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살아남기] 첫 번째 – No Day, But Today

글 입력 2021.05.0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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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아프다. 기분도 이상하다. 자주 짜증과 화가 난다. 기억력도 좋지 않아서 종종 깜빡한다. 단순히 넘어갈 수 있는 일에도 유별나게 신경을 쓰고 걱정한다. 이런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 다른 사람과의 만남도 피하게 된다. 옛날부터 엄마는 나에게 진료를 받아보라고 말했다. 그건 정말 어이없고 웃긴 농담처럼 들렸다. 엄마는 타인을 관찰하듯 나를 바라보았고 그러다 넌지시 조언을 내밀며 정신과에 가 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고, 밖에 나가서 누군가를 만나면 눈물 따위는 없었다는 듯 내 안에 유쾌함과 친절함을 구겨 넣었다. 약간의 농담과 낯가림도 곁들여서. 하지만 결국에는 거짓이었다. 샤이니의 종현이 썼던 글이 떠오른다. “나는 속에서부터 고장 났다.” 그래 맞다. 나도 속에서부터 고장 났다. 나는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다. 그러니 혹시 뭔가 이상해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나도 나의 문제를 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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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에 갔다. 몇 가지 검사를 마친 후, 의사 선생님은 나의 우울 및 불안 수치가 심각할 정도로 높다고 말했다. 조금 더 높았다면 입원을 권할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왜 이제야 왔냐는 등 뻔한 잔소리도 했다. 나는 그동안 나의 우울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내 성질은 더럽고 내 팔자는 사납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궁금해했고, 나는 내 짧은 인생을 더 짧게 줄여서 이야기했다.


아빠에게 학대를 당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요. 중학생이 되어서는 참다못해 경찰을 불렀습니다. 경찰은 우리 가족과 기억나지 않는 대화를 나누었고, 그것이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를 동정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름 꿈과 희망이 있었거든요. 요리 대회에서 상도 탔고, 지루한 공부도 잘해서 과학고에 진학했습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에서 저의 성적은 최하위권이었습니다. 몇몇 학생들과 교사들은 저를 대놓고 무시했습니다.


자존감이 밑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대인관계는 원만히 유지했고, 학생회 활동에도 참여하며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인 것처럼 괜찮은 척했습니다.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고 새로운 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이공계열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긴 고민 끝에 휴학을 결정하고 다른 학과에 진학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저의 삶입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요.


속으로는 끊임없이 욕을 뱉는다. 나에게,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내가 사라져도 잘 살아갈 또 다른 당신에게.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고 나는 그 반응이 싫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런 학대를 겪으며 나와 엄마가 어떻게 버텼냐고 물었다. 뭘 버텨요, 저는 그냥 살았습니다. 엄마는 저희 세 남매를 돌보기 위해 사셨겠죠. 그러자 선생님은 내가 남 일 얘기하듯 말한다며 탄식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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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솔직히 내 일 같지도 않다. 현실이 그저 허상 같다. SNS를 들여다보면 잘살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고, 그것은 나의 실없는 현재와 겹쳐 보였다. 그것뿐인가. 내 속에는 이 글에서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응어리가 많다. 그걸 곱씹다 보면 탓하고 화내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내가 사는 세상이 너무 가혹하다. 이런 곳에서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나에게 조언하지 말라고 외치고 싶다. 가족이나 친구라고 해도 내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코로나 블루’일 수도 있으니 밖에 나가서 산책하라는 등의 처방을 내리지 말아달라. 나는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부터 병들어있었다. 타인과 더 열심히 연락하고 만남을 가지라는 충고도 의미가 있을까? 우울은 전염될 수 있다. 나는 타인에게 나의 우울을 전염시키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 정도로 나를 신경 써주는 사람도 없다.


어떤 친구에게 조심스레 나의 상태를 이야기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걸 병이라고 생각하지 마”였다. 그는 나의 마음이 나약해졌으므로 조금 더 힘을 내어 버티라고 말했지만, 나에게 그 말은 폭력이었다. 그 친구는 자기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그것이 병원에 갈 정도로 심각한 일은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건 극명한 조롱처럼 느껴졌다. 네가 내 고통의 깊이를 그렇게 쉽게 가늠하다니, 분하고 서럽다. 괜히 말했다. 역시 아무도 나를 모른다. 나는 그 친구의 연락처를 핸드폰과 카카오톡에서 차단했다.


