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렇게 영화가 된다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영화]

글 입력 2021.04.1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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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2017년의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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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초반 40분은 어처구니가 없다.


화면의 질감은 거친 걸 넘어 조잡하고, 첫 장면에서부터 난무하는 배우들의 무미건조하거나 과잉이거나 둘 중 하나인 연기톤은 민망하며, 좀비 출현에 대한 당위를 그럴듯한 설정 하나 없이 한, 두 마디 대사로 퉁쳐버리는 내러티브는 당혹스러울 정도다.


그나마 인상적인 것은 단 한 번의 컷도 없이 이어지는 ‘원 씬-원 컷’ 촬영인데, 확실히 좀비 영화 특유의 복잡하기 그지없는 동선을 원테이크로 담아내고자 하는 패기는 인정할 만하지만 그건 한낱 기교에 불과해 보인다.


작품보다 앞서버린 기교의 끝에 남는 건 쓸데없이 낭자한 유혈의 난장판이다. 그 속에서 홀로 살아남은 주인공이 피칠갑이 되어 수직으로 솟아오른 카메라 렌즈를 올려다본다. 의미심장해 보이기는 하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는, 그야말로 허세로 가득 찬 엔딩이다. 이후 올라오는 엔딩크레딧을 볼 때쯤엔 “2017년, 올해의 코미디”라고 하던 명성은 겨우 패기 하나로 얻어낸 결과인가 싶었다.


하지만 영화는 엔딩 크레딧의 끝자락에서 대뜸 페이드 인을 하더니 ‘한 달 전’이라는 타이포와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버린다.


동시에 홈비디오만도 못했던 영화의 질감이 고화질로 변환되고 아까만 해도 영화 속에서 광기 어린 창작욕에 들끓던 감독이 사실은 의뢰받은 영상을 “빠르고 싸고 퀄리티는 그럭저럭”으로 뽑아내는 생계형 감독이라는 것과 방금까지의 조악한 영상이 <원 컷 오브 데드>라는 제목의 영화 속 영화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세상에나! 감쪽같이 끝난 줄만 알았던 영화가 이제야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이제부터가 이 영화의 진짜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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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방송사의 좀비 채널 개국 기념으로 편성된 <원 컷 오브 데드>가 상영되는 1부,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배우 캐스팅이나 대본 리딩, 동선 체크 등의 제작 과정을 관찰하는 2부, 방송 시작과 함께 생중계로 진행되는 촬영 현장의 아수라장을 엿보는 3부까지.


이렇게 총 3개의 챕터로 구성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영화의 서사 속으로 메이킹 필름을 삽입한다는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이를 완벽하게 실현해내는 과감한 플롯을 통해 ‘영화’라는 결과물에 도달하기까지 벌어지는 온갖 우여곡절을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명랑하게 담아낸 메타무비다.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 작품 속에 ‘좀비+생중계+원 컷 촬영’이라는 온갖 “핫한 포인트”를 김장 배추에 속 채워 넣듯 다 때려 넣길 요구하는 제작자.


“빠르고 싸고 퀄리티는 그럭저럭”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카메라를 잡아 왔으나 막상 현장에 들어서자 되살아난 창작 욕구와 함께 어떻게든 작품을 완성하려 동분서주하는 생계형 감독.


청순가련이라는 스타 이미지를 의식하거나 배우로서의 자의식에 가득 차서 디렉팅을 거부하는 주연 배우.


알코올 중독, 불륜, 스트레스성 장염 등등 갖가지 이유로 통제를 벗어나며 돌발상황을 야기하는 조연 배우 등등.


극 중에는 영화 현장에서만 볼 수 있고,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혈압 상승을 유발하는 통제불능의 인물과 상황들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요소요소들이 유머로 승화되고, 끝에 이르러서는 예상치 못한 감동으로까지 이어진다.


그 이유가 뭘까.


그것은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든 자신들의 작품을 완성하고자 하는 영화인들의 발버둥이기 때문이고, 그 끝에서 기어이 영화라는 것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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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엔딩에서 제작진들은 <원 컷 오브 데드>의 마지막 장면을 4m 높이의 부감 쇼트로 촬영하기 위해(이를 위해 준비했던 지미집 카메라가 박살났기 때문에)직접 피라미드를 쌓는다.


피라미드는 본래 계급구조를 상징하는 형상이지만, 감독 데뷔를 꿈꾸며 제작현장을 구경하러 와있던 감독 지망생이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 카메라를 잡고 있고, 실질적인 갑이라 할 수 있는 제작자는 중간에 자리 잡아 위를 떠받치고 있는 그들의 피라미드에서 그런 사상을 찾아보긴 어렵다.


거기엔 오로지 영화를 완성하고 싶다는 일념을 다 같이 추구하는 영화인들의 마니아틱한 애정이 담겨있을 뿐이다.


<원 컷 오브 데드>의 엔딩이 그랬듯, 수직으로 부감하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마지막 카메라 워킹은 감독, 주연 배우, 조연 배우, 스태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같은 평면 위에 점이 되는 광경을 보여준다. 결국 영화는 그 모든 점들이 우열 없이 함께 이어져서 만들어진 입체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쯤에서 영화가 끝에 다다랐다는 걸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그 순간이 그 자체로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였던 나머지 나는 이렇게 외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발, 그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임현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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