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존재와 사유, 삶은 흐르는 것

글 입력 2021.04.12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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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야만 했다.


어느 순간, 어릴 적 경주월드에서 탄 다람쥐통에 갇혀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 겨우 뉠 수 있는 통에 들어가 몸을 굽히고 앉으면 통은 돌아간다. 계속해서. 페달을 밟거나 힘을 들이지 않아도 통은 알아서 돌아간다. 한바퀴, 두바퀴... 일곱바퀴를 돌면 통은 잠시 쉬기 위해 멈춘다. 그리고 또다시 돌아간다.


직장인이 된지 5개월이 되어간다. 3개월은 수습사원이라는 이름표와 함께 조직에 적응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리고 3개월 + 1일 이후로는 관성에 몸을 맡긴 듯 살아 왔다. 일을 하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잠을 자고. 이렇게 7일이 흐르고 한 달이 갔다.


때문에 ‘사유’하는 시간이 없었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보이는 걸 무시했다. 봄이 오는 것을 몰랐다. 그러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눈 감고 귀 막은 듯 1년, 10년이 흐르면 어떡하지’. 다람쥐통에서 나와야 겠다는 생각을 할 무렵, <존재와 사유>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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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작가’ 이보균은 책을 ‘일상’과 ‘나’로 채웠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을 음미했다. 지금까지 내가 ‘무시’했던 계절을 작가는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지고 있었답니다’라고 말하는 듯 생생하게 풀어냈고, 쳇바퀴에 갇혀 있는 동안 외면했던 주변인들을 작가는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이 있답니다’라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담하게 풀어냈다.


다람쥐통에서 무의미하게 굴렀던 지난 5개월 중 기억에 남는 ‘일상’과 ‘나’가 없다. 외려 치열하게 취업준비를 하던 시간이 지금보다 심적으로 불안감이 더했지만 하루하루 소중했고 매일매일 내 존재에 대해 사유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여 버스를 타고, 길을 걸으며 새와 나무를 보고 ‘오늘은 바람이 차네’, ‘내일은 비가 오겠다’며 공기를 느꼈다. 그리고는 책상에 앉아 ‘나는 누구인지’ 생각하다가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최근엔 집-회사의 굴레에 갇혀 ‘나’도, 공기의 흐름도, 가족과 친구도 챙기지 못했다. 자연스레 사유도 멈췄다. 그저 ‘일을 해야지’, ‘잠을 자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


<존재와 사유>는 명언집같기도 하다. 하지만 명언집과 다른 점은, 누구나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일화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때문에 가볍게 읽힌다. 그 후 일화에서 느낄 수 있는 ‘날카로운’ 사유를 덧붙인다. 결말은 무겁다. ‘무겁다’는 의미는 받아들이기 거북하고 어려운 것이 아닌 생각지 못한, 또는 심연에 부유하고 있던 그 어떤 것을 명쾌하게 전달한다.

 

 

"자신을 이해할수록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을 보는 나를 생각한다. 바로 서 있고 바른 눈으로 보는가? 편견을 거둬내고 보는가? 스스로 건네는 질문이며 사유다. 한 눈을 감고 볼 수도 있고 거꾸로 볼 수도 있고 색안경을 꼈을 수도 있다. 내가 보고 있는 것, 보이는 것에 대한 판단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 (11쪽)


"행복은 선택이다. 아침에 눈을 뜨며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루라는 선물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이 순간 오늘 존재할 행복을 찾는 것이다. 그런 마음만으로 표정이 변하고 말투가 달라질 수 있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경쾌함이 있다. 한편, 행복을 거부하는 선택도 많다. 완고하고 왜곡된 태도를 견지하며 불평을 선택하는 것이다. 모두 나에게 달린 선택의 문제다. 행복하길 선택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으로도 행복할 수 없다. 환경은 모두 다르지만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은 누구에게나 있고 자유롭다." (79쪽)


"조급함이나 화는 어디서 오는가?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하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완고함이다. 겸손하지 않은 것이다. 나도 실수할 수 있고 틀릴 수 있다는 생각, 내가 보고 해석하는 상황이나 상대가 전부가 아니란 열린 생각에서 겸손과 여유가 커진다. 어느 상황에서도 특히,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차분하고 여유로울 수 있고 나를 잃지 않으며 나 다울 수 있는가? 그렇다. 여유는 생각을 넘어선 상황에 매몰되지 않는 행동이다." (110쪽)


"그렇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존중의 느낌은 오래 기억한다." (171쪽)


"내 삶을 산다는 것, 일견 이기적인 표현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남의 삶도 돌아볼 수 있다. 내 삶을 살 때만이 열린 마음으로 타인이나 주변을 보고 받아들일 수 있다. 건강한 관계를 맺는 힘의 원천은 결국 자신이다. 나를 놓치고 중심이 없다면 아무 것도 제대로 볼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흐린 눈으로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볼 수 없고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323쪽)

 

 

계절이 변하고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존재와 사유>의 작가는 일상(의미 :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출처:네이버 사전))의 의미를 파괴했다. ‘일(日)’에 사유가 더해지면 ‘1년 365일’로 묶여 보편성을 가지는 것이 아닌 하나의 독립적인 날로 탄생해 특별한 날이 된다.


<존재와 사유>를 만난 지금,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하루를 음미한 준비가 되었다. 공기가 뜨거워지고 해가 길어지는 것, 벚꽃이 지고 파란 새싹을 틔우는 것. 그리고 ‘직장인’이 아닌 ‘나’의 내면을 살피고 주변인을 돌보는 것.


다람쥐통에서 나올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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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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