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때 당신을 담았던 공간을 기억하나요? [공간]

글 입력 2021.04.29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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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를 담았던 작은 방에 대하여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동네에서 작은 치킨집을 하셨다.
 
문을 들어서면 손님들을 맞는 홀이 먼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주방까지 들어가면 6평 남짓한 방이 하나 나온다. 어린아이 홀로 집에 둘 수 없었던 부모님은 나를 그 방 안에 두고 키우셨다. 엄마가 산후조리를 마치고 난 직후부터 내가 중학교 생활에 적응할 즈음까지, 나는 그 방 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손님이 비교적 적은 평일 오후 2시쯤이면 방에서 전기장판을 켜 두고 엄마 혹은 아빠(둘 중 한 분은 홀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보통 한 분이었다)와 함께 이불을 깔고 누워 낮잠을 자곤 했다. 그러다 더운 기운에 이불 속에서 눈을 떴을 때 밀려오던 몽롱함과 묘한 안정감, 대충 시트지를 발라 가려둔 창문으로 새어들어오던 빛의 색과 눈부심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크기변환]본문_남매의 여름밤.jpg
[썸네일 및 본문 이미지 출처]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배고픈 사람들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손님이 드나들 때마다 시끄럽게 딸랑거리는 종소리, 취기 오른 손님들의 헛소리, 아니 말소리, 그리고 자글거리는 튀김 기계 소리 등. 그런 소음을 배경 삼아 공부하는 것은 내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덕분인지 나는 지금도 꽤 산만한 분위기에서도 쉽게 집중을 할 수 있는 편이고, 오히려 도서관 열람실이나 독서실과 같은 고요한 곳에서는 답답함을 느낀다. -그니까 도서관에서 공부하기 싫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사실 맞다.

나름 평화롭다고 할 수 있는 낮 시간을 지나, 오후 10시쯤이 되면 약간의 긴장감이 찾아온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목소리 크기를 조절하지 못하기 시작하면 나는 불안해지곤 했다. 아빠가 배달을 하러 가고 엄마와 가게에 남는 순간이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엄마 혼자만 홀에 남겨 두면 안 된다는 직감에 그 어린 몸으로 부러 엄마에게 할 말이 있는 척, 홀에 나가 기웃거리며 아빠가 빨리 돌아오길 기다리곤 했다.

사실 아빠가 돌아오길 가장 간절히 기다린 건 화장실이 급할 때였다. 가게에 있을 때 화장실을 가려면 상가 건물 계단에 있는 화장실을 가야 했는데, 냄새가 고약한 건 그렇다 쳐도 그곳은 지나치게 부실하고 음산한 구석이 있었다.
 
성인 남성 둘 정도는 흔적도 없이 빠뜨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의 맨홀 위에는 헐렁한 고무판이 얹혀 있었는데, 그 엉성한 녀석이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 드러누워있는 게 참으로 뻔뻔하게 느껴졌다. 밤이면 도저히 혼자 그곳에 갈 수 없었던 나는 아빠가 얼른 돌아와 나와 함께 화장실에 가 주길 기다리곤 했다. 그때의 나는 우리 아빠의 오토바이 소리를 다른 오토바이들의 소리와 대략 구분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새벽 1시쯤, 가끔 취객만이 돌아다니는 고요한 밤거리를 가족끼리 오순도순 걸어 집으로 향하는 것은 꽤 기묘한 경험이다. 덕분에 집에 돌아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항상 새벽 한 시 반에서 두 시 사이였는데, 어릴 때 십수 년을 이렇게 보내서인지 지금도 어떤 수를 써도 새벽 두 시 이전에는 잠들지 못한다. 여담이지만 이런 수면 패턴을 가지고 169cm까지 자란 나는 밤에 잘 자야만 키가 큰다는 말을 믿지 않는 비과학적인 인간이 되었다. -그냥 일찍 잠들기 싫어서 핑계대는 거 아니냐고? 사실 맞다.

 

 

 

이제는 내 안에 담겨 있는 작은 방


 

그니까, 지금의 내 건강치 못한 수면 패턴, 길을 걷다 뒤에서 다가오는 차소리가 들리면 혼자 차의 크기나 종류를 맞춰보곤 하는 버릇, 조용한 곳에서 공부할 때면 답답해서 꼭 ASMR이나 라디오를 틀어두는 습관 같은 것들은 그 방 안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한때 나를 담았던 그 방이, 작게 줄어들어 내 몸 어디 한 구석에 남아 있나 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궁금해진다. 내가 머물렀던 다른 공간들, 한때는 내게 가장 중요했던 사람과 자주 찾던 곳, 혹은 죽도록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머물러야만 했던 곳, 혹은 별 생각 없이 그저 그곳에 있어서 머물렀던 곳, 그런 곳들이 내 몸 어디에 어떻게 남아 있을지. 그리고, 지금 내가 머무는 공간들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내 몸에 남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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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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