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Re: 그리움과 시작, '비긴어게인'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1.05.0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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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일상이 뒤바뀐 지도 벌써 1년 반이 다 되어간다. 뒤집힌 일상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낯설기만 했던 변화들이 이제는 당연하리만큼 익숙해져 버렸다. 드문드문 떨어진 채로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만 하는 사람들, 서로의 생김새조차 완벽히 알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마스크, 작은 화면을 통해 새로운 만남과 연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이런 일상들에 곧잘 적응했고 과거를 그리워하며 추억을 되새기는 일은 달력을 넘길수록 점차 줄어만 갔다.

 

어느덧 나도 과거의 시간을 꺼내어 그때를 그리워만 하기보다 현재의 시간에 낀 채로 바쁘게 굴러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주 가끔 떠오르는 콘서트의 기억, 공항에서의 설렘 등 기약할 수 없는 모습이 잠시나마 나를 그리움에 삼켰지만, 이내 현실로 돌아와 다시 바쁜 일상을 보내곤 했다.

 

이런 나에게 갑자기 ‘그리움’을 안겨준 것이 있다. 바로 꾸준히 시즌제로 우리를 찾아와주는 ‘비긴어게인’이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우연이라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우연한 만남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비긴어게인’을 한 번도 제대로 시청한 적은 없지만, 레전드라 불리며 꾸준한 수요가 있는 영상들은 이미 모조리 섭렵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억지로 보일지라도 이를 우연한 만남으로 생각하고 싶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어느 날 바로 옆에서 예기치 못하게 찾아왔으니까.

 

지금도 여전히 클립 영상이라 불리는 것들만 머릿속에 넣어둔 상태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내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무언가 느끼고 생각할 거리는 충분했다. 나는 '비긴어게인'의 특정 시즌을 하나 꼽아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 자체에서 느낀 것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낯섦 속에서 느끼는 편안함


 

사실 나는 버스킹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대부분 타이밍이 별로이긴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이상과 현실이 주는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버스킹이라는 행위는 좋아하지만 관람한 횟수는 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버스킹 관람의 초짜인 내가 몇 안 되는 당시의 기억을 회상해본다면, 한 마디로 조금 어수선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 상반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주변을 감싸려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모든 것을 족족 튕겨내고 있었다. 거기다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고성방가가 이루어지는 거리까지,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나의 버스킹 환상을 와장창 깨버렸다.

 

그래서인지 ‘비긴어게인’을 보며 가장 충격적인 동시에 부러웠던 것은 ‘분위기’였다. 영상 속에서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기 달랐다. 슬퍼 보이기도 했고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저마다 느끼는 감정은 달랐지만 모두가 음악에 젖어 소위 말하는 ‘음악으로 하나 된다.’는 광경이었다. 정말이지, 내 손에 들린 작은 화면을 초월해 그곳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다.

 

 


 

 

모든 영상 속의 관객들은 ‘편안’해 보였다. 단지 자국에서 보는 수많은 공연 중 하나라는 이유에서 나오는 편안함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싼 선율에 기대어 나오는 편안함 같았다. 편안하다는 건 우리가 불편한 곳에 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또는 온종일 서 있다 침대에 누웠을 때처럼 가장 쉽고 많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만, 그들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편안함’ 말고는 도저히 다른 단어와 어울리지 않았다. 낯선 이들의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도 낯선 땅에서 공연하는 뮤지션도, 모두가 낯섦 속의 편안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편안함을 바라보며 나는 왠지 모를 울렁거림을 느꼈다.

 

누군가는 이를 보며 그저 평범한 버스킹이 뮤지션을 통해 전해진다는 생각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코로나 이전의 모습을 그리워하듯, 때로는 드라마 속 주인공의 서사가 주는 감동보다 당연한 것들이 주는 감동이 더 크기도 하다. 설령 이 모든 것이 좋게 연출된 장면만 송출해야 한다는 방송의 특징이 낳은 작위적이 첨가된 결과물일지라도, 프로그램으로서의 제 목표는 완벽히 이뤄내지 않았나 싶다.

 

 

 

다시, 시작


 

출연하는 뮤지션 모두 국내에선 모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곳에서는 한낱 이방인에 불과했다. 이 말은 여태 음악으로 위로와 즐거움을 건네주던 일,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전달은 뮤지션의 몫이지만 판단은 관객의 몫이니 누구도 그 뜻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을 뿐더러 한국에서 박수갈채만 받던 그들이 그곳에서도 똑같은 반응을 끌어내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대부분 뮤지션들의 출연 계기는 비슷했다. 한 단어로 말하자면 ‘도전’이었다. 이제껏 좋은 환경에서 노래만 해왔고, 개인이 아닌 팀으로 조화를 이루었고, 버스킹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즉, 자신에게 달린 각종 미사여구를 스스로 내려놓고 다시 시작한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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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어게인 3’의 첫 버스킹은 바닥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의 포부에 맞서기라도 하는 듯 지나가는 차가 기타 케이스를 밟으며 한 번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고, 중간에는 드럼 패드가 도난당하기도 했고,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길바닥에 앉은 채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늘 큰 무대에서 강렬한 스포트라이트와 힘찬 함성만을 받던 그들이 더러운 길거리 바닥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공연 장비에 문제가 생길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도전을 위해 지난한 과정과 맞선다는 것, 이들의 마음가짐에 진심으로 박수 보내고 싶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안식처를 떠난다는 게, 자신의 미사여구를 벗겨내고 처음부터 다시 채운다는 게, 새로움을 위해 처음을 택한다는 게, 결코 쉽다는 말로 여길 순 없으니까.

 

 

 

결국, 그리움


 

코로나 19 이후의 비긴어게인은 약간의 재정비를 거쳤다.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진행했고, 사람들 사이에는 동그란 선이 존재했고, 차 안에서 유리창을 사이에 둔 채로 서로 교감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과 마찬가지로 뮤지션은 좋은 음악을 선물했고 관객들은 선물을 소중히 품에 안은 채 하나 되었다.

 

그래, 내가 ‘비긴어게인’을 통해 느낀 편안함도 행복함도 동경심도 모두 ‘그리움’의 종착지에 모여 있었다. 돌고 돌아 결국 ‘그립다’는 말로 귀결되는 지금, 선율이 흐르는 공간에서 낯선 타인들과 섞여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느끼는 게 줄곧 그립기만 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직접 관람한 버스킹과 미디어로 접한 버스킹의 괴리감에 혼자 실망했었다. 아마 시간이 지나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선을 달리 본다 한들,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과의 차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적함이 주는 사람 냄새와 족족 튕겨 나가는 모남과 꿋꿋이 내뱉는 선율을 다시 느끼고 싶은 건 확실하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시간에 도달하기까지 할 수 있는 거라곤 늘 해오던 작은 화면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접하는 것뿐이니 일단 이거라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얼른 이 글의 마침표를 찍고 이 모든 감정을 다시 느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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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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