의사 선생님은 검사지 몇 개를 더 준 뒤 집에서 작성해오라고 했다. 정밀 검사 후 상태에 맞는 약을 처방하기 위함이라면서, 며칠 뒤에 다시 보자고 말했다. 서류 봉투를 들고 병원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아, 나는 이제 진짜 정신병자가 됐구나. 다 나를 이상하게 보겠지. 아니다. 원래부터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보았다. 그 생각을 하니까 나를 별종 보듯이 쳐다보면서 난색을 보였던 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 화를 삭이지 못하는 나를 본 선생님. 마구 화를 내는 나를 본 후에 앞으로 언제 또 화낼지 그 타이밍을 예측하는 친구. 어두컴컴한 기숙사 방에서 오열하는 나를 보는 시선들. 아빠를 향해 소리 지르는 나를 보는 엄마. 그래도 나이를 먹으면서 감정은 외면이 아닌 내면을 향해 솟구쳤기에, 나는 보다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런데 점점 지친다.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고 말한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 감기를 10년 가까이 앓을 수 있나? 이건 감기가 아니라 폐렴에 걸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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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한다. 뮤지컬 <렌트>에 나오는 가사처럼, 내일은 없다. 오직 오늘뿐이다. 나는 지금을 살아가기에도 벅차다.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핸드폰을 켠다. 유튜브에 접속해서 특정 키워드를 검색한 후 나처럼 청승맞은 사람들이 올린 영상과 댓글을 본다. 모니터 건너편의 누군가가 건넨 솔직한 성찰과 위로는 조금 위안이 된다.


몇 주 전에 본 영화가 떠오른다. 많은 지인으로부터 추천받은 영화 <윤희에게>를 보았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겨울의 풍경이 영화 내내 아름답게 그려져서 좋았다. <윤희에게>에서 주인공 윤희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분의 삶을 벌(罰)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 말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나도 나에게 주어진 남은 생이 벌처럼 느껴진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런 벌을 받는 걸까 고민한다.


 

쥰아, 나는 나한테 주어진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벌을 주면서 살았던 것 같아


너는 네가 부끄럽지 않다고 했지

나도 내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윤희에게> 中

 


윤희는 꿈을 꾸지만, 나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다. 나도 꿈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꿈이 흐릿해졌다. 세상이 일시 정지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도 다시 꿈을 꿀 수 있을 텐데. 누군가가 나를 데리고 같이 도망치자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혹시라도 뒤처지면 죽일 듯이 괴롭히는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나는 과장하거나 덜어내지 않은 나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글에 녹여내고자 한다. 될 수 있으면 최대한 이성적인 사고를 갖춘 상태로 쓰려고 한다.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마음속으로 묻는다. “네가 뭐가 우울해. 그냥 우울증 흉내 내는 거 아냐?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엄살 부리는 거 아니야? 세상에 너보다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나름대로 합리화 과정을 거친 후 다시 일상에 뛰어든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다시 무너져내리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가 살 수 있는 걸까. 내가 살아도 되는 걸까.



죽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 가야 할 여행지도 많고, 봐야 할 공연과 영화도 많고, 먹어야 할 음식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다. 그리고 나는 우습게도 모태신앙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살과 죄, 지옥의 인과관계를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마음 편히 죽기가 힘들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하나님과 뜨거운 토론을 벌이고 싶지만, 세상을 살면서 신에게 따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므로. 어쨌든 나는 넉넉한 관심 속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감사한다.


나는 나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를 향해 이 글을 쓴다. 우리는 나아질 것이고, 다시 걸어갈 것이며 꿈을 꿀 것이다. 얼마 전 오스카를 수상한 윤여정 선생님의 말씀처럼, 삶은 불공정과 불공평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실의 고난을 인정하고 내가 이것을 어떻게 개척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기록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자세한 치료일지다. 그러나 이것을 나만의 것으로 단정 짓기에는 이 순간에도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그들을 향해 위로를 보낸다.

 

첫 번째 기록을 어떻게 마쳐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쓰고 나니까 좀 오글거려서 부끄럽다. 그냥 이렇게 마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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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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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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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echae_lope_da
    • 불특정다수를 위한 솔직한 글 감사합니다. 그 불특정다수 중 한 명인 저도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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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남기
    • leechae_lope_da댓글 남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글이 독자 분께 한 줌의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따뜻한 말씀을 해주셔서, 그 또한 고맙습니다. 이런 말씀이 보태져서 제게도 한 줌의 용기가 됩니다. 우리는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 언제나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면서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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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ㄹㅁㅅ
    • 이런 걸 알게 돼서 정말 유감이야... 우울증은 전염성이 없는 것 같고, 니가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해요. 너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고 마지막 단락은 매우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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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
    • 제 마음을 옮겨놓은 줄 알았어요 그러곤 살꺼다 죽진 않을꺼다,..갑자기 눈물이 ㅠㅠ! 위로 받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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