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영원의 낭만성

글 입력 2021.04.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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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한때는 이 낭만적인 단어에 목을 맸던 때가 있었다. 손에 꼭 쥐고서 영원히 놓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사실 그러한 욕심은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여러 종류의 끝과 상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엔 내 마음 같지 않은 일들이 숱하게 널려있었다.


그렇지만, 어느 날에는 분명 ‘영원’이라는 초월적 명사가 필요하다. 일상의 언어로는 우리가 가진 크고 진실한 마음들을 온전히 다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고작 ‘오래’라는 단어에 담아내지 못할 때 '영원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나는 내가 그 무엇이라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이었다. 나도 결국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초월적인 시간을 마치 소유하고 있는 것 마냥 베푸는 무수한 거짓말쟁이 중의 한 명일뿐이었다.


고작해야 100년을 사는 인간에게 영원이라는 단어가 왜 필요하게 되었을까? 한쪽에서는 영원히 사랑하자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영원한 건 없다고 노래한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영원이란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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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잃을 뻔했다. 그럴 '뻔' 했다. 다행인 일이다. 결국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영원이라는 명사를 의심하게 되는 첫 번째 계기로 지목하곤 한다.

 

그 친구는 내가 오랫동안 아끼고 좋아했던 사람이다. 힘들고 지치던 때에 누구보다 의지하며 지내는 막역한 사이로 시작했다. 누군가가 아주 간절해지는 순간에 단 한 번의 연락에도 곧장 응해주던 친구였다. 나는 내 인생에 나를 이토록 기다려주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 사이를 메운 것은 고작 시간이었다. 그것만으로 나는 친구와 이전처럼 가깝게만 지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즐거운 시간을 예상했던 나는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이 예전만큼 행복하고 벅차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매우 혼란스러웠다. 영원은 몰라도 아주 오래 좋아할 사람으로 남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치자 문득 불안해졌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미리 언급했듯이 관계의 종말이 아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던하고, 잔잔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예전에 비하면 조금 덜 애틋하고, 조금 덜 그리울지라도 조금 더 편하고, 조금 더 가벼운 만남을 지속할 수 있는 인연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일로 내 마음이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만큼은 그럴 수 있으리라 자만했던 것을 반성했다. 누구든 마음이란 쉽게 변할 수 있다. 영원한 것은 세상에 없다며 무조건적으로 비관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영원하기로 다짐했던 것들도 한순간 변할 수 있는 불씨를 가지고 있음을 이해하기로 한 것이다. 너무나도 좋아하던 것들에 대해 좋아하기를 그만두더라도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도, 그런 관계와 그런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후로도 나는 크고 작은 숱한 상실을 경험했다. 하지만 나의 깨달음처럼 모든 일과 모든 변화가 항상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내게 크고 의미있는 것이든, 작고 하찮은 것이든 그것이 기어코 아주 오래 지속되기를 기대했으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질구레한 '잃음'에 크게 절망하는 날이 많았다.

 

어느 날은 영원을 약속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홀연히 떠나는 사람을 원망했고, 또 어느 날은 아주 오랫동안 간직하리라 마음먹었으면서 날이 갈수록 점차 식어가는 내 마음을 탓하기도 했다.

 

그렇게 수 없이 마음을 다독이며 많은 것들을 떠나보냈지만 또 그만큼 더 많은 것들을 얻기도 한다. 그저 이렇게 절망에서 변환된 일상적 희망을 조금씩 받아들이며 내 곁에서 벗어나는 것들에 미련 두지 않는 연습을 조금씩 해 나간다. 그뿐이다.

 

*


영원히 같은 질량의 마음을 갖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 나는 알지 못한다.

 

세상은 죽어라 영원 같은 건 없다고 외치고, 나 역시도 영원을 살아본 적이 없어 그 실체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괜한 희망을 가졌다가 상처 받은 적도 많고, 나 자신을 더욱 흔들리도록 방치하게 되는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는 그것들에 대한 깨달음을 하나씩 얻었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다시 낙관에 뛰어든다.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그 초월적 한계를 담아낸 단어 ‘영원’ 속에 우리들은 일상이 가질 수 없는 작은 낭만을 심어 두고서 누군가를 힘껏 사랑하며 그리워하고,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정말 그것들이 끝없이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 삶을 조금은 뜨겁게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진정 바라는 영원의 실체가 아닐까?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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