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포르투갈에서의 일기는 조금 달랐다 [여행]

글 입력 2021.04.1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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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에게는 별로 놀랍지 않을 사실이지만, 나는 일기를 꾸준히 쓴 적이 없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게으른 까닭이다. 그러나 ‘꾸준히 쓰는 일기’라는 명사구가 내 사전에 없다는 이유로 자신을 게으르다고 단정하는 것은, 나와 비슷한 이들을 배려하지 않는 지나치게 성급한 일반화 같기도 하다. 허니 끈기가 조금 부족하다는 말로 변명의 자리를 메워본다. 물론 이것은 농담이다. 내가 일기 쓰기를 어려워하는 에디터라는 것만 알아주면 된다.

 

연초마다 야심만만하게 일기장을 산다. 그러나 늘 달을 하나 채우지도 못한다. 일기장에게 책꽂이에서 처분을 기다리라고 엄숙히 선포하는 일은 나의 유구한 관습이다. 글씨가 마음에 안 들어서, 사흘이나 건너뛰었더니 의욕이 사라져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없어서 등등. 비굴한 변명은 언제나 총천연색으로 빛난다.

 

그 때문일까, 언제나 일기를 쓰는 사람들을 동경해왔다. 다소 무료하고 똑같은 매일을 보내는 나와 달리 다양한 결들을 체험하는 사람 같아서. 기억하고 싶은 일이 기억하기 싫은 일보다 많은 사람 같아서. 쓸 말이 넘쳐서 좋겠다고 면식도 없는 무리를 지레짐작하고 또 부러워했다. 어쩌면 종이 위에 토설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사람들일지도 모르는데.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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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스물한 살에 프랑스로 첫 장기 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 성실하게 날을 기록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모든 것들이 익숙한 궤도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고대했을지도 모른다. 글감이 너무 풍요로운 나머지 마구 써 내려가서 페이지 수가 모자라면 어떡하나, 실없는 농담을 하며 낄낄거렸다.

 

결과는 제법 성공적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지속한 기록 행위는 바다 건너의 땅에서 이루어졌다. 어딘가에서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일기 주제가 쏟아졌다.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은 잿빛 페이지들이 꽤 많았지만 말이다. 그때 비로소 마음을 비우기 위한 글쓰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후로 해외에 나갈 때는 꼭 노트를 두 권씩 준비했다. 전시기록용 노트 하나, 일기용 하나. 가끔은 일기장과 기록장을 바꿔 들고나오곤 했다. 길거리와 전시장의 기억이 이리저리 뒤섞이는 꼴이 되었지만, 사실 눈뜬 시간 중 칠 할은 미술관에 있었던 터라 크게 상관은 없었다. 진지한 감상 기록들 사이에 끼어든 자유로운 분자들—불평과 환희와 피곤함과 음식 그림과 뜬금없는 농담들은 학구적인 분위기를 망치고 시트콤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양이 퍽 흡족했다.

 

결국 어쩌다 보니 여행 중에만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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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이 도장 범벅이 될 때까지 홀로 돌아다녔던 시간은 이제 먼 과거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바다 건너의 이름들을 꺼내는 일은 설화를 읊는 일 같다. 나의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남의 것을 빼앗아 허풍을 떠는 것처럼 당황스러울 정도로 현실성이 없다. 그래서 작년부터 여행기록을 더 많이 들춰 보기 시작했다. 내가 그때 그곳에 살았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서. 아무도 꾸며낼 수 없는 나만의 문장들을 붙잡고 정중하게 근거를 요청했다.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종이를 넘기던 아침과 정오와 초저녁과 새벽. 영혼은 글자를 타고 여행한다.

 

구미를 자극하는 나라는 매일 달라진다. 오늘같이 해가 따사롭게 부서지는 날에는 사진첩을 뒤적이며 포르투갈을 생각한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오월의 태양이 사는 곳. 차양을 뚫고 들어오는 열기가 살갗에 닿아도 불쾌하지 않던 곳. 나는 언제나 남서쪽 끝의 나라를 그렇게 기억한다. 리스본과 포르투는 사방이 다 반짝거렸다.

 

도루강의 넘실대는 윤슬, 매끈한 타일에 부딪혀 부서지는 햇살과 낯선 식물들 사이의 볕뉘, 푸르스름한 이내 밑으로 깔리는 노릇한 가로등 불. 친절한 행인들의 미소와 에그타르트의 윤기, 와인잔이 채워질 때 나는 소리, 현을 뜯는 거리 위 악사의 손끝과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서 떨어지는 땀방울까지. 그렇게 반짝이는 기억들은 노인이 될 때까지 간직하고 싶었다. 멜로디를 붙여 흥얼대도 좋을 것이다. 감정과 생각들은 사진에 다 담을 수 없으니 조악한 문장들이라도 써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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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포르투갈의 기록엔 반짝임보다 자기반성적 냉소가 더 많았다. 나는 일기의 문체나 결이 해당 나라의 향취를 담고 있기를 바랬다. 그래서 파리에서는 카뮈와 생텍쥐페리를, 아를에서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을 읽으며 일기를 썼다.

