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홀로 속초 북스테이를 떠났다 ① [여행]

그 여행을 잊을 수 없는 이유
글 입력 2021.04.0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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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어느 겨울 날

 

 

 

무슨 바람이 든 걸까?



여행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여행 가고 싶다”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한다. 떠나고 싶지만 의지는 없는, 딱 그 정도의 온도.

 

견문을 넓히는 데 여행만 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내게는 금전적, 심적 여유가 없었다(양심상 시간은 빼야겠다). 무엇보다 차곡차곡 모은 돈을 한 번에 여행에 투자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니 진정한 여행의 맛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런 필자에게도 잊을 수 없는 여행이 있다. 2018년, 휴학생 시절에 속초로 북스테이(Book+Stay)를 갔던 일이다. 남들은 유럽부터 미국, 동남아 등 세계 각국을 넘나들며 경험을 쌓을 동안 소소하게 국내 여행지를 살펴보던 참이었다. 보통은 '좋아 보인다'라는 생각이 '떠나야겠다'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런데 그때는 무슨 바람이 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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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롭 앤 가솔린 Microbe & Gasoline

 

 

그 시기에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 <마이크롭 앤 가솔린>을 봤다. 처음 만난 두 소년이 영혼의 단짝이 되어 직접 만든 허술한 드림카로 프랑스 곳곳을 누비는 내용이다. 괴짜 모험가와 섬세한 예술가가 만나 단조로운 여름방학을 재밌게 보내기 위해 의기투합을 하지만, 어느 하나 순탄치 않다.

 

그럼에도 두 청춘의 도전은 누구나 상상해봄직한 일이기에 꽤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여느 때처럼 영화 어플리케이션을 켜서 감상평을 끼적였다.


 

저맘때 우리는 서툰 솜씨로

어딜 그리 떠나고 싶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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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롭 앤 가솔린 Microbe & Gasoline

 

 

날이 무척 추웠던 겨울이었다. 이 영화가 조금 계기가 되었던 것인지 여행을 결심했다. 몸과 마음이 시리다는 이유로 방구석에서 궁상만 떨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도시의 소란스러움을 피해 홀로 잔잔한 시간을 갖고 싶어서 '북스테이'를 선택했다.

 

뚜벅이니까 시외버스터미널과 가까운 게스트하우스로 결정. 통장 잔액을 슬쩍 확인하고 6인실로 예약. 그렇게 속전속결로 단출한 짐을 챙겨 3박 4일간의 여정을 떠났다. 혼자 하는 첫 여행이었다.

 

 

 

잔잔한 여행을 원해서 '북스테이'


 

여행 고수들은 갑자기 짐 싸서 여기저기 다니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는 다르다. 한 번의 클릭으로 최적 길을 찾을 수 있는 시대지만, 당시 구글맵은커녕 일반 지도앱도 겨우 사용하던 터였다. 그렇기에 나름의 모험을 시작했던 것이고, 스스로 미션을 던져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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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한 마음을 안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표를 끊고 꿀렁꿀렁 전진하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순조로웠다. 창밖의 풍경과 설산이 시선을 끌었다.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그 시간을 오롯이 누리다 보니 금세 휴게소에 도착했다. 잠시 절경을 감상하면서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다. 모든 게 준비된 선물 같았다. 순식간에 목적지인 속초에 도달했다.

 

*


'북스테이(Bookstay)'는 책(Book)과 머무름(Stay)의 합성어로, 여행과 독서가 만난 새로운 여행문화를 의미한다. 조용하고 정적인 여행을 원하는 사람에게 제격이다.

 

필자가 찾은 게스트하우스는 시외버스터미널과 도보 2분 거리. 버스에서 내려 길모퉁이를 돌면 바로 보인다. 1층은 서점 겸 카페, 2층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는 곳이다. 동네 서점이라 규모가 크진 않지만, 베스트셀러부터 작은 출판사의 도서까지 균형 있게 다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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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장소를 찬찬히 살펴보고 2층 방으로 갔다. 생각보다 쾌적하고 깨끗한 공간이었다. 한낮의 햇살이 넉넉하게 스며들어 아늑한 느낌을 더했다. 가구 외에 다른 이들의 짐은 없어 보였다. '아무도 없군, 오늘은 혼자 쓰려나?' 빈 방을 신중히 들여다보고 구석 자리를 선점했다.

 

급하게 챙겨온 짐을 하나둘 정리한 후 골똘히 생각했다. 가져온 책을 읽을까, 내려가서 다른 책을 펼쳐 볼까. 아무래도 후자였다. 새로운 곳에 왔으니, 새 책의 종이 향을 맡고 싶다는 합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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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은 게스트하우스 담당자이자 서점 운영진분들이 직접 엄선한 책으로 가득했다. 사실상 책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이었다. 간혹 독서 모임이나 소규모 전시,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열어 책을 매개로 많은 사람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한 장소였다.

 

또한 주로 1년 이내에 출간된 책을 인문사회과학부터 시, 소설, 에세이, 그림책 등 다양하게 큐레이션하고 있었다. 마음속 들끓는 물욕을 『영화관을 나오면 다시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 『아무튼, 잡지』,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 책 3권으로 타협했다.

 

 

 

게스트하우스의 낯선 사람들


 

책을 고르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하루의 피로가 몰려오는 듯했다. 다시 계단을 오르고 방문을 활짝 열었다.

 

'헉, 누구세요'

 

놀란 표정을 삼켰다. 그사이 낯선 2인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도착해서 짐을 풀 때, 늦은 시간임에도 아무도 없어서 그날만큼은 혼자 쓸 줄 알았다. 6인실을 1인실처럼 편하게 써보자는 심산이었으나 괜한 기대였다. 어색하게 자리에 앉아 방금 구매한 책들을 천천히 뒤적이는데 침묵을 깨고 누군가 말을 걸었다.

 

“다들 언제 오셨어요? 저는 일찍 와서 동네 둘러보고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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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전용 6인실 창에 있던 글

 

 

띄엄띄엄 한 자리씩 차지한 우리는 초면이었다. 다소 상냥한 말투로 질문을 건넨 이는 회사에 재직 중인 디자이너. 업무 스트레스를 타파하기 위해 여행을 결심했다. 다른 한 사람은 교사 임용시험 합격 발표를 하루 앞두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행을 왔단다. 두 번째 시도였기에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평소 낯을 가리진 않지만, 예정에 없던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약간 수줍음을 탔다. 짧은 시간에 서로의 근황부터 취향까지 알게 됐다. 왜 여행을 왔는지, 어떤 영화와 책을 좋아하는지, 내일은 무얼 할 계획인지 등. 대화가 무르익고 밤이 깊었다. 각자 맡아둔 침대는 짐만 올려놓고 전부 바닥에 모여 이불을 나눠 덮었다. 아침부터 속초의 절경으로 알려진 '영금정'을 함께 가기로 했다.

 

우리는 전국 각지에서 다른 이유로 그곳에 모였지만, 마치 원래 계획된 만남인 것 같았다.


*


지금도 생각한다. 그때 우리 중 누구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여행은 꽤 단조로웠을 거라고. 그리고 이렇게 오랜 시간 마음에 남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고. 사람을 피해 여행을 떠났으나 결국 사람과 함께 즐거웠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겨울 바다와 영금정 일출을 본 이야기,

영랑호를 종이 지도로 찾아간 일화는 다음 편에서-

 

 

[김세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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