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구를 지켜라!(2003) [영화]

글 입력 2021.05.05 21:3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Z2O7GEM7J_1.jpg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당신은 외계인이어야만 한다.

 

고통, 혐오와 수치심 속에서 자라온 병구(신하균)는 억울하고 분하다. 약자에게 휘둘러진 폭력에는 명확한 이유가 없고 병구 또한 그 이유 없음으로 인해 자신의 화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자신이 사회의 정상적 규범에 속하지 못하는 탓일까? 하지만 병구는 잘못한 게 없다.

 

자신을 가만두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은 지구인일 리 없다. 나를 괴롭히는 당신은 그러니 외계인이 분명하다. 자신이 분열되지 않기 위해서 모든 원인으로 돌릴 완벽한 타자, 나의 이해를 초월한 존재가 필요하다. 병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구를 벗어난 외계의 존재가 필요했다.

 

영화 속 병구의 삶은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학교나 회사와 같은 사회적 공간에서 병구는 소외되어 왔으며 수업료를 내지 않았다고 속옷 차림으로 매를 맞는 수치를 겪기도 했다.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칼을 들었다 살인미수로 들어간 교도소에서도 폭력은 만연하다. 아무리 폭력에 반항해 보아도 결국 또 다른 폭력을 맛보게 되는 절망적인 현실을 알게 될 뿐이다. 눈앞에서 목도한 좋아하던 여성의 죽음, 식물인간이 된 어머니의 모습은 병구에게 무력감과 패배감을 안겨준다.

 

이렇게 차분하게 쌓인 분노는 병구와 그의 삶을 망가뜨려 온 것으로 짐작된다. 병구의 사회적 위치에서는 아무리 폭력에 대응해봤자 더 큰 폭력으로 응징받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명분이 필요하다. 병구의 삶을 의도적으로 망가트리고자 하는 외계의 존재임이 확실한 것이다. 그래서 병구는 자신을 괴롭혔던 학창 시절 선생, 교도관을 외계인임을 상정해 처리해왔으며 이젠 강만식만 남았다.

 

 

unnamed.jpg

 

 

하지만 뜻밖에도 외계의 존재가 지구를 괴롭히고 파괴하려고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실 알고 보면 우리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외계의 존재를 믿지 못했다면 평생 화만 내며 살았을 거예요”라는 병구의 말을 살펴보면 외계인의 존재가 병구에게는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방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구와 자신을 위협하는 공격성과 함께 사실 외계의 존재가 우리에게 구원을 메시지와 화해를 바라고 있다는 믿음은 병구가 자신을 괴롭혀왔던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투사한 자신의 희망과 같아 보인다. 자신을 가만두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아 보이던 구원의 메시지와 화해의 태도가 외계인에게는 있다. 외계인은 병구에게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존재였을 지도 모른다.

 

그의 곁에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영화 속 시간들 중에서 병구가 가장 들뜨고 편안해 보이는 장면은 자신을 캐내고자 갑작스레 방문한 추 형사와 함께 술을 마시는 부분이다.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배가 고파질 만큼 화가 나 먹고 토하길 반복하며 죽지 않을 만큼만 분노를 풀어내던 과거를 토로하는 병구를 추 형사는 공감해준다. 추 형사의 공감으로 인해 그를 바라보는 병구의 눈빛에는 이해받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먹먹한 편안함이 담겨있다.

 

병구가 그토록 바라 왔던 것이 이해는 아니었을까 느껴질 만큼 이 장면에서의 병구의 눈빛은 애처롭다. 병구의 곁에는 그동안 그럼 아무도 없었을까?

 

 

280706364.jpg

 

 

영화 속 병구의 현재에는 순이가 계속 자리한다. 병구가 미치지 않았다고 얘기하며 병구를 성심껏 돕는 순이는 병구와 유사하게 회피적 성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인형과 같은 유아기적 물건에 집착하고 애착을 가지는 행동 등을 미루어 보면 순이 또한 병구와 같이 현실이 아닌 자신이 만든 다른 세계로 회피해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성향을 가진 듯 하다.

 

병구가 미쳤으니 순이 씨가 그를 도와야 한다는 강만식(백윤식)의 말에 순이는 외면하고자 하는 듯 인형의 머리를 강박적으로 빗는다. 이러한 행동들로 보아 순이는 병구의 상태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지만 회피하고자 하는 상태일 확률이 높다. 그들이 위치한 유사한 상황에서 오는 동질감에 순이는 병구의 곁에서 그를 사랑하고 도우려 노력하지만 안타깝게도 같은 이유로 순이는 그에게 위안은 주더라도 실질적으로 병구를 현실에서 해방시켜주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병구의 선택들은 자신을 더 궁지로 몰게 된다. 강만식에게 속아 차 트렁크에서 꺼낸 벤진은 해독제가 아니었으므로 그동안 식물 상태로 연명해 오던 어머니를 단숨에 잃게 만들며 안드로메다 왕자를 만나러 간 유제화학 공장에서는 강만식과의 몸싸움 끝에 순이와 함께 죽음에 이르게 된다. 소외된 약자의 위치에 놓인 병구와 순이의 죽음이 지은 죄도 많으면서 늘 무혐의로 풀려나는 기득권 계층 강만식에 의해 초래된다는 사실은 우리를 다소 불편하게 한다.

 

끝내 강자가 약자를 이렇게 이기는 것은 왠지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인해서이며 그것이 또한 우리가 마주한 현실 자체임을 어렴풋이 알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토록 비참하다면 영화는 무엇을 해야 할까.

 

 

e9055e94-2e72-4d09-b4d8-5bf32b8d1e1a.jpg

 

 

그래서 이 영화는 병구의 처지를 따뜻하게 감싸고자 하는데 영화의 마지막 10분을 할애한다. 병구의 주장대로 유제 화학 사장 강만식은 안드로메다에서 온 왕자가 맞으며 병구가 그동안 외계인의 존재를 상정하며 살아온 삶을 헛되고 단순한 열패감에서 온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지구가 폭발하면서 모든 삶이 끝나지만 추억 속 웃는 병구의 모습만은 우주 밖으로 빼내져 지구에서 분리된다. 병구의 삶과 외로움을 따뜻하게 보듬으려는 영화의 태도가 엿보이는 이 마지막 시퀀스는 영화가 할 수 있는 정의 찾기이며 위로의 방식이 된다.

 

 

[김소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