 

런던 시내를 걸으며 울프와 디킨스, 그리고 엘리엇과 함께 있는 상상을 했다. 와일드의 생가를 맴돌고 베케트의 이름을 가진 다리를 건넜던 더블린에서는 문장들이 간결하고 차분해졌다. 그리고 포르투갈에서는 페소아를 떠올리며 글을 적었다. 죽은 그의 혼이 도시를 부유하며 알 수 없는 영감을 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 일기가 우중충한 것을 그의 탓으로 돌리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면으로 파고들었던 나의 모습과 그의 글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을 뿐이다.

 

매 하루의 흐름은 상당 부분 그의 글을 닮아 있었다. 페소아는 <불안의 서>에서 ‘행복을 느낄 만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불안이, 정체를 알기 힘들지만 어쩌면 고상한 욕망이 나를 압도했다. 어쩌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 것일 수도 있다’고 고백한다. 또 ‘때로는 행복했고 때로는 만족스러웠던 모든 순간마다 나는 항상 슬펐다’라고도 썼다. 그의 불안은 나와는 다른 이유에서 기인했겠으나 같은 도시에서 동류의 시간을 보낸 이가 있다는 사실은 가슴 한 켠을 천천히 데웠다.

 

리스본과 포르투에서, 나는 고상한 예술에 젖어 각종 기쁨을 맛봤지만 동시에 이름 모를 불안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잠겨 허우적거렸다. 아늑한 행복 속에서 불행함을 찾는 재주를 발굴한 것 같았다. 기분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조바심에 삶이 차근히 절여지던 때였다. 도자 수업을 받다가 미래를 답답해하고, 단것을 먹고 침대에 엎드려 있다가도 우울을 참을 수 없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기다란 수의 같이 질질 끌리는 감정들. 페소아의 글과 나의 글을 병치 시켜 두고 곳곳을 뜯어봤다. 일기장에 적힌 이 신비롭고도 두려운 현상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

 

오월 십육일에는 ‘나만이 나를 단정 짓고 있을 테니까’라는 문장에 대해 곱씹어봤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타인과 비교하면서 침대 머리맡으로 시선들을 끌고 오는 잔인한 사람은 나라고 신랄하게 써 놓았다. 어쩐지 웃음이 조금 났다. 먼 타국에서 이런 고뇌에 사로잡힌 스물둘의 내가 귀엽고 또 안쓰러웠다. 여전히 그 병증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말하면 어린 나는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나만이 유일하게 내 편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부정적으로 자아와 현상을 규정짓고 싶지 않다. 이건 오직 나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지만, 동시에 나라서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기도 하다. 너그러움의 틀 안에 나를 가두는 법은 무엇일까.
 

 

오월 이십일에는 권태와 싸우고 있었다. 작게 내 얼굴을 그려 놓았는데, 정말이지 하나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생각도 계획도, 심지어 내 패기도 느려지는 걸 느끼면 우울해지곤 해. 그걸 느끼면서도 뭉그적대며 다시 달리고 싶지 않을 때, 그런 나를 발견하고 속상해지기도 하지. 왜일까, 자신을 책망하다 보면 마음 아파질 때가 많은데, 권태로울 땐 그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아. 모든 게 둔해지나 봐. 바람이 잔뜩 들어간 풍선처럼 이리저리 떠다니고만 싶어. 그러다 저녁 즈음 지는 해를 창으로 바라보다가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다가 생각하곤 하지. 아무 생각도 아닌 생각을.
 

 

시니컬한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낸 메모들은 조금 가슴이 아팠다.

 

 
(아, 반대편 저 너머에서 누군가는 등화에 성공해서 잘만 타고 있는데, 나는 무슨 점멸하는 전구처럼 본질마저도 흔들리는 게 한심해서 그런 거야.) 별일 없어. (라고 안부를 묻는 모든 이들에게 대답하는 중. 지나치게 완고한 스물두 살 생략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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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이년 전 가냘프게 흔들렸던 나를 보며 나는 내 안의 심지에 불꽃을 붙인다. 나갔던 초점이 돌아오는 듯한 기분과 함께, 잊고 지냈던 청년적 고민들이 다시 자라나는 것을 느낀다. 가만히 고여 있던 마음이 흔들리니 정신이 번쩍 든다. 청결해짐을 느낀다. 일기의 유용이 이런 것일까? 수마가 쏟아지는 밤에도 펜을 들어서 다행이라고 중얼거렸다. 불면이었으려나. 그래도 고마웠다. 만약 쓰지 않았다면 씨름하던 모든 문제들은 영영 시간 속에 파묻혀버렸을 것이다. 당시에는 견디지 못해서 썼던 글들이 미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다. 해결하지 못한 것들은 아직 남아 나를 괴롭히지만, 그래도 의연히 대처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 기쁘기도 하다. 무엇보다 유난히 어둑하던 일기들이 어둠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이 자못 유쾌하다.

 

실은 올해 처음으로, 여행자가 아닌 신분으로 일기를 매일 쓰고 있다.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끈질기게 기록을 한다. 팬데믹 이전보다 더 지루한 일상이지만 똑같은 정적이라도 고스란히 적어 내린다. 이 시국이 끝나고 난 후 일기를 다시 펼쳤을 때 내가 받을지도 모르는 어떤 유용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아주 평범한 오늘이 미래의 하루를 새롭게 닦을 수 있기 때문에. 이년 전 포르투갈의 일기처럼.

 

 

[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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