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수의 바다

아침부터 밤까지
글 입력 2021.05.0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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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를 처음 본 건 어릴 적 페리를 탔을 때였다.

 

배를 타고 이동한다는 게 어떤 건지 몰랐을 때라 육지와 멀어져 주변이 온통 어두워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불빛은 저 멀리 있고 하늘은 까맣고 물도 까맸다. 바다 한가운데는 아니었지만, 상상으로 망망대해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설레는 여정의 첫날 밤이었지만 그 바다는 조금 무서웠다.


그보다 컸을 때, 고등학생 때 나는 겨울 바다를 가보고 싶었다. 그동안 봐온 바다가 온통 여름 휴가지라서 다른 바다를 보고 싶었던 것도 있고 탁 트인 걸 보면 마음이 풀어질 것 같았다. 어른이 되거든 면허를 따서 원할 때 바다를 보러 가겠다는 어린 포부를 마음에 심기도 했다. 그 시절 바다는 나에게 해방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겨울 바다를 본 적이 있다. 친구들과의 부산 여행, 해운대 백사장을 비바람과 함께 걸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보며 데비 존스의 문어 수염 같다고, 우산 아래 나란히 붙어 걷는 모습을 재밌어했다.

 

얼마 전 바다를 보고 왔다. 여수의 바다. 해가 뜬 낮 바다, 해 질 녘의 바다, 그리고 컴컴한 밤바다까지 모두 보고 왔다.

 

*


이번 여수행은 반쯤은 계획적이고 반쯤은 즉흥적이었다.

 

수술 후 6개월이 지난 엄마의 몸 상태가 제법 회복되었고 둘이 어디 놀러 가야지~ 하는 얘기가 종종 나와서 여행갈 생각은 있었다. 딱 그정도였다. 하나씩 알아보기 시작하니 제주도는 걸리는 게 많았고, 서울 호캉스는 까였고, 지나가듯 얘기가 나왔던 여수만 후보지에 남았다.


어차피 모든 관광지를 샅샅이 훑는 건 엄마와 내 체력에 못 할 일이라 숙소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여행을 짰다. 여수의 유명 호텔은 셋, 그중에 5성급은 하나. 이왕 돈 쓰기로 마음먹은 거 5성급의 스위트룸으로 잡았다. 중간에 여행이 파투 날 뻔해서 원하는 객실을 취소하고 여행 며칠 전 급하게 남아있는 객실을 다시 잡았던 터라 숙소에 대한 기대를 살짝 내려놨는데, 이게 의외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객실.jpg


 

저층 객실이라 뷰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엄마에게도 뷰는 포기한 넓은 객실이라고 얘기했는데 뜻밖에 괜찮은 오션뷰. 정신없이 자느라 몰랐는데 엄마 말에 따르면 아침에 일출도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객실 창문 밖으로 펼쳐진 바다 풍경은 여수 여행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했다.

 

 

 

여수 바다, 아침부터 낮까지



향일암.jpg

 

 

여수 가면 꼭 들려야 한다는 향일암. 뭐가 그렇게 특별하기에 다들 향일암, 향일암 하나 했는데 가보니까 “역시”였다.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을 가진 만큼 향일암은 손꼽히는 일출 명소라고 하는데 굳이 일출이 아니더라도 올 이유는 차고 넘쳤다.

 

오르막길과 계단을 힘들게 오를 가치가 있는 탁 트인 바다 풍경. 산은 싱그러웠고 바다는 청량했다. 절이 주는 엄숙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와 자연의 조화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모이핀.jpg

 

 

향일암에서 나와 향한 곳은 여수 사람들도 찾는다는 큰 500평 규모의 대형 카페 모이핀. 근처에 있는 게 리조트라니 오션뷰는 이미 보장되었고, 곳곳이 포토 스팟이라니 기대감이 컸다. 그리고 기대만큼 정말 멋있었다.

