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완벽'에 대한 집착이 낳은 비극 [영화]

완벽한 도미 요리 (The Perfect Fishplate, 2005)
글 입력 2021.04.2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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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말고 잘해야지”

 

학부 시절, 가끔 융통성 없이 굴던 나에게 누군가가 뼈를 때렸다. 온갖 과제를 주야장천 붙잡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나는 이미 완성한 결과물을 두고 아쉬운 부분에 끊임없이 집착하며 밤샘 작업을 반복했다. 자기만족이라기엔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편의점 삼각 김밥과 커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고, 형언할 수 없는 압박감으로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 자신을 파괴하고는 작업 결과가 조금 좋아졌다는 이유로 자위한 것이다.

 

완벽함에 대한 강박과 집착은 지금도 여전하다. 타인이라면 절대 요구하지 않을 엄격한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민다. 지금 하는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정성을 다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글과 전투를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마 나의 스코어는 참혹할 것이다. 이를 느낄 때마다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게 대처한다. 성장하고 있다는 알량한 위로 보태기.

 

그러나 이 완벽함에 대한 기준은 모두가 알다시피 상당히 주관적이다. 내 눈에 근사해 보일지라도 타인에게 큰 감흥이 없을 수 있고, 한때 흡족했던 결과물도 시간이 지나면서 달리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매 순간 최선을 다하되 어떤 '완벽'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을 망가뜨려서는 안된다.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은 못하며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중 이 영화를 시기적절하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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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완벽한 도미 요리>는 영화 <곡성>, <황해>, <추격자> 등으로 이름을 알린 나홍진 감독의 첫 단편 영화다. 한때 곡성의 인기로 덩달아 재조명됐고, 2005년 4회 미쟝센 단편 영화제 '절대 악몽' 부문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한 젊은 요리사가 완벽한 도미 요리를 위해 몰두하지만, 결국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리는 이야기다. 특히 영화 전반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빠른 호흡으로 약 10분 동안 대사 한마디 없이도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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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스산한 주방을 보여주며 영화가 시작된다. 손님 없이 한적한 공간에 자고 있는 요리사. 정적을 깨고 종소리가 울린다. 한 여자로부터 '완벽한 도미 요리' 주문이 들어온 것. 요리사는 즉시 완벽한 도미 요리를 만들기 위해 레시피를 연구한다. 종이에 펜을 마구 휘갈기며 암호 같은 글자와 공식을 적는다. 그리고 단숨에 본인만의 레시피를 완성한 듯 두 눈을 번쩍인다.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오며 요리사는 본격적으로 도미 요리 손질을 시작한다. 순식간에 자신만의 공식과 정해진 순서에 맞춰 재료를 준비한다. 그러다 갑자기 그릴의 온도를 측정하려고 뜨거운 표면에 손을 올린다. 그뿐이 아니다. 익은 손등의 살점을 떼어먹으면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며 순조롭게 요리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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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웬일. 곱게 플레이팅한 재료를 완전히 엎어버린다. 바닥에 볼품없이 흩어진 식자재를 바라보니 한순간 분노가 치밀지만 금방 정신을 차린다. 완벽한 도미 요리를 만들어야 하니까. 신중히 지난 과정을 재빨리 반복한다. 실험실 장비 같은 비이커와 핀셋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만든 소스, 치밀하게 계산한 온도, 그리고 굉장한 속도의 칼질. 이제 진짜 고지가 눈앞이다. 그러다 갑자기 실수로 손가락을 댕강 잘라버린다. '오, 맙소사' 고통스럽지만 요리를 이어나간다. 재채기와 같은 사소한 실수로 계속 요리를 망치자 눈알을 뽑고, 붕대를 칭칭 감고서라도 완벽한 도미 요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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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에게 도미 요리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은 숭고한 의식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니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난 결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작은 흠도 용납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정신과 신체가 엉망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하나의 목표를 향한 열정과 신념은 인정하나, 지독하게 가학적인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어쩐지 익숙한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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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요리사는 완벽한 도미 요리를 완성한다. 그 사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백발노인이 된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다. 발을 절름거리면서 손님에게 다가가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거미줄에 칭칭 감긴 시체뿐이다. 허탈한 마음에 식탁에 음식을 놓고 포크를 힘겹게 잡는다. 자신이 온 힘을 다해 만든 음식을 맛보려고. 그 순간 요리사는 숨을 거둔다. 결국 완벽한 도미요리는 누구도 먹지 못한 음식으로 남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완벽함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힌 인물을 그린다. 아마 요리사는 감독 자신을 반영한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데뷔작인 이 영화에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을지 본인만이 알 것이다. 첫 작품이라는 부담,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창작자로서의 고통이 오롯이 느껴졌다. 나 한 명 감당하기도 벅찬데 크레딧에 올라오는 빼곡한 이름들을 보면 책임감과 열정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영화 <완벽한 도미 요리>를 선보였고, 우리는 그의 작품을 음미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완벽해지기 위한 노력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목적을 이루려고 애쓰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적절한 순간과 지점에서 내려놓는 법도 터득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그것이 인생의 마지막 목표가 아니라면 말이다. 자신만의 엄격한 기준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직설적이고 예리한 화법으로 이야기를 전한다. 그렇게 갈고 닦은 무언가를 더는 꼭 쥐고 있지만 말고 세상에 펼쳐 보이라고.

 

 

완벽한 도미 요리 (The Perfect Fishplate, 2005)

 

 

[김세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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