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인과율을 벗어나 신성(神性)으로 거듭나는 기이한 복수극 - 킬링 디어 [영화]

글 입력 2021.04.2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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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2.jpg

 

 

복수라는 행위를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남을 것이다.


(내가)찌르면, (너는)찔린다.

(내가)때리면, (너는)맞는다.

(내가)죽이면, (너는)죽는다 등등….


원한을 품은 ‘나’의 직·간접적인 행위가 ‘너’를 향한 직·간접적 위해로 직결되는 것.

 

그러한 인과율이야말로 곧 복수라는 행위의 뼈대를 이룬다. ‘나’가 복수하지 않는 한 ‘너’는 복수 당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나’의 복수를 막아내는 한, ‘너’가 복수 당할 일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는 ‘너’에게로 가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너’는 ‘나’를 막아내기 위해 발버둥친다. 안간힘과 발버둥이 뒤얽히며 피칠갑이 된다. 대개의 복수 서사가 유혈이 낭자하는 액션 스릴러의 꼴을 띌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킬링 디어>의 복수엔 액션이 없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액션이라 할 만한 그 어떤 행위도 이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가 이뤄진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율을 벗어나, 의학을 포함한 모든 과학적 논리를 벗어나 “1단계 하반신 마비, 2단계 거식증, 3단계 안구출혈”의 과정을 거치며 그저 이뤄질 뿐이다. 이전까지의 그 어떤 복수극 속의 복수와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잔혹하게.

 

그렇기에 이 잔혹함은 차라리 신성(神性)에 가까워 보인다. 설명되지 않고 거역할 수도 없는 힘이야말로, 신이라는 개념을 이루는 가장 본질적인 속성 중 하나이므로.


그 힘이 오직 복수라는 결과를 위해서만 작동할 때, 인간은 무릎을 꿇고 그 발에 입을 맞추는 사제의 태를 갖추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름대로 발버둥(스티븐이 머핀을 납치해서 감금하고 협박을 했듯)을 쳐보기도 하겠지만, 발버둥은 그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하기에 발버둥이다.

 

그러니 남은 것은 하나다.

 

인과율을 거두어간 신이 그 자리에 대신 남겨놓은 새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것. 이 영화의 원제처럼 ‘순결한 사슴(Sacreed Deer)’을 제물로 바치는(Killing) 것이다.


제물을 바친다면 하나만 죽지만,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다.

 

신성한 신화 속 인물들과 달리 속물에 불과한 현실 속 인간은 가족을 위해 스스로 삶을 포기할 만큼 희생적이지 않다. 자식들은 신이 지목한 복수의 대상이자, 선택권을 쥔 가장 스티븐(콜린 파렐)에게 자신의 쓸모를 앞세우며 살려줄 것을 애원한다. 스티븐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가족 중 하나를 죽여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갇힌 채, 이미 신의 복수가 처절하게 이뤄졌음을 통감한다.

 

결국 스티븐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발버둥은 그 괴로운 결정이나마 신의 뜻(모두의 눈을 가리고 빙글빙글 돌다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 맡기는 것뿐이다.


어쩌면 다소 난데없다 느껴질 수 있는 마지막 시퀀스. 살아남은 가족들이 어두침침한 패밀리 레스토랑에 모여 있다. 최상류층에 속하는 스티븐 일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곳. 그곳은 머핀의 단골 가게다.

 

스티븐 일가는 음식을 시켜놓고도 먹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머핀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 바에 자리를 잡고 나서야 말없이 자리를 뜬다. 스티븐과 그의 아내 안나(니콜키드먼)는 음식엔 손도 대지 않았다. 단지 그들의 살아남은 자식만이 이쪽을 바라보는 머핀과 눈을 맞추며 감자튀김을 몇 개 집어먹었을 뿐이다. 스티븐은 감자튀김을 먹고 멀쩡히 발을 내딛는 자식의 모습을 머핀에게 확인시키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이다.

 

이제 당신의 복수가(당신이 원하던 대로 자식을 구하기 위해 다른 자식을 내 손으로 죽였으니)완성되었으니 부디 그 노여움을 거두어달라고. 신에게 제물의 봉헌을 알리며 침묵으로 기도를 올리는 순간, 그 식당은 곧 신전이 된다. 그러나 머핀은, 이 복수의 신은 식당을 나서는 스티븐 일가로부터 끝내 시선을 떼지 않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임현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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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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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윤정
    • 머핀이 아니고 마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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