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차별이 길러낸 차이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4.2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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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복제인간)이 우리를 원하던 사람(인간)들의 그것과 많이 달랐는가?"

 

 

일본계 영국 작가인 이시구로 가즈오의 Never Let Me Go는 장기이식을 위해 만들어진 복제인간들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캐시, 토미, 루스라는 세 명의 대표적인 캐릭터가 헤일셤에 위치한 관리 시설에서 어린 시절, 사춘기를 보내고 코티지라는 농장에서 삼각관계로 인한 갈등을 겪는다. 그들은 그저 '인간'처럼 살아가고, 사랑하고 싶었을 뿐이지만 결국 자신들의 장기를 내어주고 죽음을 맞이하는 복제인간의 결말을 보여준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복제인간의 삶을 캐시의 차분한 어조로 그려냈지만 작품을 읽어가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복제'되었다고 하나 그들 역시 인격체이며 지성과 감정을 가진 존재였기에 사랑을 하고 '도구'로서 삶을 끝내기 보다는 죽음을 유예하고 싶어한다. 이런 그들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복제가 되었더라도 '인간'이라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Never Let Me Go의 7~9과에서는 일반인과 다른 '복제'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 학생들을 도구로 바라보는 교사와 자신들 역시 그 사실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품의 표면상으로는 일반적인 사춘기를 보내는 학생들로 그려지고 있으나 교사와 아이들의 대화 내용 및 태도를 관찰해본다면 확실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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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Never Let Me Go 토미, 캐시, 루스

 

 

 

"차별"이 길러낸 "차이"



아이들이 15살이 되어 헤일셤에서 지내는 마지막 해에 접어들었을 때, 어느 날 루시 선생님은 또 다른 복제인간인 피터와 고든이 나누던 이야기 (배우가 되면 어떤 느낌일까? 최고의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미국에 가야겠다.)를 듣고 반 아이들에게 “너희는 들었으되 듣지 못했다”라고 말하며 아이들의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누구인지 각자 앞에 어떤 삶이 놓여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1. The problem, as I see it, is that you’ve been told and not told. You’ve been told, but none of you really understand, ...

 

2. Your lives are set out for you. You’ll become adults, then before you’re old, before you’re even middle-aged, you’ll start to donate your vital organ.

 

3. If you’re to have decent lives, you have to know who you are and what lies ahead of you, every one of you.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루시 선생님은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져있는지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장기 이식' 문제를 직접적으로 꺼낸다. 이전까지는 알고 있으되 말하지 않는 'Unwritten Rule' 이 존재했기에 이를 대놓고 제시한 인물은 루시 선생님이 최초였다.

 

사춘기를 겪는 많은 청소년은 자아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기에 복제인간인 아이들 역시 당황스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헤일셤의 아이들은 “우린 이미 알고 있었잖아”라는 식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반응에 나 또한 당황스러웠지만 루시 선생님이 말씀하신 "들었으되 듣지 못했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책 속의 여러 사례를 통해 이해한 후 헤일셤 아이들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다.

 

 

 

교사들의 암묵적 도구화와 학생들의 자발적 수용


 

"들었으되 듣지 못했다"의 대표적인 사례는 에밀리 선생님의 성교육이다. 그녀의 성교육은 성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강의 중간에 헤일셤 아이들의 존재와 관련된 문제가 슬그머니 끼어들도록 진행했다.

 

 

We’d be focusing on sex, and then the other stuff would creep in. 

I suppose that was all part of how we came to be told and not told.”

 

 

이처럼 간접적인 암시를 주는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존재성의 차이를 주입했다.

 

아무리 어린아이들이라도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 교사의 태도에서 선생님들이 해당 소재를 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 또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지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Unwritten Rule”이 만들어진다.

 

이와 같은 상황을 이해하고 난 후에 교사의 차별적인 시각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또 나의 교육관과는 다른 헤일셤의 교사에게 화가 났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장기기증을 위해 태어난 학생들이 일반적인 인간과 외양은 비슷하지만 자신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학생들을 모두 다른 개별성을 갖춘 인격체로 보지 않고 결국에는 자신의 장기를 내어주고 “complete”될 물건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자아정체성을 길러줄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간접적으로나마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알려주는 것도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된다.

