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을 투영하다 - 마르첼로 바렌기 [전시]

일상의 순수함, 그리고 아름다움
글 입력 2021.05.0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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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 바렌기


 

스무 살이 넘어서 지금까지, 지난 몇 년의 시간 동안 나를 상징하는 문장을 적어보라면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도 다른 누군가에겐 특별한 순간이 될 수 있다.’라는 문장을 쓸 것 같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말은 아니다. 몇 번의 만남, 어색한 타인과의 대화가 조금씩 쌓이며, 나도 모른 채 내면에 쌓인 나의 정체성이자 본질이라 믿고 있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평범한 일상의 순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개인의 이야기를 존중한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나의 가치관을 잠깐이나마 이야기를 해야, 오늘 다녀온 전시회의 감상을 조심스럽게 시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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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물은 각자의 이야기와 아름다움이 있다. 아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일상의 사물을 표현할 때 그 순수함에 매료된다.

 


이번 전시회의 정체성을 담은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장르에 얄팍한 소양을 가진 만큼, 극사실주의라는 미술의 분야에서도 큰 관심을 두진 않았다. 아니, 영상을 전공하고 사진 촬영을 즐기는 만큼, 극사실주의의 의미 자체를 크게 느끼진 못했다.

 

사물이나 풍경을 그대로 담는 것이 목적이라면, 극사실주의라는 작품의 아우라는 대체 어디서 나타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직접 사물을 마주하는 것도 아닌, 사진만큼 사실적이지도 않기에 극사실주의라는 장르에 애정을 붙이긴 힘들었다. 사실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겠다.

 

전시를 둘러보는 내내 작품의 디테일과 제작과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던 것은 전시회와 작가의 정체성을 담은 몇몇 문장들이었다. 오로지 자세하게 그리고 세심하게 그리는 것이 목적이 아닌, 일상의 순간을 표현하는 그 현장의 순수함이 문장들에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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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투영하다.


 

예술작품을 관람할 때 작품마다 작가의 세계관이 얼마나 녹아져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중들과 이야기하려는 작가들의 흔적은 그 어떤 생소한 분야라 할지라도 나를 설레게 만들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바렌기의 작품을 보면 작품마다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 있었다. 유리나 안경, 금속으로 이루어진 사물에는 자신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스스로를 비추기도 했고, 지문을 남기기도 했다.

 

일상의 흔적이란 것을 강조하려는 작가의 작품은 관객들과 대면하고 싶어하는 작가 개인의 바램을 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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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그릴 수 있을까.

 

고흐의 그림을 보다보면 시골 집 근처에 있는 건초더미가 생각나고, 고야의 그림을 떠올리다보면 어두운 밤길에 우연히 마주칠 것만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생각이 난다. 마르첼로 바렌기는 일상의 순간을 그렸다. 사물이라고 한정 짓기엔 순간의 상황이 담긴 그림 속 전후의 시간이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느껴진다.

 

나를 스쳐 지나간 하루의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면 또 운명과 같은 만남이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점심엔 마제소바를 만들었다. 잠실 근처에서 친구들과 처음 마제소바를 먹었을 때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그려보고 싶었고, 이른 저녁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사 오며 마주친 어린아이들이 기억난다. 학원을 다녀오는지 작은 가방을 메고 있었고, 삼색의 가방은 독특한 무늬를 갖고 있었다.

 

작가는 이렇게 말을 했다. "아무리 재미없는 물체라도 그만의 정점은 있다."

 

어떠한 물체든 내 기억 속에서 빛나는 그 순간의 상태가 정점일 것이다. 온 세상에 그것이 몇 개나 있을지 모르지만, 또한 누군가에게 하나의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어떠한 물체라고 할지라도 일상의 순간에서 우연처럼 마주한 만남을 자각한다는 것은 꽤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토록 순수한 성질의 순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에겐 하나의 축복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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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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