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오래된 스승님 [사람]

글 입력 2021.05.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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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홉 살은, 당신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눈을 반짝이며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학창 시절, 그것도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채 2년도 지나지 않은 때라니. 아직 ‘10대’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이전의 시간을 어떻게 온전히 떠올릴 수 있을까.


그러나 이미 15년도 전의 이 시기는 나에게 있어 가장 생생하며, 어린 시절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추억들이 가장 많은 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위기철의 <아홉 살 인생(1991)>을 우연히도 진짜 그 나이에 접했기 때문이라거나, 내년이면 나이의 자릿수가 바뀐다는 왠지 모를 설렘을 안고 살았던 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앞의 이유들도 이 시기가 나에게 ‘아름다운 아홉 살’로 기억되는 데 큰 기여를 하긴 했지만.


나는 이 해, 내 인생의 가장 큰 스승님을 만났다.

당시의 나는 대학생도, 고등학생도, 중학생도 아닌 무려 초등학생, 그것도 고작 2학년.

그리고 아홉 살이었다.

 

 


1. 개구리 왕눈이 선생님


 

2005년 3월, 2학년 4반 교실.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있던 30명의 2학년 꼬마들 앞에 키가 크고, 안경을 쓰신 선생님이 들어왔다. 초등학교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남자 선생님이었다. 어린이집, 유치원, 그리고 초등학교까지. 9년 인생을 살면서 본 남자 어른이 아빠 외에 겨우 태권도 사범님 정도였던 나는, 앞으로 일 년을 이 선생님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덜컥 겁을 먹었다.


그러나 어쩐지 날카롭고 예민해보였던 낯선 남자 선생님은, 칠판에 성함을 적은 후 다짜고짜 본인을 ‘개구리 왕눈이 선생님’이라 소개하셨다. 긴장이 감돌았던 교실에 별안간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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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일기에 직접 그려주신 본인의 모습과 코멘트

 

 

 

2. 학급문고 만들기


 

당시에는 각 반에 자그마한 ‘학급문고’ 칸이 있었다. 이 책들의 출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대부분이 상당히 낡은 책들이었던 것으로 봤을 때 작년, 재작년, 또 그 전에 해당 교실에 있었던 반의 학급문고들을 그대로 이어 써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일주일쯤이나 되었을까. 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불러 앉혀놓고, ‘새로운 학급문고 꾸리기’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일원으로서의 아이들 각자의 역할을 비장하게 부여해주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임무는 각자 책 두 권씩을 준비해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 어떤 책을 준비해오라고 하실까, 귀를 쫑긋 세우고 선생님 앞에 앉아 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경주(개명 전 이름)에게는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어려운 책을 줄 거야. 경주가 쓴 일기를 한 주 동안 읽어보니 그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다만 책을 학급 문고로 가져오기 전에 꼭 집에서 먼저 읽어보고, 다 읽은 후에는 이름표를 붙여서 가지고 오면 돼. 할 수 있겠지?“

 


벌써 선생님께 좋은 인상을 남겼구나, 하는 기쁨과 함께 꿈이 큰 어린이였던 나의 도전정신에 자극을 주는 말씀이었다. 그 길로 나는 엄마에게 부탁해 잽싸게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책들을 구입하고, 읽었으며, 이름표를 붙여 자랑스럽게 학급문고로 책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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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가 지정받았던 책들.

유은실의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2005)>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불꽃머리 프리데리케(2002)>

 

 

그렇게 30명의 아이들의 이름표가 붙은 약 60권의 책들은, 서로의 손을 돌고 돈 끝에 놀랍게도 어느 것 하나 훼손되지 않은 채 1년 후 이제는 어엿한 3학년이 된 아이들의 손에 들려 다시 각자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3. 토요일 2교시의 라면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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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의 <학교에 간 개돌이(1999)>

 

 

김옥 작가의 동화인 <학교에 간 개돌이>에서는 개돌이의 주인인 주인공 준우가 학교에서 컵라면 파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역시 학급문고에 있었던 누군가가 가져온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막연히 학교에서 친구들과 컵라면 파티를 하는 상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이었다. 몸에 나쁜 인스턴트식품이라며 집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 먹기 어려운 라면을, 학교에서?


그러나 어느 날, 선생님은 그 상상, 아니 공상 같던 장면을 기어이 현실로 이끌어내시고야 말았다. 이 주 후 토요일 2교시(토요일에도 등교를 하던 시기였다), 우리 반도 컵라면 파티를 한다는 것이었다. <학교에 간 개돌이>처럼!


담임선생님의 ‘공식적’ 부탁이니 따르지 아니할 부모님이 어디 있으랴. 평소 라면을 먹으려 할 때마다 잔소리를 하던 엄마 역시 이번만큼은 아무런 군말 없이 컵라면 하나를 싸주셨고, 그렇게 이 주 후 토요일, 우리 반은 ‘책 속에 나오는 한 장면 따라하기’라는 수업의 한 일환이라는 이름으로 성대한 컵라면 파티를 거행했다.

