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완벽한 타인, 나와 정답게 식사하는 너는 누구인가? [영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
글 입력 2021.04.24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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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타인(Intimate Strangers)

감독 이재규 | 출연 유해진, 조진웅, 이서진, 염정아, 김지수, 송하윤, 윤경호 외 | 개봉 201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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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커플끼리 보러 가면 안 되는 영화로 알려졌던 완벽한 타인. 웃고 떠들다가도 스멀스멀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의심 한 가닥이 순식간에 모든 사고를 잡아먹는다. 덕분에 알아서 SNS에서 소문이 탔다. 필자는 시사회로 개봉 전에 봤던 거로 기억한다. 주위 커플들에게 어땠는지 후기를 전달하기 바빴다. 일단 봐봐! 재밌어! 다녀온 이들도 재밌던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둘이 가도 상관없었다. 모를 일이긴 하다.

 

주된 감상평을 말하자면, 영화관에 앉아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고개를 돌리고 싶고 어디론가 도망가 달아나고 싶은 공감성 수치를 느꼈다. 옆자리에 앉은 일행도 그러한지 영화 보는 내내 돌리는 고개로 눈이 마주쳤다. 안돼, 더는 안돼..! 라고 계속 외치고 싶다. 출연 배우들만 봐도 연기력이 상당한데, 이런 내용을 실제로 그들의 연기력을 담아 마주하느라 다리를 동동거리며 제발... 제발......! 라며 속으로 얼마나 내뱉었는지 모르겠다. 민망하고 불편한 상황이 오가며 불안함과 블랙 코미디 영화답게, 뻔하지만 계속 보고 싶은 웃음과 왔다 갔다 하며 지루하지 않았다.

 

 

우리 게임 한 번 해볼까? 다들 핸드폰 올려봐. 저녁 먹는 동안 오는 모든 걸 공유하는 거야. 전화, 문자, 카톡, 이메일 할 것 없이 싹!

 

오랜만의 커플 모임에서 한 명이 게임을 제안한다. 바로 각자의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통화 내용부터 문자와 이메일까지 모두 공유하자고 한 것. 흔쾌히 게임을 시작하게 된 이들의 비밀이 핸드폰을 통해 들통나면서 처음 게임을 제안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상치 못한 결말로 흘러가는데….

 

상상한 모든 예측이 빗나간다!

 

영화 <완벽한 타인> 시놉시스

 

 

  

*

본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들 사이에 비밀은 없어! 라고 말하는 남자들의 진한 우정을 보여주는 석호(조진웅), 태수(유해진), 준모(이서진), 영배(윤경호). 사실 순대라고 빙판 위에서 월식을 보던 어린 시절 회상 씬에 존재하는 친구가 있었지만 40대가 되어 만나는 모임에서 제외됐다. 이유는 즉슨, 엔터 쪽에서 일하던 순대가 소속 연습생 21살짜리 아이와 불륜이 났던 것. 격이 떨어진다며 속초 영랑호 친구들의 모임에서 빠진다. 이렇게 친구들은 모임의 격이니, 수준에 맞는 사람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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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의 목적은 단순했다. 오랜만에 어린 시절 속초 영랑호에서 보았던 월식처럼, 이번 석호, 예진 부부의(조진웅, 김지수) 집들이 겸 다 같이 모여 밥도 먹고 월식도 보고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는 그런 취지였다. 그리고 순대의 이야기에 이어, 정신과 의사인 예진은 위험한 게임을 제안한다. 지금부터 모임이 파할 때까지 핸드폰의 모든 기록을 공유하자는 것. 안 하자니 뭔가 찔려 보이고 숨기는 것처럼 분위기가 몰아가니 모두 떨떠름하지만 마지못해 동의하며 게임은 시작된다.

 

친밀한 사람에게 내가 몰랐던 타인의 모습을 본다. 아무리 '사람'에게 기대가 없다 하여도, 내 마음에 조금은 스크래치가 난다. 예상한 상처지만 조금은 쓰라리다. 웃긴 것은 비단 그런 상처가 타인으로뿐만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 올 수 있다.

 

여태 쓴 기고를 보면 누가 봐도 영화에 관심이 많구나 싶을 정도로 영화와 관련된 글들이 많다. 맞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런데 예전과 같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 스스로가 낯선 것처럼.어느 시점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때는 아마 감독 자비에 돌란이 국내에서 한창 유명했을 시절, 로렌스 애니웨이, 마마를 보고 그의 연출력 - 아직도 기억나는 건, 마마의 주인공이 자신의 자아를 깨고 나왔을 때 보드를 타며 4:3 비율을 깨고 16:9 비율로 화면이 늘어났을 때 - 과 미쟝셴에 한껏 반했던 적이 있다.

