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름답게 바라보기

글 입력 2021.05.1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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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힘든 사람 없고, 아픈 사람 없을 텐데 내 이야기에 그다지 관심 없는, 알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에게 나의 상황과 감정을 주입하는 것은 큰 정신적 폭력 아닌가.


행복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 하는데 정말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이에서만 가능한 일인 것 같다. 누군가의 행복에 축하해주지 못하는 사람에겐 부러움, 더 심해지면 슬픔과 분노, 좌절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해주지 못하는 사람에겐 나누어 가진 절반의 슬픔이 그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내가 걷고 있는 이 힘든 길이 처음으로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만 해도 많은 일이 있었는데, 벌에 쏘였을 때 카드로 침을 빼주는 친구가 있어 참 고맙고, 왼발을 다쳐 걷기가 힘든데 운전은 할 수 있어 참 다행이고, 밤샘 작업으로 지친 나에게 커피 한 잔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어쩌면 이 힘듦을 잊기 위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색안경을 낀 것일까? 그렇다면 그 안경을 평생 끼고 살아가고 싶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하나의 큰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일 어떤 부정적인 감정을 놓치게 된다면 이후에 비슷한 일이 있을 때 전과 다를 게 없는 나 자신이 될까 봐 두렵기는 하다.


즉, 아름다워 보이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세상은 어디까지나 나에게만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아닌가? 모두가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우리는 ‘화’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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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를 냄비 근성이라며 비아냥거렸는가? 냄비에 불을 지피면 금방 타오르고, 불을 끄면 금방 식는다. 자신의 감정에 진심이고,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쿨’한 성격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의 모습은 아궁이에 더욱 가까운 것 같다. 각자의 ‘화’를 가둬두고 끊임없이 뗄감을 집어넣는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오늘은 마침 스승의 날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창 사춘기 시절의 나는 한국의 교육에 불만이 많았고, ‘국·영·수’와 전혀 관련 없는 진로를 희망하는데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때이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나에게 “네가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아. 세상이 너한테 맞추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렇다면 너를 세상에 맞추는 편이 낫지 않을까?”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이후 공부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열심히 하려 했고, 그 무엇보다 사춘기 시절 갖고 있던 세상에 대한 분노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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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전환과 넓은 시각을 갖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예술 분야의 일원을 지향하는 내가 항상 키우고 싶은 능력치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예술적 분야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정말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점점 느끼고 있다. 꼭 필요한 ‘화’와 불필요한 ‘화’를 구분할 수 있는 잣대가 되어줄 것이다.


비가 온다. 집안이 너무 습하여 올해 처음으로 에어컨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 에어컨을 틀었던 날이 작년일 텐데, 그때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래에 대한 압박감과 부담감이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종종 미래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힘들 때가 있다. 하루를 보낸 뒤 침대에 누울 때면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라는 희망보다는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는 것에 대해 감사함이 더 크다. 미래에 대한 그 어떤 감정 없이, 그저 하루를 버텨만 가는 내 모습이 가끔은 하루살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누가 하루살이의 삶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살이에게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진심이라는 것이고, 나에게는 지금 이 순간에 진심이라는 것이다. 앞날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을 때 현재에 집중하는 것, 예전에는 미래를 포기하게 된 것만 같아 나 자신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순간의 나의 모습이 미래로 향하는 나의 성장 과정이라 생각하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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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는 지금 이 시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올해 벚꽃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꽃은 내년에도 다시 피겠지만, 사진 하나 남겨두지 않은 것이 현재의 봄날을 평생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미 꽃이 진지 한참 된 벚나무를 바라보며 아쉬움만 토로했었는데, 한번은 벚나무의 처지에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벚나무도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봄날에, 그것도 2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벚꽃을 피우기 위해 나머지 긴 시간 동안 남들이 알아봐 주지 않는 모습으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비록 꽃은 다 졌지만 다시 피울 꽃을 위한 준비를 하는 모습마저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지금 내리고 있는 이 비도 언젠가는 그칠 것이다. 비가 온다고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태양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다. 내 인생의 빛도 가려져서 보이지 않을 뿐,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니 나 자신이 무너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시각은 그렇게 내 인생의 큰 용기가 되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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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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