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여주는 여자 [영화]

글 입력 2021.04.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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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주연의 '죽여주는 여자'는 삶과 노화에 대해 가감 없이 전달한 명작으로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영화이다. 이야기 구성은 다소 빈틈이 있고 결말의 방향도 100%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아름다운 장면들 그리고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가 그 빈틈을 완벽하게 메꾸기에 걸작으로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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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소재는 누군가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는 '박카스 할머니'이다.

 

박카스 할머니란 종로 쪽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60대 이상의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명칭은 박카스와 같은 자양강장제를 건네며 성매매를 권하는 그들의 모습으로 인해 붙었다고 한다. 윤여정 배우는 이 영화에서 박카스 할머니인 주인공 '소영'을 연기한다.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65세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 노인들 사이에서는 ‘죽여주게 잘 하는’ 여자로 입 소문을 얻으며 박카스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트랜스젠더인 집주인 티나, 장애를 가진 가난한 성인 피규어 작가 도훈, 성병 치료 차 들른 병원에서 만나 무작정 데려온 코피노 소년 민호 등 이웃들과 함께 힘들지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한 때 자신의 단골 고객이자, 뇌졸중으로 쓰러진 송노인으로부터 자신을 죽여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 죄책감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다 그를 진짜 '죽여주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의 부탁이 이어지고, 소영은 더 깊은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윤여정의 내공이 빛나는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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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할머니로 분한 윤여정의 연기는 담담하면서도 지친 노년의 모습을 그 어떤 여과도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주눅이 든 듯 들지 않은 듯 파고다 공원 길가에 서서 그녀는 눈이 마주친 노인들을 향해 박카스를 한 병 권하며 묻는다. "연애하실래요?" 상대방이 완강하게 거부하지 않는 듯한 표시를 하면 그녀는 결코 확답을 재촉을 하지 않고 고개만 넌지시 까닥이며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그녀의 행동에는 어떠한 더함도 덜함도 들어있지 않다. 오직 박카스 한 병과 삼만 원 딱 그 정도의 서비스와 말벗을 제공한다. 모텔을 잡고, 촛불을 키는 일련의 행동들에서는 어떠한 망설임조차 자신의 일과 삶을 동정하는 순간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윤여정 배우만이 가진 삶과 세월의 내용이 드러나는 연기의 절제미라 할까. 이 연기는 결코 삶을 짧게 평화롭게만 살아본 사람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영화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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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배경과 풍경만 보면 너무나 아름답다. 그것이 이 영화의 독특한 매력이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의 가장 푸릇하고 싱싱한 초록빛이 가득한 장면을 많이 담았다. 그래서 언뜻 보면 오히려 힐링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소영의 칙칙하고 희망 없는 삶을 보며 답답한 이들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영화는 계속해서 푸른 배경들을 보여주며 숨통을 터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보통의 문제적 주제를 다룬 영화들을 보면 영화의 장면과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스토리 자체가 칙칙하기에 배경 또한 어둡고 불쾌한 기분이 확 들도록 장치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장면 하나하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힐링하는 듯한 기분을 준다. 특히나 소영의 집 또한 마찬가지다. 소영의 방은 전혀 어둡고 칙칙하지 않다. 단정하고 깔끔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풍긴다.

 

어쩌면 감독은 소영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과 소영의 삶을 별개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즉, 성매매라는 직업은 어둡고 불쾌할지언정 그녀의 심성과 성정은 누구보다도 맑고 깨끗하다는 모순을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성매매라는 건 그녀가 택한 어쩔 수 없는 수단으로 그녀의 삶을 규정하는 수많은 것들 중 가장 작은 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소영의 옷 또한 이를 전달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소영은 청남방과 청바지를 세트로 입고 나온다. 우리가 흔히 성매매를 하는 여자 하면 떠오르는 분홍빛 불빛과 화려한 화장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싱그러움, 나이가 들었지만 싱그러움을 유지한 그런 느낌조차 든다.

 

푸르른 나무의 잎들과 소영의 청 패션은 굉장히 색감적으로도 잘 조화된 느낌을 준다. 이런 색감의 조화는 불쾌감보다는 청량감을 주는데 아마도 소영의 삶이 결코 불쾌한 것이 아님을 더욱 강조하는 듯하다.

 

 


왜 박카스 할머니가 되었을까?


 

소영은 왜 굳이 박카스 할머니로 일할까?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던 점이었기에 영화가 끝난 후 부리나케 박카스 할머니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종로 구청 직원들의 말에 의하면 '빈곤'이 박카스 할머니들이 발생하는 원인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아프기 때문에 몸 쓰는 일들을 하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이 성매매 일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답변이 속 시원한 해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빈곤하다고 해서 그리고 아프다고 해서 누구나 다 박카스 할머니라는 직업을 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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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노인 빈곤 문제가 사라진다면 노인 성매매는 분명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노인 세대만의 빈곤 문제로 바라본다면 해결이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예를 들어, 주인공 소영(윤여정)은 자신이 젊었을 적부터 해온 일이 성매매였기에, 나이가 들어서는 자연스럽게 박카스 할머니로 계속 일을 했던 것으로 보였다.

 

즉, 어렸을 때부터 다른 길을 경험해 보지 않았고 또 그런 기회도 없었던 소영과 같은 노인들이 박카스 할머니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은 노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빈곤으로 인해 사회에서 여러 기회를 차단당하고 박탈당한 세대 전체의 문제가 아닐까.