 

그야말로 ‘눈물 젖은 라면’보다 맛있었던, ‘웃음이 묻은 라면’이었다. 라면을 일주일에 한 번, 아니 두 번 세 번 먹을 수 있고, 더 이상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지금도 그 때 먹었던 컵라면이 가끔씩 떠오르곤 한다.

 

 

 

4. 우리 반의 주제가, 이루마의 ‘Dream'과 김민기의 ’백구‘



 

쉽게 놓쳐 버릴까봐. 그만 놓쳐 버릴까봐.

걱정 말고 믿어 봐요. 나의 꿈을 잊지 마요.

나의 꿈을.

 

- 이루마, 'Dream(애니메이션 <강아지똥> OST)' 中 -

 

 

내가 아주 어릴 때였나, 우리 집에 살던 백구

해마다 봄가을이면 귀여운 강아지를 낳았지

 

- 김민기, '백구' 中 -

 


얼마나 많이 불렀으면 16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가사가 기억날 정도다. 처음에는 교실 앞 커다란 수업용 TV에 띄워진 가사를 보고 부르다가, 1학기 중반부 이후부터는 가사 없이도 모두가 이내 곧잘 부르곤 했던 이 노래들. 단원평가가 끝난 후에는 긴장되어 뻣뻣하게 굳어있던 몸을 풀어주었고, 운동회나 학교 행사 후에도 어김없이 우리 반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그 들뜬 마음을 한껏 더 부풀려주었던, 그야말로 언제나 우리 반과 함께 했던, 2학년 4반의 주제가였다.

 

*


칭찬 받는 게 좋아서 책을 읽고, 상을 받는 게 좋아서 독후감을 쓰던 나는 어느 새부터인가 책을 읽는 게, 글을 쓰는 게 그저 즐거워졌다. 원래부터 좋아하던 일기 쓰기는 매일매일 그 분량이 점점 늘어갔고, 내 일기장에는 더욱 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담기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궁금해 학급문고에 있는 그녀의 책들을 모두 찾아 읽고도 모자라 학교 도서관과 동네 도서관을 열심히 뒤지기도 했다.


물론 이 한 해 동안, 이러한 변화를 겪은 아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우리 반 많은 친구들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었고, (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거의 외계어 수준인 글들도 있었지만 아무튼) 서투른 솜씨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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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학년 4반 30명이 매주 쓴 일기들, 운동회나 현장학습 등 학교 행사를 소재로 한 짧은 글들, 짝 바꾸기, 나의 장래희망 등 일상적인 소재를 주제로 쓴 글들, 애니메이션과 책 감상문 등은 차곡차곡 한 데 쌓여 학년 말, 우리 반만의 작은 문집으로 재탄생했다.

 

*


그 후 선생님과 헤어져 3학년이 되고, 6학년이 되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동안 항상 책을 읽고 글을 써 오면서도 나는 잘 알지 못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교대, 사범대 진학의 꿈을 꾸기 시작했고, 3학년 그리고 한 차례의 실패 후 재수생 때 학과 선택을 하는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학교와 아이들을 떠올렸고, 막연히 꿈꿨다.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어떤 이의 영향인지는, 아직까지 여전히 알지 못했다.

 

5년 동안 나름 교육과 가까이 살아왔으며, 이제는 학생이 아닌 그 반대편 위치에 한 발짝 더 다가선 사람으로서, 그 때 선생님이 나 그리고 2학년 4반 30명의 아이들에게 주셨던 꿈과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초등학교 교사가 아닌 그의 또 다른 이름,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는 ‘아동문학평론가’로서의 그의 첫 발걸음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도 이제는 안다. 아이들과 책, 그리고 글에 대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큰 사랑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성향 상 논리적인 것, 현실적인 것, 이성적인 것들과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것들에 매력을 느낄 때마다, 이제는 더 이상 당혹스러워하지 않는다. 대신 선생님을 생각한다. 여전히 아이들을 좋아하고, 문학과 극에 심취해 있고, 동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밤에 혼자 차를 마시며 글을 쓰는 낭만적인 시간에 행복해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선생님의 큰 존재를 느낀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나는 선생님의 그늘 아래 있었다. 나를 가리는 그림자로서의 그늘이 아닌, 언제나 한없이 넓고 크고 따뜻했던 그 그늘.

 

*

   

아홉 살의 나는 없고 2021년 5월 지금 여기엔 어느덧 스물다섯 어른이 된 나만 남았지만, 여전히 그 시절의 꿈과 낭만을 간직한 한 제자가 여기 있다. 일찍이 그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여전히 읽고 쓰고 생각하는, ‘글 쓰는 어른’으로서의 자세 또한 잃지 않겠다는 다소 원대한 꿈을 품고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야망(?)은 버리지 못한 나를 보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실 것만 같은 모습이 선명하다.

 

학생으로서 마지막으로 맞는 스승의 날을 앞둔 지금, 나의 아홉 살을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찬란하게 만들어주신, 존경하는 나의 스승님에 대한 생각이 더욱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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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몇년 전 어느날 만들어 둔 카네이션으로 이 마음을 대신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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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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