답해주지 않는 공간을 설득할 방법은 없다. 갇히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애초에 문을 열지 않는 것뿐이었다. 한 번 열렸다가 다시 닫힌 이상, 그 문은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공포에는 이해도, 설명도, 타협도 없는 법이므로.

 

 

[임현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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