 

노인의 빈곤이 아닌 우리 사회에서 소외계층에게 여러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소영과 같은 박카스 할머니는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삶의 방향


 

사실 이 영화에서는 단순히 박카스 할머니에 대한 시사점만 던지진 않았다. 오히려, 소영(윤여정)이 죽일 수밖에 없었던 세 명의 노인들을 통해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빈곤과 소외라는 그림자에 어쩔 수 없이 잠식되었던 소영(윤여정)과는 다르게 사실 세 명의 노인들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크게 느낄 수 없었다. 동정심보다는 오히려 젊었을 때 생각 없이 행동하고 저지르면 우리가 늙었을 때 어느 순간 그 결과들이 다 돌아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반성의 계기가 된 인물들이었다. 더불어,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삶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며 행동해야 한다는 날카로운 경각심을 가지게 해주었다.

 

처음부터 세 노인들을 이렇게 냉정한 시선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안타깝기도 했고, 늙는다는 것이 이렇게 초라한 건가라는 슬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세 노인들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묘사하자면, 이들은 여러 의미로 모두 한때 잘 나갔던 사람들이다.

 

첫 번째 노인은 돈이 많았다. 소영의 기억에 그는 늘 후하게 값을 치렀고, 옷도 맵시 있게 잘 입는 멋쟁이 신사였다. 두 번째 노인은 유머 감각이 탁월하고, 늘 주변 사람들을 웃게 하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노인은 그야말로 점잖은 젠틀맨이다. 소영에게 위의 두 인물들의 최근 소식을 전해주면서 소영이 그들을 만날 수 있게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며, 소영과 마지막까지 가장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나약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볼품없이 마지막을 향해 갔다.

 

첫 번째 노인은 뇌졸중이 와서 반신불수가 되었고, 병원에서 온종일 누워서 똥오줌도 스스로 가리지 못한다. 미국에서 살며 가끔씩 보러 오는 자식은 딱히 노인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그저 유산을 위해 노인을 형식적으로 가끔씩 만나러 올 뿐이다. 두 번째 노인은 혼자 사는 와중에 치매가 왔다. 아무도 찾아가는 이도 없어 보였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어 보였다. 늘 혼자 방에 틀어박혀만 있다. 마지막 노인도 꽃 배달도 하고 나름 열심히 잘 사는 듯 보였지만, 아내가 먼저 죽은 후 무척 상실감을 크게 느끼며 외로워하던 인물이었다.

 

너무 안타깝고 눈물이 나는 사연들이다. 이들 모두 한때 열심히 살았을 텐데 돌아오는 것은 이런 추한 몰골이라니. 늙음이라는 것이, 노화라는 것이 모두 이렇게 초라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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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 중간, 중간 이 노인들과 대비되는 인물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소영이 어느 때처럼 박카스와 함께 성매매를 권하자 질색을 하며 자리를 떠났던 노인은 소영이 다가가기 전까지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보다도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자기 관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한때 소영과 같이 술집에서 일하던 동생은 몸이 불편하지만 자상한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대비되는 삶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앞서 이야기한 세 명의 노인들을 그저 동정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 노인은 과연 젊었을 적 자식을 어떻게 키웠을까. 과연 제대로 사랑을 주고 키웠다고 할 수 있을까. 재력을 바탕으로 성공이 전부라는 생각을 주입하며 키우진 않았을까? 자신의 재력을 바라보며 아부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저 만족하며 살진 않았을까. 두 번째 노인은 왜 젊었을 때 건강할 때 열심히 일하고 가정을 잘 살피지 않았을까. 왜 맨날 술만 마시고 성매매를 하며 허송세월을 보냈을까. 세 번째 노인 또한 모순 덩어리였다. 아내를 그렇게 사랑했으면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지 왜 성매매를 자주 하며 소영의 단골이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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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셋의 죽음은 그들이 하나하나 저질렀던 일들이 모여져 만들어진 추한 결말을 마주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그들의 추한 결말이 그저 노화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소영에게 더 이상 추해지지 않기 위해 죽여달라 하지만, 나는 그건 비겁한 핑계라고 생각했다.

 

물론, 늙고 아프고 병드는 것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픔이다. 그리고 결코 이 아픔의 겉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그 사람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말은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는 똑같이 아파 늙어 죽어도 고귀한 죽음으로 평가받게 되고 어떤 이는 추한 죽음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삶에 대한 평가가 우리가 지금 젊었을 때부터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행동하느냐에 영향을 받게 된다고 생각했다.

 


 

삶의 모습은 결국 우리 자신의 선택의 문제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정권을 비호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그들을 보며, 불신지옥 예수천국 팻말을 들고 할렐루야를 외치며 돌아다니는 그들을 보며,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폭언과 함께 폭력을 휘두르는 그들을 보며.

 

또 한편으론, 매일 아침 폐지를 주우며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장학재단에 기부하는 그들을 보며, 늦은 나이에 학교에 입학했지만 젊은 사람들보다도 더 학구열을 불태우며 열심히 공부하는 그들을 보며, 혹은 배고픈 학생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단돈 1500원에 토스트를 팔다가 세상을 떠난 그들을 보며.

 

똑같이 늙어가지만 어떤 이들은 존경스럽고 따르고 싶고, 다른 이들은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경각심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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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늙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 영화는 그저 단순하게 삶의 풍파와 노화로 인해 시들어가는 단계라고 답하는 것이 아니다. 빈곤과 소외라는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지만, 적어도 늙어가며 마주하게 될 우리의 마지막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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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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