 

통유리로 바다 곳곳을 보여주는데 계산할 때 살짝 비싸게 느껴졌던 음료값이 관광지 물가가 아니라 합리적인 자릿세로 느껴졌다. 탁 트인 바다와 세련된 건물의 조합이 그 자체로 하나의 관광지 같았다.

 

 

오동도.jpg

 

 

첫날 오동도를 걸어서 들어갔는데 마지막 날 그냥 돌아오기 아쉬워서 유람선을 타고 오동도를 구경했다. 낮에 배를 타는 건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쉬움에 배에 몸을 실었는데 크루즈와 달리 작은 규모(정원 280여 명)라 소음과 흔들림, 진동이 있어 멀미약이 절로 생각났다.

 

흐린 날씨와 좋지 않은 몸 상태라 눈에 경치가 들어오지 않았는데, 오동도에 입도하는 20분짜리 편도 유람선을 탔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시간이 비는 사람에게 살며시 권해볼 만한 코스였다.


 

 

여수 바다, 일몰부터 야경까지



자산공원 안에 있는 해야 정류장은 해상 케이블카의 육지 쪽 탑승장이다. 케이블카에서 노을을 보려고 일몰 시각 맞춰 탑승하러 올라갔다가 공원과 팔각정의 경치가 좋아서 한동안 머물렀다.

 

오동도가 한눈에 보이는 일출정에서 보는 해돋이가 그렇게 멋있다는데 나는 반대쪽에서 해가 저물 때 올라가서 바다 뷰만 즐겼다. 해상 케이블카의 섬 쪽 탑승장은 돌산공원인데, 공원 규모와 시설 면에서는 돌산공원이 좋았지만 탁 트인 바다를 감상하기엔 자산공원이 좋았다.

 

 

자산공원.jpg


 

일몰에 맞춰 자산공원에서 케이블카에 탑승하니 산 지나고 바다 저쪽에서 해가 넘어가는 게 보였는데, 이때 깨달았다. 일몰을 보려면 이 타이밍에 이곳에서 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보니 돌산 공원 전망대에서 일몰을 구경하거나 일몰이 시작되는 걸 확인하고 케이블카에 타고 일몰을 구경한다고 한다.

 

 

케이블카1.jpg


 

어둠이 내릴 때까지 돌산공원에서 머물다가 돌아가려고 하는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야경이 보기 위함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어디 발 디디고 있지 않은 채로, 전망대가 아닌 공중에서 움직이면서 보는 여수 밤바다가 제법 멋있었다.

 

케이블카에 반짝이는 조명이 달려있어서, 컴컴한 하늘을 배경으로 네모난 불빛이 반짝이는 모습도 야경에 한몫했다. 이튿날 크루즈 야경 투어를 했는데 반짝이는 케이블카를 바다 위에서 올려다보는 경치도 예뻐서 해상 케이블카는 여러모로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크루즈.jpg


 

다음 날 저녁 일정으로 야경 크루즈를 넣었다. 편안하게 경치를 즐길 요량이었는데 평일에는 불꽃놀이가 없어서 야경만으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나는 선미에 서서 역방향으로 여수밤바다를 구경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지 않고 편안하게 반짝이는 여수 밤바다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여수 밤바다의 뭐가 그렇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걸까 했는데 육지의 화려한 빛이 바다에 비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하늘도 산도 바다도 컴컴한데 사람들 있는 곳은 반짝거렸다. 그 반짝임은 바다까지 펼쳐져 있었다.


케이블카와 크루즈 비용 차이가 크지 않아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공원의 경치를 포함해서 케이블카를 고르겠지만, 바다에서 보는 여수 밤바다가 매력적이었다.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크루즈를 탔다면 크루즈의 야경에 굉장히 감탄했을 것 같다.

 

*


조금은 즉흥적이었고, 목적이라곤 바다밖에 없었던 여수행. 착실하게 바다를 구경하고 오길 잘했다. 여수 곳곳의 바다는 시간과 위치 관계없이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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