 

모든 학생들은 개개인의 가치가 존중받아야 하며 교사란 학생들의 특수성을 인지하여 옆에서 지속적으로 자아를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이와 매우 다른 교육적 태도를 지닌 헤일셤 교사들은 교사라는 직업보다는 건강하게 동물을 기르고자 하는 사육사에 가깝다.

 

태어났을 때부터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서 “너희는 우리와 달라”와 같은 차별적 대우를 받아온 헤일셤의 아이들은 장기기증을 위한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부당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 한 번도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개별성 또는 특수성 그리고 자기 정체성에 대한 수업을 받아 본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들의 삶에 대한 주도권이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으며 미래가 정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노하고 반항하는 대신에 당연하다는 태도는 이미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한 결과라는 생각에 매우 안타까웠다.

 

이처럼 헤일셤의 학생들은 평범한 사춘기를 보내지 않는다. 이미 정해진 미래가 주어졌기에 “일반인” 학생처럼 자아에 대한 고뇌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인격체가 아닌 물건으로 취급되는 점에서 의아해하지 않는다.

 

이런 차이의 근원은 학생들은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교사의 차별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7~9과에서 다룬 내용은 다른 챕터들보다는 좀 더 노골적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는 교사들의 시각을 표현하였다. 학생들을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는 차별적인 시각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일반학생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차이를 보이는 태도를 갖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차별”이 길러낸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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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네버랜드 : 유사한 배경, 다른 결말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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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ver Let Me Go를 읽으면서 괴물들의 식량으로 그레이스 필드 하우스에서 사육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약속의 네버랜드'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Never Let Me Go의 헤이셤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들이 장기 기증을 위해 태어났음을 알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그레이스 필드에서 양육된 아이들은 '괴물'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며 단지 일반적인 고아원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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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그레이스 필드 하우스의 관리자인 '마마'의 보호 아래에서 필요한 교육을 받으면서 인격적인 존재로 자라나게 된다. 언제나 사랑으로 가득한 마마 덕분에 하우스의 아이들은 행복하게 자라면서 자신을 입양해 줄 보호자가 나타나길 기대한다. 또, 누군가의 출고가 결정되는 날에는 헤어짐은 아쉽지만 미래에 다시 만나자고 말하면서 축하와 함께 보내준다.


그러나, 사실 아이들의 '출고'는 괴물들에게 식량으로 바쳐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하는 주인공 엠마와 노먼은 출고한 코니가 두고 간 인형을 전해주러 따라갔다가 괴물의 존재를 알게 된다. 알고 보니 12살까지 엠마, 노먼 그리고 레이가 출고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매일 진행하는 테스트의 결과, 그들의 '뇌'가 최상급이기 때문에 가장 클 수 있을 때까지 시기를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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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따뜻하게 대해주던 '마마' 역시 어렸을 적에 하우스에서 '식량'으로 자라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출고되지 않는 조건으로 목숨의 유지를 보장받았고 그레이스 필드 하우스의 '마마'로써 괴물들에게 식량을 조달하는 역할을 맡아온 것이다. 아이들의 '뇌'가 지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훌륭하게 자랄 수 있게 괴물의 존재를 철저하게 은폐했으며 무한한 사랑을 주는 훌륭한 인격체를 흉내 낸 인물이다.

 

Never Let Me Go의 헤일셤과 달리 그레이스 필드 하우스의 아이들은 식량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치밀한 탈출 계획을 세운다. 그 과정 속에서 '마마'의 지속적인 방해와 이를 대처하는 아이들의 대응능력이 작품의 몰입도를 미친 듯이 높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성을 인정받는다.

 

 

 

차별적 시선의 유무, 숙명을 뒤흔들다.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서 헤일셤의 아이들이 '복제 인간'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그레이스 필드 하우스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식량'으로서 대우 받았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Never Let Me Go에서 교사들이 아이들을 '도구'로 대하지 않고 진정한 인격적 존재로 인정했다면 아이들은 그레이스 필드 하우스의 아이들처럼 자신의 숙명을 거부하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교사들의 암묵적인 압박과 거부감으로 "Unwritten Rule"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그들 역시 그저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반대로 그레이스 필드 하우스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식량'으로 대우받으면서 사육되었다면 분명히 약속의 네버랜드의 결말이 바뀌었을 것이다. 비록 거짓이었지만, 치밀한 마마의 연기 덕분에 하우스의 아이들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대범함과 판단력을 기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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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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