 

그때만큼은 웬만한 업계 용어, 신작이나 어느 배우의 차기작 등 줄줄이 꿰뚫고 있던 시절. 왓챠 피디아에 본 영화를 체크만 해도 몇백 개가 넘고 더 체크할 수도 있지만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그때의 나는 정말 당당하게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대학생 1학년 때 기숙사에 살아 매주 금요일이면 '기숙사 극장' 이 열릴 정도로 나의 픽은 사랑받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어깨를 펴지 못한다. 그때만큼 아는 소식도 없고 진득함도 없고 뭔가 가벼워졌으며 그나마 아는 것도 계속 까먹기 시작한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 시절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완벽히 다른 타인과도 같다. 내가 그랬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기도 하다. 한평생 뗄레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아침마다 보는 얼굴한테도 낯선 모습을 깨닫는데,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에게 느끼는 이질감은 오죽할까. 그리고 그런 감정은 긍정적인 데서 오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렇다 해서 일반화까지 시킬 필요는 없지만,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는 그렇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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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알아야 할까, 아니면 모른채 살아가는 게 맞는가. 정답은 없다고 본다. <완벽한 타인>은 혈연관계보다도 남남에서 이어진 부부관계의 비밀에 좀 더 집중해 이야기를 푼다. 그리고 더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테이블 위의 세 부부와 애인이 아파 참석하지 못해 홀로 온 영배. 모두 다 끌어안고 사는 시한폭탄 같은 비밀이 끝없이 폭로되었고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한 나는 자칫 감상을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정말 연극처럼 착착 감기는 코믹 요소가 없었다면, 기 빨리는 영화 그 자체로 피곤한 영화로 낙인 찍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석호는 예진 몰래 투자한 곳이 홀랑 날래서 돈을 날렸고 짓고 있는 병원은 담보로 잡혔으며 예진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정신과 의사지만 가슴 성형을 전공으로 하는 남편이 아닌 다른 의사에게 가슴 성형을 의뢰한다. 그리고 석호의 친구 준모와 바람을 피운다. 태수는 강압적이고 아내 수현을 늘 못마땅해한다. 가부장적인 태수의 불호령에 벌벌 떠는 수현은 사실 차 사고를 냈고 태수가 이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태수는 알리고 싶지 않은 '키티' 친구가 있다. 어린 세경과 결혼한 준모는 예진도 모자라 자신의 레스토랑의 매니저와도 바람을 피운다. 그리고 그 매니저는 임신했다. 영배는 애인이 아파서 안 온걸 얘기했지만, 사실은 영배는 동성애자다. 친구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아 데리고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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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자잘하고 민망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대략 이렇다. 그리고 저 모든 내용이 저녁 시간 동안 테이블 위에 올려둔 핸드폰 때문에 발생한다. 뭐 하나 위험할 것 없는 평화로운 저녁 식사였지만, 피 말리는 긴장감을 관객에게 심어주며 주된 장소는 석호와 예진의 집으로 모든 사건이 한 곳에서 발생한다. 별다른 스케일 있는 연출도 없이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와 상황을 주된 힘으로 영화를 끌고 나간다.

 

하나가 터지면 다른 하나가 이어 터지고 수습을 할 시간도 모자라게 다른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진다. 오히려 나는 이런 낱낱개의 비밀보다 그들이 형성하는 분위기가 더 불편했다. 주변 지인의 가십으로 시작되는 화두와 알게 모르게 슬쩍 포장하는 자신들의 위상, 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하하 호호 즐겁게 어울리는 모습 사실은 서로에 대한 불만도 원망도 크면서 숨기는 등, 옛 추억을 붙잡고 우정으로 유지되는 사이일 수도 있지만 혹은 사회에서 의미 없는 시간을 만남으로 소비하는 우리들과 같은 모습 같았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볼 수 있었고, 어른들이 말하는 좋은 게 좋은 거야, 그런 게 사회생활이지 하는 뜻을 내포하는 일반적인 모습이 불편했으며 현실적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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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파국으로 끝이 난 폭로전을 감당할 수 없던 것인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2010)>처럼 돌아가는 추로 시간을 되돌려 버린다. 결국 게임은 없던 것이 되지만, 이런 비밀 들을 알게 된 관객들은 사이좋게 식사를 마친 속초 친구들이 가식이 영 달갑지 않다.

 

여러 종류로 나뉜 나를 다른 카테고리에 분류된 사람에게 공개하기가 얼마나 껄끄러운지 알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나, 대학 동기들과 지내는 나, 고향 친구들과 지내는 나, 가족과 지내는 나, 형제와 지내는 나, 혼자만 아는 나, 또 온라인 내에서의 나도 존재한다. 내 안의 수많은 '나'는 서로가 겹치기 선호하지 않는다. 아니다. 싫어한다. 우리는 타인에게 보여줄 적절한 모습을 선택하고 스위치 바뀌듯 다른 사람이 되어 또 다른 타인을 대한다. 철저한 익명성에 기대 다른 사람인 양 행동한다. 그래서 보통 우리는 모르는 척 살아간다. 선을 지킨다는 표현이 맞겠다. 결말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보통'을 현명하게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덜 자란 것인지, 가끔은 좋은 게 좋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날것의 진실을 추구하고 싶다. 그래서 속초 친구들은 앞뒤가 다른 월식을 보기 위해 모인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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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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