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차피 지워질 그림 - 더스트맨

먼지처럼 미세한 것들에 대해 밝은 불빛을
글 입력 2021.04.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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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죽음에 극심한 죄책감을 느꼈던 태산은 스스로를 저 끝으로 고립시켜 서울역에 살고 있다. 추운 겨울,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거리를 방황한다. 그런 나날이 연속으로 이어질 쯤 터널 안에서 특색이 담긴 자연적인 그림을 그리는 미술 전공생 모아를 알게 된다.

 

그 터널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긋나는 행동이었기에, 모아는 경찰에게 쫓긴다. 그래서 태산은 그녀가 궁금했다. 어차피 다음 날 화이트로 다시 지워지는데 왜 그리고 있는지 모아에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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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지워질 그림을

왜 그렇게 예쁘게 그려요?”

 

“지워질 그림이니까요”

 

 

문장을 그대로 이해하는데 복잡한 해석이 필요한 어려운 대화가 아니었는데, 다음 장면을 놓쳐서라도 이 대화가 어떤 의미인지 곰곰이 사유해야 했다. 지워질 그림이니까 대충 그릴 수 없다는 모아의 의도는 관객들과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 주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모든 세상의 이치는 다 지워졌거나, 지워질 예정에 놓여 있는 것이 확실하다. 미래를 알 수 없지만 하루를 열심히 그리고 또 아등바등하게 산 사람도 죽음을 마주한다. 또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공식을 아는 모든 인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정의 중요성에 과중치를 높여 살아간다.

 

지워질 인생이라면, 지워질 그림이라면 그냥 그저 그렇게 대충 살아도 될 텐데 우리 모두는 그렇지 않다. 그 안에서 행복과 자유, 그리고 성공의 맛도 알아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당연한 마음이다.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매 순간 즉시 하면서도 죽음에 현명한 회피를 가지고 지워질 어떤 것에 대해 최대한의 힘을 쏟는다.

 

모아는 미술에 대해 후천적인 노력이 있는 아이였다면, 태산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손재주가 있었다. 모아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받은 태산은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자가용에 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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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이 어중간했더라면 사람들이 보고 지나쳤을 텐데, 몇 십 년 미술을 배운 전공자들과 비례했기에 시선이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사람들이 sns에 올리게 되어 모아가 이 기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모아의 물음에 태산은 극도로 발뺌한다. 그 사람 나 아니에요.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그저 태산은 쑥스러움이 많고, 오랜만에 교류하는 사람 앞에서 마음의 문을 확 열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연이 많은 태산의 반응은 그리 단순한 의미가 담겨있지는 않은 듯하다.

 

남들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그저 허우대 멀쩡한 평범한 청년이지만, 스스로는 느끼고 있었을 것 같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준비된 것도 없고, 내면이 텅 빔을 극도로 느끼게 할 쌩한 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자신의 위치와 수준을 알고 있기에 남들의 극찬과 칭찬 그리고 관심을 너무 부담스러워하는 감정이 어렴풋이 전달되었다. 아직 많이 부족해 누군가에게 집중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데, 그에 어울리지 않는 반응을 이끌어 낸 것에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그런 일상들이 있고 나서 모아는 태산에게 졸업 작품 관람 초대권을 준다. 예쁘게 입고 태산을 마주한 후 함께 작품을 보면서 대화를 나눈다. 그러던 중 기자가 모아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태산은 편하게 대화를 하라고 자리를 비켜주는 듯하더니 그 공간을 조용히 빠져나온다.

 

그 순간 모아와 대비되는 색채를 체감하며 스스로를 먼지처럼 작은 존재라고 자각한 것 같다. 한없이 작아지고 존재감이 없다는 태하의 허한 감정이 스크린의 면을 뚫고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내 좌석까지 급속도로 다가왔다. 그의 기분과 감정이 절대 남의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마주칠 씁쓸한 감정이자 20대의 당면해야 할 과제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산에 요즘 생각이 과도하게 많은 나와 겹쳐 관찰할 수 있었다.

 

태산은 스스로를 먼지처럼 작은 존재라고 느끼지만, 이런 미세한 먼지들도 빛을 받으면 눈에 선명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 밝은 불빛을 남에게만 쏘는 경우가 허다해서 내가 나에게 멀어지는 안타까운 간극이 벌어지는데, 이 점을 우리는 주의해야 함은 필수다.

 

인간이기 때문에 부족할 수밖에 없고, 부족하기 때문에 0부터 10까지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체감하면서 성장한다. 남들의 행동과 태도에 관대한 시선을 보내는 것처럼, 그 관대함을 우선적으로 받아야 할 대상은 단언컨대 나 자신임을 알려준다.

 

괜히 혼자 작아지거나, 주눅 들거나, 비교하거나, 상처받지 않아야 한다는 조언을 먼지로 참신하게 빗대어준 김나경 감독의 의도가 우리 모두에게 확성기처럼 크게 울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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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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