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카카오톡 메세지 말고, 손편지 [사람]

오래된 친구의 편지
글 입력 2021.05.1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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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도구를 통해 공동체의 영향력을 넓히고 힘을 키워왔다. 그것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인류 탄생 후 끊임없이 기술에 의해 도구는 발전해 왔다.

 

한편 소통의 도구는 머나먼 시대까지 거슬러 가면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돌에서 종이, 종이에서 전자 기기로의 발전. 돌에다가 글자와 글씨를 끄적이는 인류는 이윽고 종이를 만들어 수많은 정보와 책자를 보급하였고, 더 나아가 전자 기기를 발명해 전세계의 모든 네트워크를 연결망으로 이었다.

 

우린 더 이상 돌을 소통의 매개체로 쓰지 않는다. 그런데 종이만은 포기하지 못한다. 분명 종이는 위에서 언급한 돌 그리고 전자 기기와는 배타적인, 특별한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이를 테면 종이는 태우지 않는 이상 인간 앞에 '영원성'을 품고 있는 기록이 되지 않은가. 또한 종이에 한 땀 한 땀 쓴 글씨를 바라보면, 글쓴이(나 또는 타인)의 마음과 순간이 '시각'으로 변환되는 놀라움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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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종이를 좋아한다. 그런 측면에서 핑계랍시고 아직도 아이패드를 구매하지 않았다. 최근 새로운 일을 시작하여 업무 목적으로 아이패드를 살 예정이지만, 지금까지 또래 대학생 중에 상당수가 그 기기를 구매하고 애용하는걸 보면 난 분명 고집있는 아이다.

 

난 그저 연필 또는 샤프로 톡톡톡 소리를 내며 글씨를 쓰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내 글씨에 완벽한 자부심과 애정을 느낀 지는 아직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종이를 포기하지 못했다. 하여 나는 아트인사이트를 비롯하여 브런치나 블로그 등 온라인 상에서도 글을 쓰지만, 반드시 특별한 날에는 실물 '일기장'에 장인의 정신으로 글을 쓰곤 한다.

 

그렇다면 마음을 전하는 가장 역사적이고 오래된 매체, 편지는 어떻게 쓰는가. 아무리 종이와 샤프를 좋아하는 나지만 당연히 SNS 시대에 걸맞게 산다. 친구나 지인의 생일이 되면 간단하게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이용해 성의를 보이고 메세지로 작게나마 내 마음을 표한다.

 

그런데 소중한 사람일수록 나는 SNS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곤 했다. 이 사람에게는 정성들여 편지를 써야할 것 같은데, 바쁘다는 이유로 또는 생일인 것을 오늘 알았다는 이유로 나의 정성을 짧은 메세지로 줄여버린 기분. 사실 기분이 아니라 그게 사실이다.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내어 연필로 일기를 쓰지만, 타인을 위해 꼬박 시간을 내어 편지를 끄적인지는 오래되었다.

 

 


카카오톡 메세지 말고,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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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친구에게서 내 마음을 무지 설레게 하는 소식이 도착했다. 친구 이름은 '화이트'로 이야기 하겠다. 친구는 1/2보다 더 긴 시간 우정을 쌓아온 동반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를 동지라고 부른다. 화이트는 과외도 하나 접은 김에 파일럿으로 실시중이던 사업 하나를 확장해본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름은 <월간 화이트>이고 내용은 화이트가 대략 1달에 1번 애정하는 사람의 자택 주소로 손편지와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내준다는 것이었다. 화이트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말을 하나 툭 던졌다. '일단 내가 일반 대중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는, 특수한 주체가 이 글을 본다는 걸 의식하는 상태에서 쓸 것..'

 

그리고 엊그제 화이트에게서 온 손편지가 도착했다. 외출하려는 찰나, 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와 "언니, 편지왔던데?"하며 건네주었다. 목 빠지게 기다렸는데 '아싸!'를 부르며 룰루랄라 편지를 들고 외출했다. 나는 궁금한 것은 절대 못 참는 성격이라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얼른 편지 봉투를 뜯어보았다. 편지가 봉투에 너무 꽉 끼어있어 힘을 주고 손으로 빼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봉투를 살짝 찢었고, 우여곡절 끝에 화이트의 손편지를 손에 쥐게 되었다.

 

약속한 대로 폴라로이드 사진도 함께 있었다. 같은 풍경의 다른 모습을 담은 두 장의 사진을 통해 화이트는 관점을 전환하는 의미를 소개하고 한 편의 영화를 추천해 주었다. 편지를 통해서 화이트는 나에 대해서 품고 있던 생각을 짧고 간결하면서도 허심탄회하게 풀어내었다. 무엇보다 나는 10년 전에도 받아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고급스럽고 어른스러워진 화이트의 글씨를 보며 우리를 스쳐간 세월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편지를 통해서 나와 '현재'와 '미래'를 공유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인생의 동지로서 화이트가 나와 함께 나누고 싶은 것들이 다름 아닌 '지금'과 '다가올 순간'들이라는 것이, 참으로 설렜다.

 

화이트가 글씨를 또박또박 써 내려간 것보다 내가 글을 읽는 속도가 훨씬 빨라서, 편지를 한 번만 읽기에 미안했다. 나 또한 연필을 잡고 종이에 글씨를 끄적일때 얼마간의 정성과 심혈을 기울이는 노력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으니까.(이런 측면에서 나와 화이트는 정말로 동지다.) 그래서 같은 자리에서 두 번, 세 번 네 번 편지를 읽었다. 그러고나서 그 날 하루는 정말이지 완벽하게 산뜻하고 기분 좋은 날이었다. 이상하리만치 모든 것이 기쁨과 감사함으로 돌아오는 날이었고, 그래서 더욱더 손편지를 보내준 화이트가 생각나는 날이었다. 나도 '구독료'로 곧 정성들여 답장을 쓰려고 한다.

 

그녀가 말한대로 나는 앞으로도 1달에 약 1번 정도 화이트의 손편지를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이 특별한 이벤트가 SNS 시대에서 너무나도 반갑고, 그래서 화이트에게 더더욱 고맙다. 읽는 시간은 길어도 3분을 넘기지 않을테지만 여러 번 읽고 또다시 그 글을 마음에서 곱씹다 보면 결국 손편지는 영원히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디 사라지지 않고 내 곁에 두어서,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마저도 이 편지는 읽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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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얼마 전에는 연인과 함께 맞이하는 특별한 기념일이 있었다. 그때 나의 연인 또한 예쁜 마음과 정성으로 손편지를 써주었다. 평소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는데도 편지를 통해 다시 정갈하게 쓰여진 마음을 받으니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왔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의 생일을 맞이하여서 다시 편지를 끄적였다. 마음이 오가는 매개체는 다양하지만, 화려한 포장지도 없이 마음의 본질을 가장 잘 전달하는 것은 편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편지를 받고 좋아했던 것처럼, 또 쓰면서 즐거웠던 것처럼 그 또한 편지를 받고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이란 다름아니라 '진심'을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진심을 손으로 만져보고, 써보고, 언제까지나 느낄 수 있는 것. 그런 의미에서 SNS 시대 속 손편지의 의미는 사막 속 오아시스와 같은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이 좋다. 카카오톡 메세지 말고,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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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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