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작이 두려울 때 듣는 스트레이 키즈의 노래들 [음악]

글 입력 2021.05.1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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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두려움


 

새로운 일을 맡으면 나는 그 미지의 상황에 대한 익숙한 부담감으로 혼자 낑낑댄다. 그리고 그 부담감은 시작 직전에 가장 많이 몰려 있다. 항상 시작이 어렵다. 이놈의 완벽주의 때문이다. 착수하기도 전부터 내 머릿속에는 이미 결과물에 대한 ‘완벽한 그림’이 영사되어 있다. 보고 들은 건 많아서 안목도 높고 욕심도 많다. 그러나 그 머릿속 그림은 허상에 다름없다. 일을 하지 않는 이상 허구의 족쇄일 뿐. 시작을 해야 그것이 진짜 청사진이 되니까.

 

그래도 일은 해야 한다. 마감이 있고, 마감이 있고, 마감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 작업이란 대개 글쓰기이고, 나는 이미 언제까지 어떤 글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폐가 되는 것이 싫고 미루면 미룰수록 괴로움만 가중된다. 나 스스로 기한을 둔 글도 마찬가지다. 머리로는 그걸 다 아는데 새하얀 문서 파일을 대면할 엄두가 유독 안 나는 날이 있다. 뭔가를 구상하는 것부터 두렵다. 도대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두려움을 없애고 작업의 시작을 여는 노래들


 

글감이 손에 바로 착 붙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업 모드로 시동을 거는 시간이 필요하다. 차분한 집중 상태를 조성하는 것이다. 때때로 이 과정에는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좋은 글을 읽을 때도 있고 그림을 볼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직관적인 매체는 음악이다. 나는 대체로 작업 파일을 열기 전에 이삼십 분 가량 멍하니 음악을 듣는다. 음악 속에서 멍 때리다 보면 기분과 태도가 조율된다.

 

그런데 ‘시작하기 유독 힘든 날’은 더 명확한 목적의 선곡이 필요하다. 내게는 이럴 때 정해두고 듣는 노래가 몇 갈래 있다. 주로 가사로 불안을 잠재우거나 동기부여가 톡톡히 되는 곡들이다. 오늘은 그중에서 케이팝 아이돌 스트레이 키즈의 노래 두 곡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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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 키즈 미니앨범 Cle 1: MIROH

 

 

 

1. ‘답은 하나 뭐든 까고 보면 돼’ 〈MIROH


 

나의 ‘시작이 두려울 때 듣는 플레이리스트’ 중에선 가장 최근에 추가된 곡이다. 요즘 엠넷에서 방영 중인 일종의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 <킹덤 레전더리 워>에서 스트레이 키즈(이하 스키즈)의 100초 퍼포먼스로 처음 접했고, 도입부가 재밌길래 원곡을 찾아들었다.

 

‘산을 넘어 산 넘어/ 강을 넘어 강 넘어/ 산을 넘어 산맥 강을 넘어 바다/ 다 넘어가 또 다음.’ 다시 가사만 읽어도 왠지 재미있다.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그래서 화자가 맞이할 ‘다음’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MIROH〉는 꼭 가사를 띄워놓고 듣는 노래다. 가사를 눈으로 귀로 따라가는 동안 짧은 성찰을 지난 마음이 곡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흡수한다.

 

‘힘들지 않아 거친 정글 속에 뛰어든 건 나니까 I’m Ok.’ 이 부분을 듣고 있자면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모든 건 결국 내가 벌인 일이라는 것을…. 지금 내가 시작하기 힘들어하는 일을 하겠다고 한 사람은 결국 나다. 맞아, 누굴 탓해. 게다가 하겠다고 했을 땐 이 일이 재밌어 보였다. 아니면 내가 여기서 배울 무언가가 탐났다. 지금 이 상황은 내 선택이고 내 책임이고 사실은 내가 바라던 시간이지, 하고 잠시 숙연해지려는 찰나 곧 창빈의 시원한 랩이 나와 내 주의를 잡아끈다.


