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에 멀미가 날 때, 황푸하가 전해주는 낮잠 [음악]

때로는 노래가 듣는 이의 삶을 대변해주기도 한다
글 입력 2021.04.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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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눈동자에서 빛을 볼 때 그들이 투명한 구슬 같은 눈동자를 가진 어린 소년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들에게 음악을 찾아 듣는 행위는 보물찾기와도 같은 일임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샅샅이 파헤치고 나서야 간신히 찾아낸 한 줌의 보석,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다른 이들과 나눠 갖고 싶어 사람들 틈에서 기웃거리지만, 막상 보여달라고 손을 내밀었을 때는 어쩐지 보여주기 너무도 아까워 선뜻 건네기 힘들어한다. 그들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인생이라고 이야기하기엔 거창하지만, 그들의 인생에 음악이 없었던 때는 없을 테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과 같이 음악, 특히 노래를 사랑하기엔 너무도 거칠고 둔한 사람이었다. 들리는 가사는 언뜻 뭉쳐있는 듯싶다가도 금방 머릿속에서 와해됐다. 멜로디만이 잔해처럼 남아서 맴돌았고, 나는 그것을 딱히 불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노래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는 쉽게 나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노래는 섬세한 다른 이들을 찾아 떠났다. 이런 내가 어느새 음원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게 되고 '대충' '아무렇게나' 유튜브에 있는 플레이리스트만 듣고 싶은 분위기에 맞춰 듣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머물러있는 노래들은 더욱 특별하다. 아무렇게나 클릭한 플레이리스트 중에서도 어쩌다 유독 계속 머릿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래들이 있다. 그저 멜로디를 듣는 것을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무언가에 머물러있었던 가사가 어느새 심장 한 켠에 박힌다. 내가 그 노래들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멍하니 노래 사이사이들을 피해 흘러가는 나를 그 노래들이 선택해낸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

 

황푸하의 노래를 처음 만났던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고등학생 때의 나는 풋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깊게 들어와 있었다)을 하고 있었고, 그와 함께 지나간 시간에 아파했다. 나를 거부하던 이들은 변함없이 내 곁을 맴돌았으나 나를 사랑하던 이들은 끊임없이 떠나던 때였다. 정신 차려보니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 중 나를 사랑하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몇 해가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을 정도로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지금에서야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알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당시엔 그 차이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던 때였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나를 싫어하는 것이 되던 시절.


결국 고등학교에서의 시간은 홀로 남겨졌다는 막연함과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어지럽던 시간이 되었다. 버스의 창문 밖을 바라보며 시간이 영원히 순간에서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숨과 함께 마셔 지던 시간이다. 아무렇게나 골라 듣고 있었던 음악 플레이리스트에서 어느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쉼 없이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이제는 내리고 싶어요

답답한 자동차

흔들리는 세상

Take hold of me


내 상태를 좀

알아주세요

잊지마세요

내가 존재한다는 걸


내 상황을 좀

이해해 주세요

버리지 마세요

Take hold of me


 



 

 

이상한 일이었다. 하도 붙들고 있어서 손자국 남아버린 낡아빠진 자존심과 그 때문에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고 그저 심장 한 켠에 고여있던 낱말들이 어느새 내 귀에서 읊어졌다.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매달려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낯선 남성의 목소리로 이야기되었다. 목울대가 떨렸다. 무언가를 들켜버렸다는, 깊은 곳에 숨겨뒀던 무언가가 파헤쳐졌다는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이윽고 나는 노래와 함께 심장 한 켠에 숨겨뒀던 말을 읊조릴 수밖에 없었다. "내 상황을 좀 이해해 주세요, 떠나지 마세요, 제발요, 나를 버리지 마세요, 내 슬픔을 알아주세요…."


*


오만함과 게으름에 점철되어 책과 영화만이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을 것이라는 편견 속에서 황푸하의 노래를 몇 번 더 찾아 듣고 나서야 나는 인정할 수 있었다. 때로는 노래가 듣는 이의 삶을 대변해주기도 한다는 것을. 그가 노래했던 첫 마음은 내가 떠나보냈던 고등학생 때의 사랑이었고 그가 이야기하는 낮잠은 삶에 지쳐 나도 모르게 잠들었던 어느 오후의 햇볕이었다. 그의 위로는 '그래도 언젠가는 내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생기겠지' 희망을 품게 해주는 주문이자 내일을 이겨낼 수 있는 응원이었다.


음악에 감흥이 없기에 당연히 콘서트도 나와는 인연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나 황푸하의 노래를 들을수록 생애 처음 가수의 콘서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될 무렵 황푸하는 서울에서 소규모 콘서트를 열었다. 망설임 없이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낡지만 젊은이들로 가득 찬 거리 속에서 골목을 몇 번 지나고 나면 1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방이 노을의 색으로 꽉 차서 반짝이고 있었다. 황푸하는 그곳에서 30명이 채 안 되는 관객들과 함께 [황푸하 단독 공연 : 없던 곳으로]를 진행했다.


작은 방이 그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졌던 때의 떨림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는 알고 있었을까. 한 소년이 그 콘서트에서 한껏 물먹은 생을 찾아 위로받고 있었다는 것을.

 

*

 

나는 이제 그때 만큼 황푸하의 노래에서 삶을 갈망하지 않는다. 유약했던 그때보다는 굳건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러나 그때 얻었던 힘은 아직도 마음속을 머물고 있다. 그 콘서트를 다녀온 지 꼬박 두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앞으로 나아가기 두려워 주춤할 때,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워 지친 몸을 쉬고 있을 때 그의 가사를 곱씹는다. 차마 뱉어내지 못하는 말들을 그의 목소리를 빌려, 대신 이야기 한다.





피곤해요 이제 쉬고 싶어요

내 볼을 감싸는 따뜻한 바람은

멈추지 마세요. 잠이 들 때 까지요

 

복잡한 세상에 눈 감으면

어둠이 건네준 평안

아픔과 배고픔 잊고

덧없는 세상 떠나요


이제는 피곤해요 이제 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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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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