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민주주의가 후퇴를 거부할 때,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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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입력 2021.05.05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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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각 4월 26일 아침 9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윤여정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미나리>, 감독상과 작품상 등 시상식을 휩쓴 <노매드랜드>, 파격적인 수상소감으로 눈길을 끈 다니엘 칼루야가 남우조연상을 가져간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등 다양한 작품들이 각광을 받았다.

 

그중 편집상, 각본상 등 6부문에 이름을 올렸지만 무관으로 돌아간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아론 소킨 감독의 넷플릭스 개봉작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빈 손으로 돌아갔지만, 골든글러브 시상식 각본상 수상과 미국배우조합상에서 앙상블 캐스트 수상 등 굵직한 이력을 자랑하는 작품은 할리우드식의 운동성 강한 법정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상 깊게 볼 만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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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뉴스룸>, 영화 <머니볼>과 <소셜 네트워크> 등의 시나리오 작가로 이름을 알린 아론 소킨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계획을 이어, 1968년 미국 시카고 시위 주동자 7인 사건(시카고 7)으로 알려진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마음먹는다.

 

2008년 대선을 목표로 계획된 영화는 계속해서 제작이 불발되다가, 2016년 미국 대선 출마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위대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한다.


멀리 프랑스에서 혁명의 바람이 불던 1968년, 미국에서는 계속되는 반전운동에도 불구하고 월남전의 여파가 계속 이어지던 시기였다. 비폭력 인권 운동을 외치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 해이기도 하다. 분노한 청년 운동가들은 1968년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를 앞둔 제53회 민주당 전당대회장 근처에서 시위를 하기로 결심한다.

 

비폭력으로 시작된 시위는 경찰의 도발로 인해 폭력 시위로 변질되고,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7인의 청년과 흑인 인권 보장 결사 단체인 ‘흑표당(Black Panther Party)’의 우두머리인 보비 실이 내란죄 재판을 받게 된다.


영화는 재판이 벌어지는 151일 동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기소된 청년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의 사무소와 법정을 오가며 지난하게 벌어지는 법정 공방을 스크린에 옮겨냈다. 실화를 담아낸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을 관람할 때 주목할 수 있을만한 요소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1. 현실과 허구를 오가는 이야기 구성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영화이니만큼, 이야기의 큰 골조는 실제 벌어졌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영화의 극적 에너지와 캐릭터 구성을 위해 허구적으로 삽입한 이야기도 다수 존재한다.

 

당시 미국 경찰과 FBI가 자신들이 미행하는 시위 주동자들의 기밀을 빼내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운동가 행세를 하며 ‘프락치’ 활동을 했다는 설정이 등장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른 허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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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마지막에 관객들로 하여금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전사 군인 호명 장면도 후에 가공된 것이다.

 

항상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모습을 보이며, 늘 피고인들에게 적대적이었던 판사도 마지막 피고인 발언을 맡길 만큼 재판 내내 순응적인 모습을 보이던 톰 헤이든에게 그 명단을 읽게함으로써 신념을 지키는 시위대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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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것은, 영화 속 그 어떤 장면보다 허구적으로 느껴졌던 재갈을 물리는 장면이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라는 것이다.

 

시카고에 있었다는 이유로, 시위와 전혀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7인과 함께 재판을 받는 보비 실은 변호사도 대동하지 못한 채 자신의 발언이 계속해서 묵인되는 재판장에서 판사에게 논리적으로 대응한다.

 

하지만 판사는 법정 모욕을 이유로 (작품을 관람한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이는 명백한 흑인 차별이며, 이는 영화에 그대로 묘사된다.) 그에게 재갈을 물리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는 재갈을 문 채 피고인석에 머무르게 된다.

 

영화에서는 검사의 요청으로 바로 재갈이 벗겨지지만, 실제 법정에서는 3일 내내 그 재갈을 문 상태로 출석해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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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시위에서 폭력 시위로 번진 전당대회 시위 장면 또한, 영화의 허구적 장면과 실제 시위 현장을 기록한 흑백 기록물이 교차되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드라마틱한 구성을 위해 삽입한 허구도 존재하지만, 시위 현장 등 실제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려는 노력 또한 눈에 띄었다.

 

 

2. 짜임새 있는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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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비 실 이외의 시카고 7인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 검사가 잠정적 무죄를 염두에 둔 채 기소한 2인의 청년을 제외하고, 지식인 대학생 운동가인 톰 헤이든와 레니 데이비스, 히피이자 스탠딩 쇼, 토크쇼 등을 전전하면서 가벼운 언행을 일삼는 청년 국제당 리더 애비 호프먼과 제리 루빈, 비폭력주의를 고수하는 시민운동가 데이비드 젤린저로 이루어졌다.


영화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신임 법무부장관과 판사-시카고 7인과 그들의 변호사들의 대결 구조를 고수하며 흘러간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한 투쟁뿐만 아니라, 시카고 7인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 또한 영화를 지탱하는 큰 기둥으로 묘사된다.

 

지식인 운동가이자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톰 헤이든과, 히피 단체를 이끌며 늘상 가벼운 모습을 보이는 애비 호프먼의 갈등이 그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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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가이지만 냉정한 면모로 선거에서의 승리를 지향하는 톰 헤이든은 문화 혁명을 주장하며 자유로운 행실을 일삼는 애비를 탐탁지 않아 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톰 헤이든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열정적인 연설을 토해내는 장면, 이로 인해 증언 자격을 잠정적으로 박탈당한 그의 자리를 애비가 대신해 누구보다 논리적으로 증언을 하는 장면 등, 영화는 인물의 양면적이고 복합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그들의 내면을 더욱 섬세히 느낄 수 있게 만든다.

 

특히 영화 마지막, 최후 발언을 맡은 헤이든이 파병 후 전사한 군인들의 이름과 나이를 호명하는 장면은 영화 속 그 어떤 장면보다 뜨겁고 열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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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와 함께 히피 생활을 하며 진중하지 못한 모습을 보일 것 같던 제리 또한, 여성 시위대를 향해 혐오 발언을 쏟아내며 추행을 시도하는 남자 대학생들을 향해 반격을 가하는 등 영화 초반에는 드러나지 않는 인물들의 면모가 후반으로 갈수록 짜임새 있게 드러난다.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코믹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진지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통해 1968년에서 멀리 떠나온 현재 우리의 사회와 정치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영화는 권력 간의 대립으로 인해 묵인되고 있는 수많은 사회 문제와 소수자 인권 문제에 주목함과 동시에,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치밀하게 짜인 법정 영화로서 오랜만에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된 작품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의 관람을 적극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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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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