 

처음이라서 방법이 없어 / 처음이라서 당돌해봤어 / 처음이란 게 무기가 됐어 / 처음이라서 다 처음이라서 다

 

  

이 가사를 처음 읽는 순간 머릿속에 꼬마전구가 켜지는 기분이었다. 비단 글쓰기 외에도 처음 해 보는 일에 미지의 두려움을 강하게 느끼는 나였다. 그러나 관점만 바꾸면 그렇게 버겁던 처음도 무기가 된다. 처음이라서 방법이 없으니 오히려 해결책은 단순해진다. 말 그대로 하면 된다. 묵묵히. 세상에는 처음이 아니면 하려고 들지 않을 일도 많고, 처음인 채로 뛰어들어 얻는 새로운 영감과 필요가 있다. 그냥 처음인 거지 해결 못할 상황에 처한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MIROH〉에서 제일 신나는 킬링 파트로 꼽는 이 첫 번째 랩 라인의 마지막 가사는 다음과 같다. ‘답은 하나 뭐든 까고 보면 돼.’ 머릿속에 툭하면 완벽한 그림을 갖고 살아 그것을 재현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맞다. 그냥 시작하면 된다.

 

어쩌면 나는 잘하고 싶은 마음을 넘어 잘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겹겹의 벽을 세우고 자진해서 미로에 갇힌 건 아닐까. 생각의 벽을 녹일 수 없다면 그 벽 위로 뛰어넘어 벽의 윗면을 길로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다. 노래 가사처럼 아예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도 있겠지. 그러나 글쓰기에선 스스로 가로막던 것들조차 훌륭한 재료가 되니까-아니, 사실 이게 없으면 글 쓸 거리도 없다-, 벽의 윗면을 디디며 걷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MIROH〉에서 논하는 것이 꿈 그 자체라면, 나는 이 노래 속에서 창작의 두려움을 벗겨내고 있으니 조금은 결이 다른 소감이 나오나 보다.

 

어쨌든 노래가 끝날 즈음이면 어깨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은 풀리고, 대신 전에 없던 투지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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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계자가 되고 싶다면!’ 〈Back Door〉


 

강렬한 후렴구와 노크 소리, 문이 끼익 열리는 소리 등 효과음 활용이 흥미로운 〈Back Door〉. ‘관계자가 되로 싶다면’이라는 가사는 나도 내가 하고픈 일, 가고픈 곳의 관계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자극했다. 곡 자체의 에너지와 이 한 줄의 가사를 일종의 자극제처럼 소비하며 시작에 대한 두려움을 억지로 끊어내곤 했다. 그러나 거듭된 감상은 〈Back Door〉의 메시지와 시작의 두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여긴 back door / 관계자 외 출입금지 여긴 back door / 관계자 외 출입금지 여긴 back door / 관계자가 되고 싶다면

 

 

나는 이 곡을 뮤직비디오와 함께 감상하길 좋아한다. 현란한 화면 전환 등 영상 연출이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가사와 영상을 합쳐 해석했을 때 노래의 메시지가 더 뚜렷해진다.

 

 

 

 

영상의 메인이 되는 장소는 대형 쇼핑몰의 한가운데. 가끔 이벤트성으로 매대를 늘어놓고 세일 상품을 팔거나 행사나 팝업스토어를 여는 널찍한 공간이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바닥에 온통 레드카펫을 깔아놓았다는 것. ‘관계자 외 출입금지’인 ‘back door’를 열고 밤새 놀아보자는 노래 가사는 이 레드카펫 위에서 벌어지는 강렬한 축제의 이미지를 통해 영상과 연결된다.

 

 

Hey, you wanna come in? / 다 치워 이제 들어가 / 저번 건 입가심 umm / 이젠 본편으로 party (...) 불 끄고 눈 밝혀라 밤새 / 억눌렀던 흥을 끌어모아 방생

 

 

쇼핑몰 로비에서의 장면은 두 가지로 나눠진다. 그림이 걸린 로비를 배경으로 멤버들이 등장하는 장면과 위아래 흰옷을 입은 군중이 멤버들의 퍼포먼스를 지켜보고 파티에 동참하는 장면. 두 장면은 서로 교차해서 나온다.

