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느슨한 연결이 주는 위로 [문화 전반]

만들어 줘서 고마워요
글 입력 2021.04.2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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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힘들다고 느껴질 때, 기댈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가? 그건 나와 가까운 관계의 어떤 사람일 수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일 수도 있다. 혹은 나만 알고 있는 비밀 일기장에 글을 쓰는 행위, 최애 유튜버의 영상을 보며 힘을 얻을 수도 있겠지.

 

사람은 혼자의 힘으로서만 우뚝 설 수 없는 존재다. 힘들 때 무언가에 기대고 위로받는 것은 결코 나약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건강하게 회복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위로가 되는 공간, 힘을 주는 존재,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 역시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나는 왠지 모르게 우울한 감정이 몰려온다 싶으면 음악을 통해 내 마음 날씨를 바꿔본다. 듣자마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노래 리스트를 쌓아두었다 틀기도 하고, 인공지능 스피커에 '기분이 좋아지는 상큼한 노래 좀 틀어줘.'라고 요청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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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이 하나 더 늘었는데, 바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이용하는 것이다. 특정한 주제로 노래를 엮어서 영상으로 올리는 '플리 채널'이 늘어나고 있다. 음악적 안목이 높은 유튜버들이 선별한 곡을 듣다가 취향 저격을 당하는 노래를 만나고, 지금까지 몰랐던 매력적인 아티스트를 알게 될 때도 있다.


나는 주로 집중해서 작업해야 하는 낮 시간에는 lofi hiphop이나 하이틴 분위기의 팝송으로 구성된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다. 반면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시간에는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재즈나 가사가 없는 피아노 음악을 튼다. 향이 좋은 차를 한 잔 내리고 잔잔한 분위기의 음악을 틀어두면 차분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여느 때와 같이 재즈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찾던 중에 조금은 낯선 느낌의 채널을 발견했다. 채널의 이름은 'thanks for coming.'. 말 그대로 '와줘서 고맙다'라는 친절한 이름이다. 이 채널을 보고 놀란 이유 중 하는 댓글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플레이리스트 채널은 음악 저작권 때문에 수익 창출을 하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의 음악 큐레이션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보고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구독자들이 영상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하거나, 채널 주인의 음악적 안목을 칭찬하며 일명 '주접을 떠는' 댓글들은 다른 곳에서도 많이 봤었다. 그런데 이 채널의 구독자와 주인은 유독 끈끈한 관계처럼 보였다.

 

우선 'thanks for coming.'의 영상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내 이상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안될 거란 마음은 사실 간절하게 잘되고 싶은 거였다'와 같이 우리가 흔히 할 법한 생각을 비틀어 어찌 보면 말장난 같지만, 그 자체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짧은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을 들으러 갔다가 짧은 문장을 보고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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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댓글 창에서 채널의 운영자를 '주인장'이라고 부르며 친근한 반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형인지 언니인지 모를 주인장에게 오늘 하루 힘들었던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놓는 사람도 있고, 제목에 대해 공감을 하며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사람도, 노래 덕분에 힘을 얻고 간다는 이야기도, 한 편의 소설 같은 글을 남기고 가는 사람도 있다. 우연히 잔잔한 재즈 음악을 들으러 오는 사람 중에 지쳐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일까. 모든 이에게 하트를 눌러주고 친절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주인장의 따스한 환대 덕분일까.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를 털어놓고 가면서 이 채널은 그 자체로 서로에게 힘을 주는 공간이 됐다. 얼굴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끼리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느슨하게 연결된 것이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보다 낯선 이의 이야기, 혹은 짧은 한마디가 더 큰 응원과 위로가 될 때도 있다. 대놓고 '힘내'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그냥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하는구나. 우린 그렇게 연결되어 있구나라는 사실 그 자체가 마음에 와닿는 그런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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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혼자 떠난 여행에서 1인 전용 게스트하우스에 묵은 적이 있다. 대부분 조용히 온자 쉬러 온 여행객들이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라운지에서도 떠들썩하게 우연한 만남을 즐기기보다는 각자 할 일을 하다가 방으로 돌아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틀 밤을 보낸 그곳에서 나는 완전히 혼자가 아니었다. 방에는 방명록에는 비치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이 객실에 머물다 간 여행자들이 남겨놓은 흔적이 있었다. 역시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같은 방에 묵었다는 사실이 매개체가 되었다. 잘 머물다 간다는 짧은 기록이 주를 이룰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 다르게 작은 노트에는 꽤 깊은 사연들이 줄지어 이어졌다.

 

자신이 왜 이곳으로 여행을 오게 됐는지, 와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남겨둔 이들. 아픈 기억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힘듦도 다 그 작은 공책에 묻어두고 갔던 이들. 나는 그곳에 머문 낯선 이들이 안녕하길 빌었고, 앞으로 찾아올 이들이 행복하길 바랐다. 그렇게 느슨한 연결이 커다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익명의 그들에게 괜히 마음이 쓰인다는 감정을 알게 됐다.

 

*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안부를 건네기도 꺼려지는 요즘이다.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일상과도 같은 '거리 두기'라는 단어로, 어쩌면 마음의 거리까지 두게 됐는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이 오늘 하루를 겪었는지, 요즘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래도 나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심심한 인사를 전할 수는 있다.

 

나는 요즘 꽤 싱숭생숭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이 자신감이 넘치고 의욕이 샘솟다가도, 이내 내가 한없이 작은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을 반복한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긴 한 건지, 제자리걸음 중인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잘 살아내고 있다. 가끔씩 우연히 연결된 이름 모를 어떤 이에게 힘을 얻으면서,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그러니 부디 당신도 오늘 밤 편안히 잠들 수 있길 바란다.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고 있는 모두가 그러기를 바란다.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느슨한 연결의 공간을 만들어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박혜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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