 

전자에는 현실의 시간이 개입한다. 뮤직비디오 끝으로 갈수록 건물 밖이 밝아져 화면 오른쪽에 점점 빛이 들어오는 것과 검은 양복을 입은 관리자의 등장 등이 시간의 변화를 암시한다. 후자는 그 시공간 위에 상상력을 한 겹 더 올려 만든 가상의 파티로, 멤버들이 레드카펫 위에 우뚝 서 있는 레버를 올릴 때마다 영상은 전자에서 후자로 전환된다.

 

두 가지 장면 모두 ‘개점 전의’ 쇼핑몰 ‘back door’를 열고 들어온 스키즈 멤버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는 점이 동일하다. 따라서 스키즈가 모종의 관계자가 되어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쇼핑몰은 상품의 진열과 판매가 이뤄지는 곳이지만 물건들은 조명되지 않는다. ‘관계자’ 스키즈가 가상의 파티를 찾은 손님(대중)에게 선보이고 싶은 것은 자체 프로듀싱 그룹인 자신들의 춤과 음악이기 때문이다. 쇼핑몰 로비에 팝업 전시의 형태로 회화 작품들이 걸려 있는 것도 허투루 쓰인 장치는 아니다. 스키즈의 음악과 퍼포먼스, 회화 작품은 예술의 의미로 상통한다.

 

스키즈의 초대를 따라 ‘back door’로 이 파티에 들어온 사람들 역시 스키즈 작품과 창작세계의 관계자가 된다. 작품의 준비 과정과 그 창작세계를 특별히 아끼고 궁금해하면 할수록, 작품 혹은 창작자와의 소통이 이뤄지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산자와 소비자, 창작자와 향유자가 모두 관계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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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밤샘으로 기력 떨어진 대학생이 레드불을 찾듯 두려움으로 꺼진 의욕을 살려내는 목적으로 이 노래를 들었으나 점점 〈Back Door〉에서 느껴지는 작업의 즐거움에 주목하게 되었다. 스키즈가 자신들의 퍼포먼스를 대중에게 내어놓는 방식이 파티로의 초대라면, 나도 좀 더 즐기는 마음으로 작업해도 되지 않을까.

 

시작을 두려워하는 건 잘하고 싶기 때문이고, 잘하기 위해선 무서워해선 안 된다. 경직된 어깨와 차가워진 손으로는 뭔가를 매끄럽게 하기 힘들다. 무서움은 골몰할수록 커지니 대안으로 다른 것에 집중할 뿐인데, 기왕이면 '작업을 시작하면 얻게 되는 즐거움'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떤 일을 시작해 보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었을 지식과 친해질 일 없었을 사람들에 대해 되새겨 본다.

 

결과물을 내놓는 것은 늘 조심스럽고 긴장된다. 그러나 용기를 내지 않으면 나는 세상과, 내 글의 독자들과 관계 맺는 글쟁이가 될 수 없다. 그러니 만드는 일의 시작부터 겁을 집어먹기엔 시간도 체력도 아깝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럴 것이다.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내 일에 스스로 내밀한 관계자가 되는 기쁨이다. 글쓰기로 친다면 글 한 편 완결 지을 때마다 내가 갖고 있었으나 형체를 모르던 생각을 구슬처럼 모으는 게 즐겁다.

 

설레는 마음으로 쓴 글이 한 편 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글의 모티프가 되었던 특정 소재와 마주치면 글의 기획 과정에서 받았던 영감이나 그 글을 쓸 때 느꼈던 감정들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행복해하곤 한다. 이건 정말로 시작하지 않았다면 못 가졌을 경험이다.

 

그러니 두려움을 의식하여 억지로 축소하지도 누르지도 말고 그저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에 시선을 맞추기로 했다. 그걸 위해 뒤따르는 고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러나 잘하지 못할까 무서워하지는 말자.

 

‘관계자가 되고 싶다면’이라는 가사는 이제 전과 다르게 다가온다. 앞으로 시작이 두려워질 때면 나는 〈Back Door〉의 다른 가사를 한 번 더 떠올리기로 했다.

 

 

손잡이를 돌려 내가 원하던 걸 다 볼래 / 이 문 앞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 / 내 목소리가 터지도록 외쳐 / 멈칫할 시간 따윈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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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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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나**
    • 넘 글을 잘 쓰셔서 정독했습니다. 스키즈 음악의 에너지와 매력을 이렇게 글로 풀어주시니 새롭네요. 더욱 힘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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